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

  • 홈 >
  • 나눔 >
  • 신앙의 기초
신앙의 기초
보석처럼 빛나는 교회의 일꾼들 박승남 2019-08-27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486

http://areumdaun.net/bbs/bbsView/27/5623909

[성경본문] 로마서16:1-5절 개역개정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롬16:1-5 보석처럼 빛나는 교회의 일꾼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이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또한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이 가운데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젊은이도 있고 연세 드신 분도 계십니다. 싱글도 있고 부부도 있습니다. 귀족도 있고 노예도 있습니다. 사업가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모두 다 소중한 교회의 일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세우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지도자로 세워졌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일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 뵈뵈라는 여성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후 57~58년 늦가을에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로마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곳 교회들이 모아준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로마교회는 자기가 가지 못하는 대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전달한 사람이 바로 뵈뵈라는 여성입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우편제도가 없었기에 누군가 그 편지를 가지고 로마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해상으로 가든지 육로로 가든지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편지가 잘 전달되어 오늘 성경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뵈뵈가 그 역할을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뵈뵈는 고린도 동편에 있는 항구 촌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 뵈뵈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1)우리 자매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를 실제로 하나의 가정의 개념으로 여기고 모여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가정의 헌신적인 멤버로 어린 자녀들에게는 어머니가 되고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누이도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누나가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특별히 바울에게도 누나 같은 사람이란 뜻도 됩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어떠한 사람인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2)교회의 일꾼입니다. 여기 일꾼 diavkono"(디아코노스)라는 말은 하인, 종이라는 말로 여기서 집사 ‘deacon’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 여인은 여자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에서는 단지 교회를 열심히 섬겼는 분이라고 해석하고 안수를 허락하는 교단에서는 여 집사였다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기독교 변증론이라는 책을 보면 여성 안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교회 여 집사였을 것입니다. 그것도 사도 바울이 인정하는 일꾼입니다. 여러분 16장에는 뵈뵈를 비롯하여 모두 9명의 여성이 언급됩니다. 브리스가, 마리아, 두루배내나, 두루배사, 버시, 루퍼의 어머니, 유니아, 올름바 등입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교회 안에 여성들의 활동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일찍부터 여성들을 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당시 사회는 여성은 사람 수에 쳐주지 않고 남편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되었던 시대였지만 교회에서만큼은 소중한 일꾼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남존여비 사상으로 짓눌려 있었을 때 선교사들은 복음을 들고 들어와 여성을 교회와 학교로 이끌어 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는 일꾼으로 교육시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많은 여성 인재들과 선각자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총회가 열릴 때마다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여성 총대 숫자입니다. 올해 본 교단 총회의 여성총대는 102회 총회 여성총대 고작 17명에 불과했습니다. 1,500명의 1.1%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여성 숫자가 더 많은데 이정도 밖에 되지않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장합동은 총대 1,640명 모두 남성입니다. 교단에서 여성 목사·장로 안수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교단은 이번 총회에서 '여성 할당제'를 통과시켰습니다. 노회 별로 여성 총대 1인을 파송해야 한다는 제도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진출은 갈수록 그 비율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태동하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부흥 성장에 '여전도회'는 견인차와 밑거름의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자 그러면 뵈뵈집사에 대해 사도바울은 어떻게 추천했을까요?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첫째로 뵈뵈는 여러 사람과 사도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호자라는 말은 앞에 서 있는 자라는 의미로 지키는 사람’, ‘대표자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뵈뵈는 여성의 몸으로 퍽 유력하게 활동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도와주며 지탱케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칭찬 격려함으로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해주고, 교회 일을 하다가 지친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어 다시금 힘을 내어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사정이 생겨 못하게 되었을 때 그냥 바라만 보지 않고 그 빈자리를 채우며 묵묵히 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는 누가 이러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누가 이러한 집사가 되며 누가 이러한 일꾼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뵈뵈 집사는 사도바울의 선교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많은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일을 하게끔 돕는 보호자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추천하면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는 말은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으로 정중하게 그녀를 대접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주 예수님을 정성껏 영접해야 하지만 주님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도 예의를 갖추어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도움을 원하든지 그녀가 로마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뵈뵈가 로마에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다해 주라는 것입니다.

