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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박승남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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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1:14-17절 개역개정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로마서 1:16~17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에덴동산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자유로워 행복하고 멋지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에 집착하여 그만 범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넓은 동산에 하필 선악과 밑으로 가서 바라보았고 그 기회를 포착한 뱀 곧 사탄은 하와를 유혹하여 마침내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 나쁜 분으로 여기도록 이간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하와는 죄를 짓는데 담대해져서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아주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말씀을 주시고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있던 저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드시기 위해서는 짐승을 잡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저들의 눈앞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위하여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실로 창세기 3: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이나 입혀 주신 가죽옷이나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상처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하셨지만 그를 통하여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짓밟으셨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지은 인간들에게 의의 옷, 생명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외칩니다.

물론 한 때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다니, 그가 다시 살아났다니, 그가 하나님이 아들, 메시야라니?” 믿을 수가 없었고 어리석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그것을 믿는 자들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무슨 어리석은 소리야? 아니 그 십자가를 믿었다고 당신이 갑자기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단 말이야? 이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여야 해? 우리 종교를 타락시키는 무리야~" 그는 복음이 이처럼 능력있는 것인 줄은 몰랐었습니다. 복음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즉시 죽음과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동분서주하며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막으려 했습니다. 급기야는 대제사장에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여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출발하여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는데 홀연히 빛으로 오신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자기 같이 못된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불러 주셨고 그래서 그분의 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 같이 못된 사람도 용서해 주신다면 주님께서 못 용서해 주시고 못 구원해 주실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래서 그는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게 된 후부터는 이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복음을 자랑합니다. 주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바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능력입니다.

히틀러 치하에서 행해진 아우슈비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에힐 다이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961년 유대인 대학살을 총지휘했던 전범 아이히만이 재판받을 때 에힐 다이누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에서 다이누가 흐느껴 울면서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왜 쓰러졌을까요? 대부분은 그가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고 실신했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밝힌 이유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인간일 것으로 생각했다 합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다이누는 그가 평범한 한 남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손자·손녀의 재롱을 좋아하고 황혼에 강가를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자신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아이히만을 보면서 이런 평범한 인간 속에 600만 명의 생명을 죽이는 악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히만뿐만 아니라 자신과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생각할 때 두렵고 절망적인 마음이 들어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100% 죄인입니다. 칼뱅은 전적 타락(Total Loss)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인간을 누가 구원하고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들어 알고 있던 로마 교인들에게 다시금 능력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말은 굉장한 말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두려움과 고통가운데서 건져주신다는 말입니다. 가난과 질병가운데서도 우리를 구해주시는 것도 구원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낸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으로 끝났습니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먹어주시고, 고쳐주시고,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재난을 면하게 해주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살 땅을 주시고 소망을 주셔서 넉넉히 살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구원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샬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샬롬 안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화, 복지, 번영, 행복, 건강, 완전, 안전, 안녕' 등 말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의 능력입니다. 아파서, 돈이 없어서, 자녀와 남편 또는 아내가 속을 썩여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고통은 죄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죄 때문에 고통이 시작됩니다.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복음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그 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에는 이러한 구원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그러면 이런 복음의 능력은 누구에게 미칩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입니다.

우리는 "아멘!" 하고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이러한 복음에 아멘! 하고 받아들이셨습니까? 그러면 이미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에게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셔서 모든 것을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교회는 다니셔도 아직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면 이 시간 마음으로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저를 받아주시고 구원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즉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여러분을 천국의 반열에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복음 안에 이 약속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음에 하나님의 "옳으심" "righteousness"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는 어떠한 것일까요? 로마서 3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처벌하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죄인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벌을 받지 않는 것은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입니다.

로마서 32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데 그 하나님께서 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의로워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의로워진다는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요?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1, 2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인간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관계잖아요. 아름답고 복된 관계, 이루 말할 수 없이 친밀한 관계 말입니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보다는 소유를 택했기 때문에~, 청지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결국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때 만일 하나님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라고 회개하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3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면 용서해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아담은 하나님과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대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냥 불행한 관계, 잘못된 관계로 끝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고 그냥 망하는 인생으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을 수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하나님과 사귈 수도 없던 우리인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탕자처럼 타락하여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던 우리이었지만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라고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맞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인이 의인이 되고, 원수가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요,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깨달았습니다. 복음 속에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 즉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오면 저절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계속 그 사랑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능력을 알게 되면 계속 그 능력을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그 믿음이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또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속 믿음으로 전진해 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세요.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실행해 보니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주시네. 이렇게 높여 주시네, 그러니 더욱더 믿음으로 살아가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고 사자 굴에서도 건져지고~ 계속 믿음의 맛, 믿음의 능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누구를 믿어준다는 게 무엇입니까? 어쩐지 믿어지는 것이지요. 어쩐지 좋아지는 것이지요. 어쩐지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인정해 주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여러분 믿음은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어쩐지 기쁘고요, 어쩐지 예수님이 좋아지고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입니다. 머리는 믿는 데가 아닙니다. 머리는 사고하고, 비판하고, 분별해서 아는 데입니다. 반면 가슴은 느끼는 곳입니다. 사랑이 느껴지고요, 좋아지고요, 기뻐지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가슴으로 받는 것이지, 머리로 받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어떻게 하셨나요? "내가 너를 고친다는 것이 이해되느냐? 내가 고칠 것 같으냐?“ 라고 물어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고칠 줄 믿느냐?”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복음이란 문이 아니라 문고리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빌딩을 찾아갔을 때 출입문에 문고리가 달려 있으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 문고리 잡고 문을 열지요. 그러면 잠가놓은 것이 아니라면 문이 열립니다. 문고리를 달아놓은 것은 거기를 잡고 문을 열어라. 그러면 열린다.”라는 약속을 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미신 십자가의 문고리를 잡기만 하면 문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복음은 자동문 앞에 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동문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떠했을까요? “아니 저 문에는 손잡이가 없네, 어떻게 들어가라고 그러지? “저 문을 어떻게 열지?” 하며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가까이 가니까문 앞으로 나가니까 신기하게도 문이 활짝 열립니다. 깜짝 놀랐겠지요. 여러분 복음이 그런 것입니다. 믿어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너를 받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단다. 아니 어떻게 그것을 믿어요. 십자가 밑으로 가까이 가보면 압니다. 가보니 자동으로 문이 열리면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앞에 믿고 서는 겁니다. 그러면 다음의 일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복음은 모든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여기 사용된 능력이라는 단어는 뒤나미스(δναμις)입니다. 다이너마이트가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강력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어 사람의 영혼과 삶을 뒤바꾸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인생의 죄와 죽음의 문제와 심판의 문제는 복음 밖에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복음의 능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은 인간을 죄에서 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며, 영생을 주고, 영원한 형벌로부터 영원한 기쁨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능력이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질병을 치유하여 강건하게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심판을 시상으로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직접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다시금 복음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식은 분들은 다시 복음 앞에 서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새롭게 체험하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와 참된 기쁨과 평강과 천국을 소유하십시오. 다시 복음 앞에 서서 의인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14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렇습니다. 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하여 아직 주님을 모르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고 또한 복음이 여러분에게서 또 다른 이에게로 계속 확산되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이들이,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는 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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