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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을 넘어 신자로 박승남 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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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3:1-8절 개역개정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1-8 교인을 넘어 신자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믿음과 관련된 성경 말씀 몇 구절을 보면 히브리서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이를 공동번역으로 보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한 특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423절을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한, 베드로전 19절을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하고 에베소서 28절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을 보면 믿음과 구원을 연결하여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믿음의 결과로 이어지는 구원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넉넉히 구원을 얻을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성경을 보면 이상한 일을 많이 행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넉넉히 주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7:15-21). 베드로후서를 보면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형제 우애, 그리고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서 살아가는 이들은 넉넉히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불 속에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전서 3:13~14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사람들은 맥락으로 보면 믿음으로 살기는 하는데, 분파를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히는 등 값싼 것으로 믿음의 집을 지어가며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하고 교회에 해를 주고 믿음의 쉬운 길로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불 속에서 구원을 받을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5-8: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믿음이 있다곤 하지만 말씀대로 따라 살지 않고 자기 욕심, 유익만을 쫓아 살고, 죄악을 따라 산 사람은 구원을 얻되 불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을 보이는 자, 배교자는 저주에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갈까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 또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말씀합니다.

 

225절에서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았지만, 율법을 행하지 아니한다면 할례의 유익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이렇게 반격했습니다. 1절입니다. "선택해 놓으시고 조금 잘못했다고 우리를 버린다면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이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 이를 부연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율법과 할례를 가진 백성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말씀도 하나님이 주셨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말씀도 무익한 것이 되는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럴듯한 논리적 질문입니다. 유대인은 자기들의 특권의식을 그리 쉽게 내려놓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랑은 하나님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율법과 할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바울이 바르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유대인 세계는 바울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이단자 취급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한 복음은 완전히 무시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신중하게 대답합니다. 범사에 많다.” 유대인의 우수함은 모든 면에서, 많다(much, in every way)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특권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그 우수성을 언급하는데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 말씀을 소유했다는 의미 이상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놀라운 복이요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유대인에게 특권도 중요하지만, 특권에 책임이 동반되는 것인데, 그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유대인이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느냐? 고 묻습니다. 학생이 계속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학생의 신분은 자연히 박탈되고 회사원이 회사 나와 일을 하지 않으면 자연히 회사원의 자격은 박탈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학교나 회사에 항의할 수 있습니까? 권한이란 책임을 동반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대민족은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을 대표해서 하나님 말씀을 받았고 말씀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관리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바로 지키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만심에 빠졌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여 실패했습니다. 이 땅에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기는커녕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받는 배신행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란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례도 받았습니다. 성찬 예식에도 참여합니다. 또한, 유대인처럼 우리는 다 말씀을 받은 자들이고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관리하고 이 말씀을 잘 전달한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 한국 기독교인만큼 좋은 성경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계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서 성경을 가장 잘 만들어 내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에서의 성경 생산량이 세계에서 몇 위를 갑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들어 낸 성경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됩니다. 독일어 성경, 영어 성경, 불어 성경 각국의 성경이 한국에서 만들어져서 세계로 수출이 됩니다. 한국은 성경 수출국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인들은 가장 고급스러운 성경을 끼고 교회를 다닙니다. 금박 양장에 가죽으로 된 좋은 성경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좋은 성경을 가지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신앙이 좋은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란 책임을 잘 감당치 않으면 자녀의 특권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항의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면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자녀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 주제는 다른 것으로 바뀝니다. 3절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여러분 3절은 그렇다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시비조로 던지는 질문으로 바울은 유대인들이 던지는 질문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지난주 말씀드린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할례의 근본 의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려고 주신 것이며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할례는 무의미하게 되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주장은 잘못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들에 의해서 무익하게 될 수도 있다는 논리를 지지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말씀을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 어떤 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미쁘심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바울은 4절과 같이 말합니다 그럴 수 없다(may it never be). 강한 부정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기때문입니다(3:4). 그럴 수 없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에 대하여 그런 말은 언급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설명한다. 3절에서는 어떤 자들이라고 일부를 말한 것인데 바울은 이런 표현을 거부하고 모든 사람(every man) 다 거짓되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보니 세상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더라도 하느님만은 언제나 진실하십니다 라고 합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거짓되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 기분 나빠할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선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사람은 다 거짓되다고 하면서 반면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느님만은 언제나 진실하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할례를 받고도 그 언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율법을 맡고도 그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율법이나 할례를 주신 하나님의 신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할례를 받은 자들이 그 의미를 지키지 않으면 할례는 의미가 없어지지만, 할례를 주신 하나님의 신실함은 여전하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편 514절을 인용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51:4). 이 구절은 다윗이 범죄 후에 자기가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은 의로우시고, 심판하시는 모든 것도 순전하시다, 신실하시다고 고백한 내용입니다.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선고하시던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 4절 하반절에서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존 머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다윗의 경우처럼 사람에게 범한 죄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범한 것이다.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에 대해 사람을 심판하실 때 그분은 언제나 공정하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죄의 성격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입증한다. 하나님께 범한 죄는 하나님의 공정성을 손상시키기는커녕,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함을 확정해 준다.

루터는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당신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백해야 하고하나님의 모든 말씀 안에서 당신은 의롭고 진실하시다고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비록 불신자들이 그들의 말을 통하여 아무리 하나님을 반대하고비판한다(judge)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도 의로우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비판하고 대적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의 판단에 대해서 이길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잘못됨이 없고 그릇됨이 없고 틀림이 없으므로 판단의 자리에서 다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속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이 공격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공격, 박해,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그렇습니다. 승리는 주님께, 그리고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한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함으로 자신이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 없음을, 거짓되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과 바울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은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또 이렇게 항변하기도 합니다.

"한번 선택하시고 또 우리를 버리신다면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서 "인간이 악하니까 하나님의 의가 분명해져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데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죄 좀 지으면 어떻습니까? 어찌 그것으로 내가 심판을 받겠느냐? 그리고 "아예 선을 드러내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라는 말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잘라 말합니다. "당신들이 잘못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데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오. 당신들이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합니다(8).

 

여러분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끝까지 대드는 유대인들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시인하고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오히려 뻔뻔스러운 위선적으로 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잘못에 대해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거나 자신의 주변 환경을 탓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흉악범들을 보면 이 사회가 부조리하고 이 사회가 모순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기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죄를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자기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세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선택하실 능력도 있으시고, 버릴 능력과 자유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면 스스로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망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망을 떠나면 거기에는 우리를 삼키려는 사탄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하나님 은혜의 보호를 떠나 살면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진노하신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까?

가룻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려고 할 때 주님이 그를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고를 거절했을 때, 곧 사탄이 그 마음속에 들어갔고(13:26,27), 최후의 만찬장에서 나가서 예수님을 배반한 어둠의 자녀가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권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 “돌아오라라는 말씀이 예레미야서에만 31번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떠나면 멸망이라고 그처럼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더는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멸망 당한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비극적인 역사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초한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땅에는 복을 받아 번창하는 것처럼 보여도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 땅에서는 저주받아 사는 자처럼 살아가는 신자들이 도리어 복을 받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청결함과 인내와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을 안고 고된 복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웠습니다. 그런 그는 사람들이 볼 때 능력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징계를 받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방주가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면, 이 교회에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하고 들어와서 새로운 식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우리 자신을 살피고 신실한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성도들이 돼야 합니다. 이제 단순히 교회에 오는 사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크리스천, 진실로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예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예수님의 생명력을 지닌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러한 이들을 찾으십니다. 202010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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