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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동 전도사 - 죽으면 죽으리라 박승남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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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동 전도사 - 죽으면 죽으리라

 

문용동 전도사는 제101회 총회에서 총회 순직자(5)로 지정되어 2017511일에 재학하던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총회 순직자 지정예식을 개최했다. 호남신학교 4학년에 재학하던 문용동은 1980518일 오후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귀가하다가 금남로에서 공수부대 병사에게 구타를 당해 피 흘리는 노인을 병원으로 옮기면서 시위에 참여했다. 서울경기지구 위수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했던 문용동은 부상자 구호와 헌혈 활동을 하다가 도청 지하실의 무기고 관리를 맡았다. 계엄군이 시민군에게 밀려 광주 외곽으로 퇴각한 다음 날인 522일이었다.
당시 도청 무기고에는 수거된 소총과 수만 발의 탄약, 수류탄, 전남 화순탄광 한국화약 화약고에서 가지고 온 3600여 상자의 폭발물 등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만 해도 77년 이리역 폭발 사고보다 두 배나 되는 양이었다. 우발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도청 인근 반경 3~4km의 광주 도심이 쑥밭이 될 수 있었다.
문용동은 전투공병대 하사관 출신인 김영복과 오랜 토론 끝에 대참사를 막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계엄사 부사령관 김기석 소장과 직접 교섭했다. 이들은 보관하던 폭약 뇌관 2,288개를 사전에 전교사에 전달했다. 24일 밤에는 병기 근무대 기술 무관 배승일을 데리고 와서 수류탄 뇌관을 분리했다. 수류탄 신관 279, 최루탄 170, 다이너마이트 2,100개의 뇌관을 모두 제거했다. 분리한 뇌관과 도화선, 공이 등은 마대에 담아서 식량창고 쌀통 등에 감추었다.
문용동은 민원실 지하 무기고를 지키다가 5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도청을 진입할 때 희생되었다. 문용동과 함께 마지막까지 무기고를 지키던 김영복은 부상한 채 체포되었다. 문용동은 526일 밤에 집으로 가자고 설득하는 형과 형수, 누나에게 '죽으면 죽으리라' 말로 거절했다. 그의 신앙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며 일기에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리라"고 적었다.
다시 맞이하는 오월에 문용동을 기억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린다. 문용동은 '5·18 최후의 희생자'이자 '유일한 목회자 희생자'였다. 문용동은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항거하여 희생한 순교적 신앙인이었다. 문용동을 '광주시민의 안전을 지킨 오월의 작은 예수'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문용동을 순직자로 지정한 총회는 해마다 5월이면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그를 기념할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향한 믿음의 자세를 새롭게 할 때다. 변창배 목사/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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