뵈뵈는 사도바울이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과 믿음을 소유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요, 또한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는 자비 부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를 전달한 뵈뵈는 초대교회를 빛낸 진주와 같은 인물이었고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큰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2. 이어서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 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아굴라 부부에 대해서는 본문과 사도행전 181~3, 1818~19, 24~26절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살던 아굴라 가정이 고린도에 왔을 때 바울이 그들에게 갔습니다. 왜냐하면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아굴라의 집에 생계를 위하여 공장에 일꾼으로 (part time) 취직하러 들어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반드시 3가지를 물려준다고 합니다. 1)학문(지식) 2)유산 3)한 가지의 기술입니다. 랍비 유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아들을 도둑놈이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과 같다현재는 license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대 명언이 있습니다.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울타리로 잘 보관된 포도원을 지닌 사람과 같다.” 울타리가 없는 포도원은 지나가는 사람이 쉽게 딱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해를 보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기술이 없다면 인생에 큰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유대이이었고 많이 배운 엘리트 였지만 그도 역시 기술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아굴라의 가정은 믿는 가정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요? - 바울과 같이 일하면서 복음을 듣게 되어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의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되었느냐 하면 에베소에서 아볼로를 만나서 그의 설교를 듣고 잘못을 시정해 주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후에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간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간 뒤 에베소에서 귀한 웅변가요 성경에 능통한 청년인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를 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조용히 불러다가 하나님의 기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후부터 아볼로는 훌륭한 목회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들 부부는 성경실력이 있었던 부부요, 친절하고 열심히 있는 부부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지식이, 영적 수준이 얼마나 진보되었습니까? 나는 여러분 모두가 아굴라 부부처럼 다른 사람을 성경으로 잘 지도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수준까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이름의 순서가 바뀌게 됩니다. 즉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학자들은 브리스길라는 학문이 깊은 학자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브리스길라는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한 부인이었습니다. 이름이 앞선 것은 아굴라가 못나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아내 브리스길라의 활동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활동적이고 헌신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내를 이해하고 함께 삶을 나누었던 남편의 이해력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 로마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그리고 로마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들 부부는 에베소에서 한 동안 사역을 한 후 에베소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추방령을 내렸던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고(A.D. 54) 추방령은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은 다시 옛 집과 직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물론 아굴라 부부도 돌아갔는데 이들은 단지 생계문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의 복음화를 염두에 두고 다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가서 끝까지 에베소 교회를 섬겼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말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에 의해 복음을 들은 뒤 아굴라 부부의 천막 공장이 고린도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마침 그 집이 바로 회당 옆에 있어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후에 회당장 그리스보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가는 곳마다 그의 집에 교회가 되었습니다. 고린도나 에베소, 그리고 로마에서 말입니다. 아굴라 부부의 집은 항상 교인들의 친교와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꼭 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모든 가정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개방된 문, 개방된 손, 마음 등이 기독교인 생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house church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일도 없습니다. 이것은 곧 마음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손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원하신다면 내 집이라도 언제든지 내 놓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은 교회의 집이요, 교인들의 집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나는 잠깐 임시로 맡아 있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오늘 날 우리는 셀 가족 모임 장소를 제공하는 가정은 그 때 가정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우리 집에 교회가 아니라도 1~2달에 한 번씩 우리 집이 교회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영광이요 귀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셀 모임, 구역예배를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성장은 소 그룹으로 모이는 셀 모임, 구역 예배와 같은 가정 단위의 모임이 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가 이들 부부를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3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합니다.

