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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 박승남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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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9:14-29절 개역개정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롬9:14-29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

 

성경에는 여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라나 리브가나 라헬을 비롯하여 에스더까지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참 매력적인 여인들도 있습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던 두 자매들입니다. 언니는 마르다요, 동생은 마리아입니다. 그 중에 누가 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리아는 한 길 밖에 못 가는 여인입니다. 하나를 하면 그 일에 몰두하는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특별한 봉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은 주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배운 일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배웠다는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여인은 음식을 대접해도 예수님의 마음에 맞도록 깔끔하게 대접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인정했습니다. 후에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기 1년 월급에 해당하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향유를 다 부어드릴 수 있을 만큼 주님을 믿고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수더분하고 텁텁한 맛이 좋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붙임성이 있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성품이었습니다, 또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일을 성취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동생이나 주님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볼멘소리를 하긴 했지만 결국 묵묵히 섬김의 일을 잘 감당한 귀한 여인입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 대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동족을 생각하면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10장에 가서야 밝힙니다.

아무튼 그정도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동족인 유대인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왜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우리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까? 왜 내 남편, 내 아내가 내 부모 자식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 아픈 마음이 없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은 너무도 많은 복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배척하고 교회를 박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고심하다가 사도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약속의 자녀가 아니구나! 이삭의 자녀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마음에 안정을 줍니다. 사람은 어디엔가 소속감을 가질 때 안정을 얻습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자신감을 줍니다.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아름답고 기쁘게 살려면 서로서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조건 없이 인정해 주는 만큼 부부도 되고 자녀도 되어 가는 것입니다. 말보다는 마음으로 깊이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일이 더욱 필요합니다. 부부사이가 어려울수록 부족한 것을 지적하지 말고 서로 좋은 점을 찾아 인정해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치료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기른다면 아마 기상 있고 자신감 있는 아이들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세 가지 권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정이고, 둘째는 자기가 속한 곳의 장으로부터의 인정이고 셋째는 아버지로부터의 인정이라고 합니다. 이 세 권위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을 인정해야 성도들이 평안합니다. 혹 목사가 인정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평안하지 못한 교회일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 서로 가운에도 인정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부모 중에서도 아버지가 자녀들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자녀들이 바로 성장하고 가정이 평안합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이 열심히 움직입니다. 여야를 통털어 20명이 넘습니다. 그들 모두가 국민들의 선택을 받고 싶어합니다. 내년 선거 때가 되면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도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나서기도 할 것입니다. 이들은 지지율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그 지지율이라는 것이 계속 가는 것이냐 아마 지금은 지지율이 높지만 그게 물거품처럼 사라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사 우리 국민 아니라 이 땅에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 헤밍웨이는 명예도 있고 돈도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았으며 결혼과 이혼을 수없이 했으나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유서에는 허무와 무의미의 좌절감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난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와 명예와 돈과 쾌락을 다 가졌지만 결국 62세에 총으로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본문 23절은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선택이라고 합니다. 선택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사랑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벌써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고 영원히 받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주의해서 보시고 사랑할 만해서 선택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먼저 선택해주셨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람이 선택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선택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열심히 진리를 찾아 뛰어다닌다고 얻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왜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이처럼 사랑해 주시는가요? 그 이유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증거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주님 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믿음으로 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 즉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이 강한 만큼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게 될 힘을 갖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인 것을 증명해 보여 주는 것뿐입니다.

