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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해와 하나님의 말씀 박승남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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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9:1-14절 개역개정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19:1~14 하늘과 해와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아는 데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하여 그 사람을 내가 알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아는 것이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만, 그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친구로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로 사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특권입니다.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좋아하지만, 그 사람도 나를 알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특별하게 서로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으로 아는 것입니다. 가족으로 안다는 것은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며, 이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서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도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를 다 받고 다 누리면서도 처음에는 이것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혜는 하나님께 받으면서 감사는 엉뚱한 곳에 합니다. 예를 들면 죽은 조상에게 돌린다든지, 우상에게 돌린다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돌립니다. 이번 명절에도 많은 사람이 그리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하나님의 은총들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깨닫기 시작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일반은총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 보편적으로 주신 은총으로 하나님께서는 선인이나 악인에게 똑같이 햇볕과 비를 내리시고,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역의 주인되시며, 모두에게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이나 비나 참 아름다운 천연의 놀라운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을 깨닫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도 미련해서 이런 복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희미한 유리로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하고 느끼기는 하지만, 선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특별은총이 있습니다. 특별 은총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베푸는 구원과 영적인 은혜를 가리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다시 자연 현상을 보면 그때는 하나님의 솜씨나 능력을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들에 피어 있는 들풀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떤 때에는 노란 꽃이 피어 있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흰 꽃이 또는 붉은 꽃이 온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꽃들은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그냥 그대로 피어 있는 것입니다. 또 불타오르는 태양은 누가 저 하늘에 매달아 놓았을까요? 그리고 누가 밤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을 만들어놓았을까요? 요즘 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 19편은 시적으로도 참 아름답고 내용적으로도 심오한 시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이 19편을 시편의 대표적인 시로 꼽기도 합니다. 영국의 C.S 루이스는 나는 이 시를 시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로 간주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서사시로도 손색이 없는 시라고 추천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구약학자 팔머 로버스는 시편의 대표적인 시가 6개가 있다고 추천을 했습니다. 1, 2, 18, 19, 119, 120편입니다. 1편과 2편은 시편을 시작하는 문을 여는 시로서 아주 중요한 시라고 소개를 했고 119120편은 시편을 결론 짓는 시로서 중요하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18편과 19편은 1편의 두 기둥과 같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시편 19편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말 한마디 없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은 얼마나 놀랍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증거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에 대한 증거와 찬양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천연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큰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은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교과서라면 천연은 참고 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잘 공부하면 참고서는 더 잘 이 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의 작품이든 그것이 음악이든 또는 미술이든 또는 조각이든 어떤 무엇이든지 간에 이 작품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신, 영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 그속에 렘브란트가 숨을 쉬고 있고 베에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바로 베에토벤이 그 속에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작품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 계신데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작품을 하늘(궁창)과 해로 들고 있습니다.

하늘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눈으로 보는 파란 하늘, 밤하늘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주와 행성, 항성 등의 천체들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해에 집중하고 있고 해를 신방에서 나온 신랑과 같다라고 합니다. 아침에 새 신랑이 신방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이 어떠할까요? 결혼 후 첫날을 시작하는 새신랑은 그 얼굴이 환하고 광채가 날 것입니다. 이런 신랑의 모습을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지치지 않고 힘차게 그의 코스를 달리는 생기 발랄하고 혈기 왕성한 장사, 용사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만든 작품마다 그들의 고유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2, 4절입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우리 사람이 각자의 고유 언어를 쓰듯이 하나님의 작품 속에서는 속에는 다 자기의 언어가 있습니다. 해는 해의 언어가 있고 달은 달의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바울도 만물이 탄식한다(8:22)고 만물의 소리를 이야기했는데 이 시인도 만물의 소리를 이야기합니다. 이 해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거대하게 돌면서 이 온 만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밤에 이 우주를 돌면서 또 만물을 향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얼마나 큰지 4절에 보면 그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52절에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큰 음성이라는 말이 ejn fwnh'/ megavlh (엔 포네 메갈레)인데 이 megavlh라는 것에서 메가톤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메가톤급의 소리라는 것으로 이는 천사가 말하는 소리는 어떤 부분만 알아듣게 말하는 게 아니라 온 우주가 다 듣도록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도 오 천하가 주님 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또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칭 재림 예수라는 이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인은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그리고 웅장한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만 역시 그것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두 번째 하나님께 접근하는 길로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있는 하나님께서 만든 작품이 아무리 아름답고 섬세해도 하나님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좀 더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말 사람의 언어 그건 그 사람의 표현이죠. 저는 이 말(언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통해 그 사람이 확장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있지만 내 말이 가는 곳마다 내가 확장되어 나가지 않습니까 그게 언어입니다. 제 이름을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작가라고 나옵니다. 참 묘한 기분입니다. 어쨌든 저와 여러분이 공저자로 펴낸 책이 여러 사람에게 읽혀집니다. 그러면 나의 마음, 생각, 나의 글이 그만큼 알려지는 것이고 내가 그만큼 확장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는 자연도 신비롭고 감동적이지만,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은 더 신비롭게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연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소중하냐면 말씀이 가는 곳마다 영혼을 소성시킨다고 합니다. 영혼을 소성케 한다를 새번역은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아준다, 공동번역은 생기를 돌려준다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을 소생케 합니다. 시들어가는 꽃 화분에 물을 주고 태양이 비치기만 하면 다시 소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을 주어도 해가 비치지 않으면 그 식물, 그 생명들은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영혼이 살 방법이 없습니다.