동역자 께 수고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동료입니다. 이들은 그림자처럼 바울 옆에서 조용히 섬기며 살았던 부부입니다. 비록 바울이 자기 집의 직공이었지만 복음을 듣고는 이제 예수님은 물론 바울을 섬기는 종으로 살기로 결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전체, 가정이나 자기들의 미래를 하나님과 교회 앞에 내놓고 산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8:9절을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바울이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덴에서 전도에 그리 큰 결과를 얻지 못해 기분이 침울하고 위축되어 있었고 게다가 고린도를 돌아본 뒤 그의 마음은 더욱 절망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란 도시는 향락문화,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염려하는 마음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시고 동시에 성령의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61~15절까지 언급되는 사람들 26명 모두가 바울을 도운 동역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도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랑 받는 의사 누가입니다. 또 디모데, 디도도 빠져 있고 루디아도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을 도운 이들이 100명인지 200명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에게는 수많은 조력자, 동역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바울의 위대한 점입니다. 바울을 돕고 섬기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바울이 얼마나 사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였는가를 증명합니다. 바울은 깨끗한 마음으로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예수를 자랑하고, 복음을 자랑하며 교회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요소요소에서 여러 사람이 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만 봐도 바울이 참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꺼이 바울을 도와준 사람들도 훌륭합니다. 저들은 바울을 도움으로 주님의 일을 하였고 주님을 기쁘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이 당시에 살았다면 이 26명 가운데 드는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 있는 좋은 교회가 되려면 이 26명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라고 합니다. 자기의 목을 칼날 밑에 놓았다.”라는 뜻으로 생명을 무릅쓰고 바울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목을 대신해 자기가 죽음을 택할 수 있을 만큼 바울을 도우며 산 것이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가장 절박한 생명의 위험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물론 그 언제라 말할 수 없이 바울을 만나 신자가 된 뒤부터 늘 그리했습니다. “바울이여 당신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 놓겠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소서.” 하고 하며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선교를 지원하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86절을 보면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고 하였습니다. 즉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1812절을 보면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 이러한 때에 아굴라 부부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듭니다.

여러분 아굴라 부부는 자기들의 일부분을 주님을 위해 내어 놓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전체를, 가정이나 자기들의 마래를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까지 하나님과 교회 앞에 내놓고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의 종이 힘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돕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요, 주의 종을 해하는 것이 곧 주님을 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과의 관계는 바른 관계,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이 있으면 물질로 돕고 재능이 있으면 재능으로 돕고, 시간이 있으면 기도로 돕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로 각자의 소질에 따라 힘껏 봉사해서 교역자를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종이 어두우면 어두운 설교를 하게 됩니다. 종이 기쁘면 기쁜 설교가 나옵니다. 종이 심령이 편안케 되면 성도들이 편안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나는 어느 장로님, 어느 집사님 때문에 목회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때 그 장로님, 그 집사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왠지 고마워지고 괜스레 보고 싶어집니다.

 

부부가 동시에 좋은 신자가 있고, 남편이나 아내 혼자서 열심인 가정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신앙은 가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 각 자의 가정을 좋은 신앙의 가정으로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며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남들 모르게 헌신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목회자가 힘을 얻고 교회는 든든하게 세워져 갑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나 교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헌신하도록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4절 후반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을 위한 헌신적인 동역자 였고 또한 자기 집을 예배당으로 내어 놓았으니 사도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감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암 그렇지요, 감사해야지요, 그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잊는 다면 사람이 아니지요. 아마 주님도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저에게도 여러분은 고마운 분들입니다. 특히 우리 귀한 권사님들 매우 고맙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섬겨 주신 것도 감사하고 이렇게 함께 계셔 주시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제 옆 사람에게 서로 옆에 있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 봅시다. 여러분 모두가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에게 이러한 감사를 받을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처음 다닌 것이 1968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습니다. 시골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와서 큰 누님의 인도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실은 시골에서도 다닌 것이었습니다. 물론 건물이 있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때 우리 시골 초등학교 교감선생님 부인이 예수님을 믿는 분이었는데 이 사모님이 저녁마다 아이들을 초가집 사택 마당에 불러 놓고는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주고 노래도 가르쳐 주고 먹을 것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배운 노래 중에 하나가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어린이 찬송가였습니다. 그때는 찬송가인줄 알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어서 배웠는데 아 글쎄 나중에 서울로 이사 와서 교회에 가보니까 교회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이후 철이 들고 나서야 그 사모님이 예수님을 믿는 분이었고 자기 집을 교회로 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얼굴 기억도 안 나고 이름도 모르지만 어쨌든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로마서 161~15절까지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한 보석같이 빛나는 일꾼들입니다. 수고함이 없는 사람은 기억도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땀흘려 수고하고 애쓴 사람은 그 만큼 기억되고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름 세 글자를 누가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수고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진정 여기에 거명된 여러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힘써 수고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에게 기억되고 교회에 길이 기억되고 주님께 칭찬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잘 섬기는 뵈뵈와 같은 사람,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여러 일꾼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구원의 확신 박승남 2019.08.27 1 1899
다음글 은혜의 보고 - 교회 박승남 2019.08.27 0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