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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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오시는 날 (재림) 박승남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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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4:13-18절 개역개정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살전413-18 주께서 오시는 날 (재림)

 

여러분은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고민을 통하여 얻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10,11월에 걸쳐서 죽음을 자주 대하게 됩니다. 마성침례교회 최재룡목사님 60나이에 별세하고 가은 완장감리교회 조성도 목사님 59세에 교통사고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같이 신앙생활했던 친한 목사님이 60을 갖 넘겼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렇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또한 그 죽음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고 슬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끝이라면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할 것입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죽음은 더욱 그러합니다.

원래 인간의 상태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기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이후 우리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서 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육신적인 죽음에 관하여서는 불신자와 신자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도 죽음의 문제로 슬퍼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바울 사도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기들 생전에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시지 않고 자기 동료들이 한 사람씩 죽어가자, 그들은 불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과연 오실 것인지, 주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난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데 이처럼 불안에 떨고 있던 신자들에게 바울 사도는 일찍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나 후에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는 성도들이나 구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주님 앞에 나타나 영원한 주님과의 친교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5:8절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1:23절을 보면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이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도 귀하고 좋은 일이지만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몸이 죽은 이후에 영혼이 살아있지 못하다면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몸을 떠나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회개하는 한편의 강도에게 말씀하신 것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죽은 이후에 신자들의 영혼은 주님의 품안에 들어가서 안식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아도 이 점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을 보면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이들의 옛 육신은 부활의 몸으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고, 또한 그들의 영혼은 그 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대하여서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16:19-21) 아주 극적인 대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들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있고 낮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적게 배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신분이나 재산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생애에도 이 평등이 지속될 수 있을까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사후에는 어떠한 상태가 되었을까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16:22-23)

세상에 살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에서 돈을 벌고, 출세하며, 자신의 안일만 도모하려고 합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생애가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자가 간 지옥은 꺼지지도 않고 계속 타기만 하는 불꽃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죽지도 않고 고통만 받는 곳입니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가 그 속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아브라함에게 "저 나사로로 하여금 손가락에 물을 조금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십시오."(16:24)라고 부탁하였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신자인 나사로와 불신자인 부자의 영혼이 죽은 이후에도 의식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점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나사로는 죽은 이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간 반면에서 부자는 고통스러운 장소로 갔습니다. 신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신자에게 있어서도 육체가 분리된 상태는 마지막 상태가 아닙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존전으로 가는 반면에 불신자들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받게 될 고통의 장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의 영혼은 음부에서 고통을 받으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신자든, 불신자든 다 부활하여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때 무덤 속에 죽어 있는 자들, 그들이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다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신자들은 완전한 존재, 즉 몸과 영혼을 가진 상태에서 영광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몸과 영혼을 가진 상태에서 심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까지 신자는 주님의 품에서, 불신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으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들어가서 살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이며 살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세상에서의 삶이 미래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실 때의 모습을 어떠할까요?

사도행전 1장에는 주님께서 승천하시던 모습이 나옵니다. 구름(영광) 가운데,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승천하셨습니다. 오실 때의 모습도 그와 비슷합니다. 다만 다른 것은 천사장이 호위하고, 나팔을 울리고, 영광 중에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성도들은 죽은 자나 산자들이 그대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집니다. 구름 속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지상적인 것을 뛰어 넘어서 변화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나라,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이 하늘나라의 가장 잘 보여줍니다. 또 우리 안에 영혼이 있다는 것도 하늘나라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세상에 물질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데 영혼이 없어지겠습니까? 그 나라에서 우리들이 입을 몸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보여주신 모습과 똑같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벽을 넘어 자유자제로 들어오시고, 언제 어디든지 가 계시고, 사람들이 신령한 눈만 뜨면 알아볼 수 있고, 그러나 아무도 해할 수 없는 거룩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몸은 그 사람을 인식할 수는 있으나(옷을 만져보고, 같이 음식을 먹었던 일), 그 몸은 이 세상의 몸과는 전혀 다른 영적 존재가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늙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스데반은 죽을 때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는 하늘 보좌에 주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겼습니다. 이것은 죽은 이후에 그의 영혼이 주님의 품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영혼은 지금 주님 품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돌에 맞아 찢겨진 그의 몸은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상태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스데반의 죽음을 기록한 누가는 "잤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13절에서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라고 말씀하므로 신자의 죽음을 "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한번 죽지만 잠시 자고 있는 것이고 장래에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그리스도가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 후에 교회에 엄청난 핍박이 다가왔지만 그들은 많은 역경 가운데서도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신자들이 스데반이 본 이 세계를 볼 때 계속하여 믿음으로 살 수 있고, 또한 스데반처럼 순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계를 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자신이 직접 하늘나라에 가본 사람입니다(고후12:1-3). 그 나라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그 나라에 가본 사람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나 죽은 자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소망은 하늘나라이다. 그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하늘나라를 마음에 그려보게 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계7:13-17까지를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 신앙이 필요합니다.

블룸하르트는 남독일 시골 마을의 목사였습니다. 그저 평범한 시골 목사에 불과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그의 '종말론적 신앙론'이 기독교사에서 꽤 의미 있게 다루어졌습니다.

블룸하르트 목사는 예수의 재림을 살아 생전에 보리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의 집 마당에는 언제나 한 대의 마치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자 마자 그 장소로 달려가려고 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끝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말론적 사상으로 인해 사회나 현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후3:11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곧 재림할 것이니 일하면 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았던 블룸하르트 목사님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변혁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했으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일깨워 줌으로써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생애 동안에 예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끝날에 대한 확신 가운데서 깨어 한 시대를 생기 있게 살다간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땅위에 오시리란 구약의 예언 회수는 456회인데, 주님의 재림 예언 회수는 신구약에 도합 1518(신약에만 300)라고 하는 사실을 아십니까? 456회 예언된 예수님의 초림(初臨)은 성취되었는데, 1518회나 예언된 재림은 성취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몇 천 번이라도 대답하기를, 그 약속은 이루어진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약속은 곧 사실과 같은 것이며, 진리자체입니다. 그는 여러 천년을 앞두고, 약속하시며, 기약이 이르면 성취하십니다.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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