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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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박승남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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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6:13-20절 개역개정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6:13-20 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어느 10월경, 아마도 십자가를 지시기 6개월 전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의 북쪽 끝 지방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셨습니다. 이 곳은 본래 이스라엘 최북방 헬몬 산 기슭 해발 345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머리 위로 헬몬산 정상의 만년설이 올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곳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로마가 지배한 당시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이 있었던 곳입니다. 수백가지 신상(神像)들이 세워졌고 이 지역에서 여러 신들에게 제사가 드려졌던 곳입니다. 이러한 만신전이 있는 곳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人子. Son of Man)를 어느 신과 비교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빌립이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 황제의 칭호인 카이사르에 자신의 이름 빌립을 덧붙여 가이사랴 빌립보라 명명한 곳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 속한 영토 내에는 로마 황제의 이름이나 칭호를 붙인 도시가 어렷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도시에나 황제의 이름을 붙일 순 없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는 로마 황제의 위용에 걸맞는 규모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당시 세계의 일인자인 로마 황제의 이름을 아무 곳에나 같다 붙인다면 그것은 황제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조건은 그 도시의 중심에나 또는 가장 높은 곳에 반드시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지상의 신으로 떠받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봉황 헤롯이 건설한 도시에 황제의 칭호가 붙였다는 것은 이 두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로마 황제에게 절을 해야 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사랴 빌립보는 한 마디로 황제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던 황제의 도시입니다. 로마 황제가 신이고 세상의 주인이라고 선포하는 이 땅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황제의 도시에 주님의 일행이 나타났을 때, 그곳 사람들은 초라하고 옹색한 차림새를 보고 우습게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행의 행색은 유행이나 세련미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보다 로마 황제 신전의 문지기가 훨씬 더 값진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초라한 모습의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황량한 벌판에서 던지신 질문이 아니라 황제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던 황제의 도시, 즉 황제의 권위 앞에서, 로마 황제의 위엄이 도사리라고 있는 곳에서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대답하기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서슴없이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로마 황제를 세상의 주인이요, 신이라 추앙하던 땅에서 베드로는 담대히 고백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도 신도, 세상의 주인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주인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먄 왜 예수님은 바로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613~20절의 내용중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 어디인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대부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핵심구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핵심구절은 18절입니다. 18절의 내용을 말씀하시려고 신앙고백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18절을 읽어봅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관심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 있었습니다. 신앙고백을 확인하신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준비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절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단어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말씀하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말을 하시는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나의’, ‘라고 하신 데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한다그리고 나의 교회”, “내가 세운다를 강조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또는 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18절의 핵심어는 교회 이전에 예수님 자신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내가 세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며, 그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라고 못 박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면, 교회는 누구 위에 세우시는가요? 교회를 허공위에 세울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인격을 가진 어떤 사람들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반석위에 나의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반석은 사람 또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말씀에서 베드로또는 반석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하나는 베드로 이름 그대로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바위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반석입니다. 가톨릭은 이 한 절에 기초하여 예수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주장을 하고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세워놓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베드로는 원어로 페트로스입니다. 그리고 반석은 페트라입니다. 페트로스는 남성명사입니다. 당연하지요. 베드로가 남성이니까요. 그런데 페트라는 여성명사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어 원어로 보면 원어가 다른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려 하셨다면 시몬위에 세운다 하시던지 뒤에 반석도 남성명사인 페트로스라고 말씀하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는 남성이고 뒤에는 여성명사입니다. 왜 이렇게 단어를 바꾸신 것일까요? 이는 일종의 언어 유희입니다. 교회는 우선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반석이라고 하면 마태복음 724~26절에 나오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사람모래 위에 세우는 사람의 비유가 연상됩니다. 그렇다면 이 반석은 누구를 가리키는가요? 예수님이 마태복음 1820절에서 교회에 대해 말씀하실 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을 언급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 사고는 어떤 책임 있는 일을 할 때 항상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강조합니다. 디모데전서 519절에서도 장로에 대한 송사를 말하면서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131절에서는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절에도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아주 중대한 일을 한 사람에게만 맡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증인이 없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사용하신 반석이란 베드로 개인을 가리키기 보다는 그곳에 모여 있던 두 사람 이상을 지칭하는게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 즉 제자들로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곳에 있던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을 고백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특정 개인 위에 세워지ㅐ기 보다 신앙을 고백한 무리들 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총회 헌법 제2장 제10조 지 교회의 설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동예배로 모이는 전도처 또는 기도처에 세례교인(입교인) 15인 이상이 있어 지 교회를 설립코자 하면 노회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 설립한다. 그러니까 교회 헌법은 세례교인 15명 이상이 되어야 정식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15명이 안 되는 처소는 교회가 아니라 기도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숫자는 교단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한 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무리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내가 없다면 공동체가 없듯이 공동체가 없다면 나도 없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교회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교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주체는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직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직책위에 세위지는 게 아닙니다. 직책, 직분이란 교회를 섬기도록 세운 수단에 불과합니다. 고린도 전서 125~7절을 보면 은사직분교회를 유익하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직책이 신앙보다 높아지고, 직책위주의 교회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위에 세워집니다. 바로 그들이 교회의 주체입니다.

