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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임을 당한 스데반과 부활의 그리스도 | 박승남 | 2026-0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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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을 당한 스데반과 부활의 그리스도
성령이 충만해진 그는 돌로 맞기 직전,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고개를 땅으로 떨구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윤동주는 일제 강점으로 빼앗긴 조국 땅의 하늘을 쳐다보며 이 시를 읊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스데반은 도대체 하늘 우러러 무엇을 보았을까요? 사도행전 6장 15절을 보면 그의 얼굴은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미 천사의 얼굴이었던 그는 이미 부활 승천하셨던 예수님을 가슴으로 느꼈고 영의 눈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이미 그는 예수 부활을 공개적으로 선포했고 예수의 주님 되심을 당당히 고백했기에 그 기쁨을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긴박한 순간 그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오히려 믿음과 소망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바로 그곳에 부활의 그리스도가 계심을 보았습니다. 사도신경에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모습, 곧 영광과 권세의 위엄을 지닌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위기일발의 순간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며 확인한 예수님은 뜻밖에 서 계신(55, 56절) 모습이었습니다. 왜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왜 사형 형장 같은 현실에서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스데반을 향해 서 계셨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나 곤경에 빠지게 될 때 보통 사람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땅’하는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엄마들의 엉덩이는 모두 의자에서 떨어지면서 양팔을 번쩍 올려 응원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 사랑이 이토록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면, 한없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을 그토록 사랑하셨고 또 지금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위기일발, 그것도 너무나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죽임당하는 사람을 보고, 교리의 예수처럼 하나님 우편에 가만히 앉아 계실 수만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하늘을 우러러 부활의 주님을 기릴 때 사랑의 주님께서는 교리의 옥좌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시는 분이시지요. 이것은 영적이기에 실제적인 응원의 힘이지요. 사랑은 시간과 영원을 이어주는 생명의 다리입니다. 예수 부활은 뜨거운 사랑의 교감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그리스도는 갈릴리 예수처럼 따뜻한 사랑의 가슴으로 언제 어디서나 억울한 고통이 있는 곳에 달려가십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이 반쯤 맞아 죽은 나그네에게 다가가듯 부활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보좌에서 벌떡 일어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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