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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박승남 202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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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5:18절 개역개정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신앙이 좋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니니 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서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개는 사라졌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슨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잖은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 위의 무지개를 보고 감사합니다. 슬픈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보고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불평과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오라는 말인데 이 단어에는 카리스 즉 은혜, 호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또한 부모님과 다른 이가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아는 데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불평과 원망 속에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다른 이의의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신뢰가 없다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셨고 가정을 주셨으며 자녀들을 주셨고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사업, 생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하여 주셔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매를 맞으시고 찔림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철학자 키엘키골은 말하기를 나는 가련한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시고 이 나를 위해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말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을 주셨다. 내가 현재 저 영원한 나라를 갈망하는 오직 한가지 목적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감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또 올해는 긴 장마와 대풍으로 농사가 좋지 않아 농민들이 걱정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농산물 수확이 적어 물가가 올라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어 있고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회는 어수선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치유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사람이 살기가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하여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불평이 먼저 나오고 낙심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경제가 불황이고 농사가 흉년이라고 하여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불평과 낙심한 마음을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탐욕과 욕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탐욕과 욕망에 빠진 사람들은 만족이 없고 늘 불평을 하며 살게 됩니다. 이 탐욕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심에서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이 탐욕은 바닷물을 마신 사람이 갈증을 해결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에게 참된 만족을 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감사를 빼앗아가고 우리에게 불만족과 불평 원망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그에 얻어지는 작은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감사는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도 좋은 관계가 되어 화목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왜 행복을 주는 이유는 감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되므로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련도 고통도 하나님의 뜻이므로 참고 인내하면 고난도 감사하게 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감리교회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 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 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자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고 하여도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지극히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효도할 수 없고 자기 아내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육신적인 쾌락은 얻을는지 모르지만, 행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하셨습니다. 그중에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잡혀가고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로 취직도 안 되고, 장사도 못 하고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란 속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배고픔과 헐벗은 궁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와 대조되는 교회가 있었으니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부요하여 많은 재물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감사가 없습니다. 뜨거운 감동과 감격이 없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가련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세상적으로는 부자라 하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교회이며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벌거벗고 사는 수치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교회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 전 세계적인 환난을 겪고는 있지만 궁핍하여 헐벗고 굶주림 속에 사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물론 우리나라에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이웃도 있고 교회는 그들을 살펴야 합니다) 오래 전쟁 역사가 이 땅에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요즘 평화의 시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으로 뜨거운 신앙을 잃어버리고 미지근한 신앙으로 감동도 없고 감사도 잃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은 옛날보다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풍요 속에서 살고 있지만 뜨거운 신앙을 잃었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극단적인 이기주의 속에서 정신적인 만족과 평안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만족만 얻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이며 감사하는 사람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외적인 가난 속에서도 내적으로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게 만족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는 평화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안에서 감사하며 행복을 소유하고 평화를 얻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해방 후에 남대문 근처의 광장에서 야외 부흥회가 있었는데 강사로 나오신 손양원 목사님께서 시편 100편을 본문으로 감사에 대해 설교를 하시면서 감사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 여호와가 나의 아버지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2) 여호와가 나의 왕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3)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은 감사하는 믿음으로 일본강점기의 6년간 감옥생활을 이겼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육신 적인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님 집에 어느 날 밤 강도가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순순히 390환을 내주며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서 고맙다고 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소?" 하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어이가 없어 "그래, 고맙다."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 강도는 붙들려 왔습니다. "이 사람이 방 선생님 돈을 빼앗았다지요?"하고 경찰은 물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너 잘 만났다 이놈!" 했을 것이나 방 선생은 오히려 깜짝 놀라며 "아니요,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뺏긴 일이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이놈은 이 댁에서 돈을 390환이나 빼앗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방 선생님은 강도를 향하여 "아니 이 사람아! 내가 390환을 주니까 당신은 고맙다고 하지 않았소? 빼앗았다면 고맙다고 했을 리가 있소?"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포박을 풀어주고 가버렸습니다. 강도는 너무나 고맙고, 감격하여 그 후 방 선생님 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얼떨결에 시켜서 한 감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방 선생뿐만 아니라 강도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범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곳에 폭력과 착취와 불만과 원망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보다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계속 감사의 말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는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 열리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루소는 감사는 우리가 당연히 지급해야 할 의무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칼 힐터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참된 지자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잡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외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살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배부르고 옷 잘 입고 따뜻하고 편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반대로 내적이고 영적인 만족을 얻고 사는 사람들이며 외적인 육신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늘 만족하고 감사함으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소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01018일 추수감사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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