못 배운 촌사람, 갈릴리 어부들이 어떻게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까? 그 원인은 단순합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황제보다도, 헤롯보다도 주님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살므로, 주님이 그들을 높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세상의 어느 것도 의지하지 않고 순수하게 만왕의 왕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섬겼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섬기는 사람들에겐 왕께서 무언가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다른 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은 높여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 행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뭔가를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 이외에 어떤 것에도 최고의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재물도,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어느 것도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아닙니다. 그런 것을 섬기면서 주님을 왕으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정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정말 누구라 하느냐?" 대답은 여러분 각자가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정직하게 여러분의 지금 마음을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교회에 주어진 특권은 무엇인가요?

1)"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이 말씀은 앞으로 주님이 세울 교회가 세상 모든 권세를 누르고 영원할 것이란 뜻이 있고, 이 교회가 세계 끝까지 뻗어나갈 것이고, 어떤 악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음부(陰府)a{/dh"(하데스)로 죽은 자의 거처, 죽은 자의 나라이며, 권세란 puvlh(퓔레) 대문, , 성문 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음부의 권세란 죽은 자의 성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표상은 지하세계가 도망자를 막고 침입자의 접근을 저지하는 견고한 문으로 잠겨 있다는 고대의 일반적 생각을 나타내 보입니다. 기독교 이전의 유대의 용법에 있어서 그 표현은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어 음부 즉 죽은 자의 영역, 심지어는 죽음 자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38:10). 따라서 음부의 권세란 사망의 권세를 말한다. 주님은 미래를 보시면서, 앞으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계속해서 방해를 하겠지만, 그 권세가 절대로 교회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교회를 보면 얼마나 모순이 많은지 모릅니다 말도 많고 갈등도 많고, 시비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술 먹는 친구들이 교인들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교회가 금방 지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2천년 동안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 성장이 멈추고 떨어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주님의 교회는 지금도 계속해서 교회는 성장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선 많은 기관과 조직이 일어나고 없어지곤 합니다. 아무리 긴 역사를 자랑한다 해도 10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존재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이기 때문이요, 교회의 운영자도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운영은 하나님께 맡김이 마땅합니다.

 

2)이어서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주님은 천국의 열쇠를 주십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베드로가 받았고, 교황이 이어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죄할 수 있는 특권이 교황에게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반석이 베드로가 아니라고 밝혀낸 이상, 열쇠도 베드로 개인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더욱이 분문은 교회를 세우는 원리를 전하는 내용이므로 베드로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교회에 집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주님은 열쇠를 주시면서 매고 푸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매고 무엇을 푼다는 것일까요? 천국의 문을 매고 푼다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사람을 용서하고 죽이는 권한이 베드로에게 있다는 말인가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기엔 많은 해석이 따릅니다. 어느 분은 기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풀리게는 하지만 매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열쇠는 기도라기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전도받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하늘에서도 그를 받아주시고, 그것을 거부하면 하늘에서도 그에 대하여 닫는다는 뜻입니다. 교회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하나님 나라와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16~17절에서 분명히 밝히 놓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난과 박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인 요하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것입니다.(11:15) 그런데 이런 나라는 계시록 12:11절과 같이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김으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개념도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교회의 생명은 증언자로서 사는 데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사도행전을 기록한 궁극적인 목적도 부활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증인으로 살 것인가를 보여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증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사도행전에 의하면 증인이란 예수님을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배워서 알아야 하고, 또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경험해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다른 이들에게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1:21~22)

그런데 증인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요한계시록에서는 믿음이나 구원이란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긴박한 삶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느냐를 다룬 책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증인믿으로 산 자만이 최후의 승리를 거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원문에서는 왕노릇 했다과거형으로 쓰임 20:4)

 

천국 열쇠(복음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책임과 권한을 의미합니다. 그 특권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모체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잘못되어 간다고 해도, 그럼에도 하나님을 보여 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곳도 교회뿐입니다. 이 책임과 권한을 이루어ㅏ 가는 도구가 존도 혹은 선교입니다. 교회가 없다면 이 땅의 그 어떤 선교단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천국 열쇠란 교회에 주신 영혼울 구하는 책임이요 특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특권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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