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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박승남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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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9:31절 개역개정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7:14, 9:31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신학자 바르트(Karl Barth)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수 없고, 하나님도 온전히 알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참된 믿음도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오늘날 마주한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며 함께 부흥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에 우리 교단 109회기 총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라고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참되게 알아가며 그것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현시대 속에서의 위기를 또 하나의 기회로 바꾸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성령의 또 다른 표현은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4), 이는 돕는 자’, ‘위로자’, ‘중재자등을 뜻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고전 2:10)이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는 (3:5)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15:26)이며, 권능을 주시는 (1:8)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5:5)이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8:2)이며,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는 (3:16)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며(4:3),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살후 2:13, 벧전 1:2)이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3:5)이십니다. 나아가 성령은 진리이시며(요일 5:6),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2:11, 2:17, 2:29, 3:6, 3:13, 3:22)이십니다.

 

초대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7:60), 이를 마땅히 여긴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으며(9:1-2),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신하게 되면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8:4).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변화되었으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거꾸로 유대인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9:23). 복음이 막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죽음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성령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인도하시며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될 것이라(1:8)며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그 말씀 그대로 제자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흩어져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까지 복음을 전하여 각처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3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 문화적, 민족적 경계를 뛰어넘어 땅끝을 향하여 퍼져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쌓여 왔던 민족적 차별과 갈등은 복음의 전파를 막지 못하였습니다. 역경과 혼란의 상황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하나됨으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성별, 신분, 경제적 차이 등으로 인한 높고 낮음이 복음 앞에서 평등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안디옥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위협하는 박해가 있어 생명의 위협과 갈등과 혼란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이 복음 전파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회심한 사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30절과 같이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습니다. 그런뒤에 31절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이 다소로 피신함으로써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찰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외부의 박해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얼마간입니다.

그런데 단지 박해가 없어져서 평안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시는 성령을 통하여 평안(ερήνη 에이레네)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든든히 서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οκοδομουμένη’)“(집 등을) 짓다, 세우다, 격려하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οκοδομέω)현재수동태분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어 세워가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인구의 감소, 사회적 혼란과 갈등, 교회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인식과 선입견 등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에 평안을 주시고 교회를 세워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빋습니다.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일임을 믿습니다. 참 평안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한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혼란과 위협의 상황에서도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성령님을 통하여 그분의 교회와 함께하시며 평안과 부흥의 길로 친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2) 주를 경외하며 순종케 하시는 성령

초대교회 당시 성령께서는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교회를 평안으로 세워가시는 가운데, 특별히 주를 경외함으로 교회의 부흥을 진행해 나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9:31).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τφβτοκυρο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의 부흥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2:43-47; 5:5-14; 19:17-20).

칼뱅(Calvin)의 일생을 지배했던 중요한 삶의 좌우명가운데 하나가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이는 라틴어로 ‘Coram’ 앞에라는 뜻과 ‘Deo’ 하나님을 뜻하는 두 단어가 합해져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 앞에서(coram hominibus)”세상 앞에서(coram mundo)’의 명예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하며 분별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패가 극에 달했던 16세기 중세 시대에 종교개혁가들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아래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의 방식을 요약했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코람데오 정신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18년의 기나긴 유배생활과 극도로 어려운 환경속에서 지냈습니다. 보여 드리는 사진은 다산이 10여년 머물렀던 전남 강진의 다산 초당입다. 그는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냈는데 이를 도와준 것은 조선 명종때 문신이었던 임권 선생의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 홀로 있는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마라는 인생철학이었습니다. 이는 해동소학에 인용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중 하나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남의 눈에 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홀로 있을때는 여지없이 양심을 팔고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요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박재희, 나를 돌아보는 모멘텀 ‘3분고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실 때의 기준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께서는 H.I.G.H.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찾으십니다.
Holiness (거룩): 죄에 대해 민감하며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는가?
Integrity (정직): 작은 일에도 성실하며 정직함을 보이는가?
Gratitude (감사): 부족함의 현실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가?
Humility (겸손): 섬김을 받는 자인가? 아니면 섬기는 자인가? (* 뉴욕 롱아일랜드 UMC 장재웅목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순종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19-20절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명령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수가 점차 증가하는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35~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죄가 많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 전도하시고 난 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해 그리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전도입니다.

작년에 경서노회는 노회차원으로 전도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전국 69개 노회중에서 2위를 하였습니다. 많은 교회가 힘써 참여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참여하였는데 노력에 비해 그 결실이 적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작년에 등록하신 분이 7명입니다. 그중 여섯분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 중에 3분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여섯분이나 교회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것입니다. 당회는 올해도 이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면서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3) 위로하시고 부흥하게 하시는 성령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8:1) 이후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교회는 주를 경외함 가운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31). 여기에서 위로의 헬라어는 (“παρκλησις”) ‘가까이 부름’, ‘권면’, ‘위로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교회가 핍박당하고 고난에 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가까이에 계시며 위로, 후원해 주셨습니다.

구약의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죽은 생명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살아나는 환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님은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로 이끌어 가셨습니다(37:1). 그 뼈들은 메말라 있었는데(37:4). 그 뼈는 다름 아닌 큰 군대의 뼈였으며(37:10), 그 군대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온 족속이었습니다(37:11). 죽음과 절망이 깊이 드리워진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37:3) 상식을 넘어서는 질문 앞에 에스겔은 불가능성을 말하지 않고,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변하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기대하고 의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생기가 들어가는 데에 있음을 말씀하시고, 에스겔은 대언 이후 뼈들이 연결되며 힘줄이 생기고 살이 돋아나는 것(37:8)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살아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방에서 생기가 와서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37:9)이에 대언하였더니 비로소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이 없는 마른 뼈와 같았던 이스라엘 족속들을 죽음에서부터 다시 살리시기 위해 생기를 사용하셔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 생기는 바로 루아흐(חַוּר),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영을 백성들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시고 고국 이스라엘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37:12).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와 교회 및 교인 수의 급격한 감소 상황은 한국교회의 밝은 미래를 희망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드리워졌던 어둠의 그림자가 오늘날에도 드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뼈들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통해 살려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가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수가 더 많아지니라 교회의 부흥과 생명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위로는 성령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연결된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돋는다고 생명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듯이, 교회의 외형과 신도의 숫자가 그 생명을 대변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성령의 능력이 그 속에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으며, 그것이 한국교회에 참된 위로와 밝은 미래를 열어주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사도행전 242~478절을 통해 잘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찾아온 고난과 박해는 교회를 위축시키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로 복음이 퍼져나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고난과 시련은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평안함과 든든히 세워져 감으로 바뀌어 갔으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주를 경외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교회에 위로를 주시므로 부흥하는 사가 나타났다. 이것은 교회의 부흥이 원천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에 평안을 주시고 교회를 세워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혼란 속에서도 평안을 주시며 교회를 부흥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평안은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전도할 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 둔화 및 침체에서 벗어나 부흥으로 가는 길은 성령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의로움을 내려놓는 일이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교회의 주체이시며 생명의 주관자가 되심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며 나아간다면, 한국교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넘치고, 주님을 경외하는 역사가 일어나며, 성령의 위로를 통해 교회의 수가 날로 더하여 가는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2025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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