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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박승남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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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5:1-2절 개역개정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5:1~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동안 우리가 들은 118절에서 425절에 이르기까지 말씀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3:2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신앙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고 선언하고 이어서 로마서의 다음 주제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의 화평은 이전에 에덴동산의 삶처럼 하나님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샬롬이라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마치 부모의 것을 다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고 그 몸을 씻겨 주고, 새로운 옷을 입혀 주고, 이제는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아버지의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씻어 주시고 의의 옷으로 갈아 입혀 주신 후, 왕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자 이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계속하여 가지라는 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불편하고 서먹하고 원수처럼 적대적인 관계로 살았지만, 이제는 관계가 회복되어 주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관계가 회복되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보세요. 부부 관계에서, 또는 자식 관계에서 관계가 나빠지면 밥을 아무리 잘 먹고 아무리 좋은 집에서 잠을 잔다 해도 불편합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 버리면 마음이 평안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돌아오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부부가 싸우다가 화해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 평안해집니다.

여러분 평화란 무엇을 얻어서 소유해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회복됨으로 얻어지는 것이 평화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평화란 부서졌던 것들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며 모자랐던 것들이 다시 채워지는 것입니다. 지저분하고 엉망으로 되어 있는 방이 잘 정돈되고 청소가 되면 평안해집니다. 이처럼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이제는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평안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것 사이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13절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목,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3:25).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겨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은 바로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하도록, 평화를 누리도록 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중재하시어 둘 사이를 가깝게 하고 화평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사도바울 자신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딤전1:13)였던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바울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광야에 나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전도 여행을 할 때도 물론이거니와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바다를 항해하고 풍랑 중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심지어 박해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활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기쁨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분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하나님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있다면 하나님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저들에게 아무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천국 갈 희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시지 않고 아마도 미워하실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는 해도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시는걸!…….”

그러면 신자이면서도 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 가운데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에 지은 모든 죄는 주님이 다 용서해 주셔서 여러분에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습니까? 과거의 죄를 짓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깨끗하게 청산한 죄는 다 용서받고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문제는 지금도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죄를 지으려고 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하고 있는 죄 때문에 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있으므로 하나님과 화목이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죄를 돌이키기만 하면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평화를 이루며 사십니다.

다윗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뉘우칠 때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찬송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32:1~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죄를 짓고 사는 이들이 있다면 죄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또한, 죄를 지으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죄를 다스려(4:7) 죄의 자리로 나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1:1).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욕정이 많은 사람은 선한 일도 악으로 만들며 쉽사리 악한 일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선하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모든 일을 선하게 합니다.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어떤 사람이라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불만이 많고 걱정을 가진 사람은 많은 의혹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안정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정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종종 안 해야 할 말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지나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나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돈도 있고 힘도 있지만 평화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고 또한 사람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이고 겉으로는 웃지만, 뒤에서는 칼을 갈고 있으므로 그 영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관계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많은 경우 자신이 자신과 친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힙니다. 열등감에 빠져서 고민합니다. 때로는 우월감과 교만에 빠져서 진정한 자기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외롭고 고독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관계를 상실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거절하고 마음에 모시기를 싫어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고독, 분노, 미움, 저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은 어느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 생애 전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대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전부가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근본의 안심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의 첫 번째 복입니다. 412후렴을 같이 불러 봅시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여러분, 이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코로나 19 가운데도 평화를 누립니다. 물론 그래도 당연히 방역수칙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평화가 있습니다. 총알이 날아와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누리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감옥 안에 있어도 거기서 매를 맞아도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빌립보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옥문이 열리게 되고 또한 그보다 더 귀한 간수의 마음 문이 열려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정 사도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렸기 때문에 구원의 문까지 열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평화로우면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2절입니다. 또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에서 시작되어 의에 이르고, 의에서 하나님과 화평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려면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과 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출발점이고,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받아들여지면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화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이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그리고 의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 들어가 그분과 화평을 이루기 시작하는 전 과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은혜의 자리에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들어와 살게 된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는 자리로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 때문에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점점 건강해져서 육신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탁한 것들이 응답되어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분들은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몸은 아파도 마음은 언제나 천국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가정은 천국입니다. 은혜 안에 들어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 중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슬픔 가운데서만 살아갑니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광을 가졌는데도 이런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기도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나로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향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라

우리가 잘 아는 조지 뮬러는 세리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은 교활하고 약삭빠른 세리였습니다. 젊은 날에 대부분 시간을 술집에서 여자들과 또는 도박을 즐기면서 보냈습니다. 그는 종교 따위는 거의 취미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의 파티에 초대되어 갔었는데 거기서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즐기던 술집이나 여자들을 통해서 얻은 재미와는 판이한, 그러면서도 더욱더 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뮬러는 자기 삶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25백 명이나 되는 고아를 기르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말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비결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인가 알지 못하면 우리는 그를 신뢰할 수 없다. 그를 아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관하여 생각하는 일이다.

2. 신앙은 우리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때 더욱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 신앙의 능력을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라.

3. 신앙은 언제나 현재에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언제나 현재적인 것으로 믿어야 한다.

4. 절대적인 정직성이 요청된다. 범죄한 양심은 언제나 신앙을 시들게 만든다.

5. 신앙의 힘은 고난을 겪는 때도 굳게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활동하시는 때는 언제나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뒤늦게 나타난다. 우리가 미리 참을 수 없어서 우리 스스로 사람이나 주위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활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된다.

 

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다 지시고 아들 독생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에 자리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표를 보고 우리를 데리고 은혜의 성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 들어가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아십시오. 그 은총을 더욱 깨달아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을 통해서,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누리십시오.

은혜가 없으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받지 못하고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깨달으면 자신이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무엇인가 마음이 가득 채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의 것을 가지려는 것보다 나눠주고 싶습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비록 못 가졌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 잔이 넘치나이다.”

무엇을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이 그득합니다.

여러분 뇌성마비로 손발이 뒤틀리고 말 한마디 하는데도 온 얼굴을 일그리며 애를 써야 하는 송명희 시인은 비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한 인물이지만 그런데도 그의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알게 되어 그 마음이 은혜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저의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자 제가 출석하던 교회 전도사님이기도 하셨고 노사곤 목사님(지금은 원로)께서 연희동교회 부임 초반에 송명희양 집을 혼자 방문하여 미즈노 갠죠의 시집을 선물로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송양도 시를 쓴다지요. 이 사람처럼 책으로 내게 될지 누가 알아요? 한 번 나에게 불러 줄 시가 있다면 불러 주세요!"

그러자 송양은 천천히 말했습니다. "제목은 에바다예요! 열어 주소서! 내 눈을 열어 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목사님은 그 시를 자신의 성경책 뒷면에 기록하고 감탄하면서 시를 쓰라고 용기를 주어 그 뒤로 송명희 양은 노트에 정식으로 시를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으로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어도, 나 가진 지식 없어도, 나 남이 가진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을 가졌고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갖지 못한 것 갖게 하셨네!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출발 과정이요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라면, 그다음 단계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의 최종 단계요 목표는 하나님과 화평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다시 하나가 되다라는 뜻도 있습니. 동시에 화평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끼리도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유대인들도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2:18). 그리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예수님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내가 함께하겠다(18:20)라고 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을 얻었고 광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고 날마다 은혜의 자리에 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또한 예수 안에서 화목한 공동체,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복된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011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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