 

이지선 상담심리사회복지학 교수를 아시나요? 2000730일 밤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근처 대학에 있었던 오빠와 함께 작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한강로 1가에서 빨강 신호등이 바뀌어 오빠가 차를 세웠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 도망가다가 그 차를 들이박아 차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뒷좌석에 있던 지선 양의 몸에 불이 붙었고 전신 55%2도 중화상을 입게 되었고 오빠가 동생을 꺼내다가 오빠도 화상을 입었지만, 티셔츠를 벗어 불을 꺼주고 응급실로 긴급 후송되었습니다. 의사는 오빠에게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맥도 안 잡히니 곧 갈 것 같으니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안 가고 대학교수까지 되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녀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일들을 제 눈으로 확인한 자리가 있었는데요. 제가 책 내고 처음 사인회를 할 때였어요. 늘 길에 나서면 불쌍하고 동정의 대상이었던 제가 글을 쓰게 되고 그것이 책이 되어 나오고 또 TV에 나오면서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저를 만나고 싶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 저 신기한 장면을 보면서 저도 막 마음에 감격이 되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이제 사람 꼴 안 될 거라고 세상에 나가서 살 기대하지 말라고 그렇게 참 아픈 말을 아프게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자리에 앉아서요. 그 의사 선생님 말씀이 딱 떠오르면서 의사 선생님의 말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를 치료해줬던 선생님들 너무나 감사하지만, 그분들이 제 인생까지 제 미래까지 진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러면 그녀의 인생을, 미래를 선하게 이끄신 분이 누구실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서 수많은 수술을 하고는 7개월 후 퇴원해서 다니던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전에 자기가 섰던 찬양대가 멋지게 찬양을 하는데 자기는 남들이 볼까봐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참 초라한 기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지만 그것이 귀에 안 들어오고 하나님 저에게 계획이 있으실 텐데 그걸 알려달라고 기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옆에 오셔서 안아주시고 위해 기도해 주셨는데 사랑하는 딸아 라고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그냥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고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면서 약속을 하셨는데 너를 세상 가운데 다시 세우겠다. 이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많은 고난을 이기고 대학교수까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보람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둔한 자는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 단순한 자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마소(馬牛)와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과 소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이 이 땅에 너무 많습니다. 물론 돈 벌고 그거 가지고 향락하고 죄 짓고 사는 건 뭐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들이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 재물만 탐하는 사람들, 권력을 쫓아만 가는 사람들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농사 지어서 양식을 곳간에 다 쌓아놓고 자기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이제 됐다 그런 사람을 향해서 오늘 하나님께서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12:20)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단두대를 세웠는데 결국 자기가 거기 목매다 거기에 달려 죽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거나 말씀을 멀리하면 자기가 지금 걸어가는 길이 죽음의 길인지 얼마나 어리석은 길인지를 모르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지혜가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추구하고 살아야 값진 것이고 영원한 것일까를 알게 됩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라고 말씀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합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야고보서 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세상 것들 맛있는 거 먹고 또 좋은 데 여행하는 것입니다. 그건 일반적인 기쁨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그보다 좀 더 고상한 건 지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공급해 줄 때 참 기쁩니다. 문제는 그런 지식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면 그 기쁨은 1년 아니 10년 어떤 땐 평생 가기도 합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 말씀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119103절을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406~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 시대나 이사야 선지자 시대나 그리고 예수님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진리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1217절을 보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보면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정말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맛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맛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여러분 재물 탐하지 않겠죠. 무슨 권력 탐하지 않겠죠. 하나님 안에서 늘 행복하게 살아가겠지요.

 

이 시의 대표적인 구절이 어디냐 이 씨를 요약해줄 말씀이 어디냐 그러면 6절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6절에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여기 그의 열기라는 말이 나와요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다. 숨을 자가 없다. 그런데 이 열기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표현 같습니다. 영어로는 warmth로 따뜻함, 온기입니다. 요즘은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힘들게 하지만 겨울에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태양의 온기로 곡식과 과일을 익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태양과 열기는 말씀의 열기로 연결되어집니다.

 

6절을 통해서 앞에 하나님의 작품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만나는데요. 열기 태양은 이 태양계의 온 세상을 다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태양의 열기가 이 땅에 살아 있는 생물 동물 살아 있는 생명의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땅의 모든 인간들에게 하늘의 생명을 넣어줍니다. 그 생명을 보존해주고 유지시켜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태양이 없으면 지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물과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가는 이 하나님의 말씀 이 두 가지를 묵상을 하다가 이 시인은 그 하나님의 경외심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의 작품만 봐도 놀라운데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로 이 말씀에 오면 말씀 없이 내 생명이 없다고 할 때 이 시인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내가 내 자신을 좀 더 깨끗하고 바르게 준비하고 서야 할 텐데 과연 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12~13절을 보면 이 시인은 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우리 인간은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걸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앞에서 내가 죄를 짓는 것인지 아닌 것도 모르고 짓는 죄가 또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백을 해요. 주님 나를 주장해 주십시오 주님이 나를 주장해 주시고 다스려주셔야만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의 진정한 소원은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참으로 귀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명절을 맞이하면 우리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안일해지기 쉽습니다. 어쩌면 죄를 짓기 쉬운 환경에 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더욱 드려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간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또 영원의 세계에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을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절대로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 그리고 이 인류는 망하고 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직 한 분 영원에서 오신 그분 때문에 우리가 말씀으로 빛을 보았고 영혼이 생명을 얻고 생기를 얻게 되었고 기쁨을 얻었고 평안을 맛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 앞에 오늘 우리도 이 시인의 고백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나는 주님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가장 귀한, 그리고 나의 궁극적인 기도가 돼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정말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누리고 살고 싶습니다.”

이번 명절을 맞으면서 천지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 위대하심과 사랑을 느끼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정말 하나님의 기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도록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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