 

오늘 말씀도 유대인의 선택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다 선택하신 줄로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알았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어떤 이들은 선택을 받았고, 어떤 자들은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선택받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까? 그들의 삶의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일은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마침내는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님까지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선택을 받은 이유가 자기에게는 하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조건 선택해 주셔서 주의 종으로 살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항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지 않느냐, 왜 어떤 사람은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대답합니다. 14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고 20절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우리 지역에는 천한봉, 김정옥씨를 위시해서 도자기 명장들이 여러 분 있습니다. 이분들이 도자기를 만들 때 자신의 임의대로 그릇을 만듭니다. 그 손놀림에 따라 그릇 모양이 정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의대로 인간의 구원 문제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릇이 자신을 빚어주는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말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 반문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낳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자녀가 나는 왜 하필 이 집에서 태어났냐, 누가 낳아 달라고 했냐?”라고 한다면 부모로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신의 임의대로 구원의 문제를 주관하시지만 22절처럼 설사 진노의 그릇일지라도 오래 참음과 관용으로 기다려 주십니다. 로마서 24절을 보면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기꺼이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느 누구도 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자녀를 삼아 주셨습니다.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를 선택하셨을까요?

부부로 살아가면서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왜 그 말을 듣고 싶어 합니까? 이 남자한테 또는 이 여자한테, 내가 어떻게 선택을 받았을까? 선택받은 그 기쁨을 계속 계속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보아서 선택했을까?”

여러분, 어떻게 남편이나 아내한테 선택받았는가를 여러분 스스로 아십니까? 모를 것입니다. 좋아서, 멋있어서, 예뻐서, 장래가 촉망되어서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그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선택한 것입니다. 한번 물어보십시오. 당신 왜 나를 선택했어? 라고요. 글쎄 뭐 좋은 점도 있어서 선택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나도 모르겠어요(). 그저 좋아서 선택했을 뿐이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부들은 당신은 왜 나를 좋아했소?” 하고 물으면 대답한다는 말이 내가 구제해주었지. 뭐 당신 좋아서 한 줄 알아요?” 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결혼생활을 순탄하지 못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럴 때는 거짓말을 좀 해도 괜찮습니다. 나도 모르겠소. 왜 내가 당신을 선택했는지. 그 때는 말이야. 당신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더라.”하고 대답해 보십시오. 물론 이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 선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왜 나를 선택하셨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굳이 알려고 하면 그것은 교만이고, 자만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선택하셨습니까?”하고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마디입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 같은 것을 선택해 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어쨌든 선택을 받은 것을 보니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셨나 보죠.”

한국 사람으로 일본에 가서 맨 처음 세례를 받은 이수정(1842~1886)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수신사 박영효를 따라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그는 도쿄에서 츠다센(津田仙)이란 신자를 통해서 한문성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꿈속에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을 키가 크고 한 사람은 키가 작았는데, 이들이 옆구리에 책 한 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책들은 다 무엇입니까?”

그러자 두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책들은 당신 나라의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책입니다.”

이수정은 이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바로 세례를 받고 성경을 조선말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주도록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드디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두 사람이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는 부활주일인 188545일로 당시 제물포로 불리던 인천항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수정이 번역해 놓은 마가복음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이미 이수정이란 사람을 선택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먼저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들은 선택받은 자가 되도록 또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혜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위로해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인 것을 증명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로서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 받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가족에게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족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선택을 말하고 있는 것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동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그들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거절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 언젠가는 저들도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직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을 가지고 그들을 가슴에 품고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더 사랑하며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25~26절을 보면 호세의 글을 인용하는데 이 말씀의 출처가 되는 호세아 1:10절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하나님은 돌볼 사람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단 입양을 해서 한없는 사람을 쏟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순종하고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고 온갖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크게 망신을 당하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 같으면 다시는 내가 이런 짓을 하는가 봐라하면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 문을 닫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셔서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보십시오. 교만해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셨습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오셨습니까? 온 이방 나라에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섬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 1: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여기서 유다와 이스라엘은 육체적인 이스라엘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여기 저기 흩어져서 그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유대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한 우두머리를 앞세우고 하나님께로 나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우두머리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허물어지고 온 인류가 하나 되어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하나님께 나아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방인은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내 가족이 이방인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 대해서도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날은 큰 날입니다. 소중한 날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받는 사람으로서 그 사랑을 전할 때 우리 가족이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며 기대하며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 사랑 받는 자, 구원 받은 자 답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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