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빗장 | 박승남 | 2025-0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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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3:15-22절 개역개정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15~22 새 시대의 빗장 오늘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이자 주님의 수세 주일입니다. 기독교 예식 중에서 세례 예식은 매우 중요한 예식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믿음 없는 불신에서 믿음 있는 성도로, 세속적인 삶에서 거룩한 삶으로 들어가는 거룩한 입문예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첫발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예식입니다. 세례는 복음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례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은 김익두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거부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덕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지도하신 김영구 목사님은 열렬하게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식 없이 동거하는 것보다 결혼식을 한 후에 동거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하시면서 세례를 '당신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교회의 공인증'이란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이에 김재준 박사가 두고두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사랑은 깊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것임을 만인 앞에 선포하고 그 분의 신부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결혼은 남녀가 사랑함으로 서로에게 충성하고 정절을 지키기로 서약하고 일평생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것을 서약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결혼이 새로운 가정으로의 첫출발을 의미하듯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신앙적 고백을 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례는 나의 옛 자아가, 즉 내 맘대로, 내 멋대로,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왔던 삶에서 죽음을 선언하는 장례식과 같습니다. 뉴욕 그레이스 침례교회의 담임목회자로 40년 동안 봉직하고 있는 레슬리 B. 플린은 세례 받을 때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알렸습니다. 한 젊은이가 세례를 받는데 한사코 오른 손을 물속에 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소매치기를 해서 먹고 사는데 만일 이 손까지 세례를 받아버리면 무엇으로 먹고살겠느냐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스운 말인데, 시사 하는 바가 많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주님과 연합한 표이기 때문에 옛사람과는 결별하게 됩니다. 옛사람의 습관, 옛사람의 언어, 옛사람의 생각, 옛사람의 생활이 끝났다는 선포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이 살게 하는 새로운 삶으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세례는 영적인 차원에서 새로 태어남, 새로운 삶으로의 첫 출발, 제2의 인생이기에 이를 체험한 개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새로운 날에 진입하게 한 그 거룩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21절 말씀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세례 또한 이러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테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요한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요한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눅 3:15). 요한에 대한 사람들 기대는 날마다 증가해 갔습니다. 사람에게는 먹는 유혹도 크고, 성욕도 크지만, 그보다 더 무섭고 끈질기고도 지능적인 유혹은 명예와 권세에 대한 유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유혹올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여러분에게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입니다. 또 그 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작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사람들처럼 천국에 들어갈 사람과 불에 태울 사람들을 구별해 내는 분입니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눅3 :17) 그런데 자기가 증거한 분이 지금 자기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분이, 그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분이 죄인과 같이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황하여 그 분 앞으로 가서 진심으로 만류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의 만류는 진심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인데, 어쩌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받으신다는 겁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태복음 3장 1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에 요한은 굴복하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후 19~20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분봉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은 일과 악한 일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이 사건은 조금 더 후에 일어났던 일인데, 누가는 이 사건을 이곳에 기록하면서 모든 백성이 주목하고 있었던 세례 요한의 시대가 그 막을 내리고 예수님의 새로운 시대의 그 빗장이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께 세례를 베푸는 것을 끝으로 본서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라는 새로운 사역으로 도약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셨는데 그때, 하늘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 10절을 보면 하늘이 열렸다고 하지 않고 갈라졌다고 합니다. 여기 갈라졌다는 말은 scivzw(스키조) 쪼개다 split, 찢다 tear, 나누다 divide 등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찢어졌다는 말입니다. 마가는 왜 하늘이 찢어졌다고 표현했을까요? 이 하늘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하늘입니다. 그동안 인간에게 굳게 닫혀 있어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룰 수 없었던 하늘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늘이 찢어지고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굳게 닫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마가복음 15장 38절에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고 운명하실 성전 휘장에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세례 시에 하늘이 찢어져 열린 사건과 관계지어 생각한다면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세례후에 하늘이 찢어진 것이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의미한다면,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속(聖俗)의 개념이 무너지고 이제부터는 이 세상 누구도 하나님과의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은혜의 보좌는 지성소입니다. 성전 휘장이 찢어졌기에 이제 믿는 자는 누구나 담대히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때를 따라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머뭇거리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그 동안 그처럼 굳게 닫혀 있던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는 온 세상을 향해서, 우리를 위해서도 열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 영생의 세계,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례 받는 자에게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소통 가능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보신것이고, 우리 인간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세례의 사건에서 하늘이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되었을까요?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씻는 의식인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을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으신 것은 자신을 죄인처럼 낮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된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세례 받으심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보여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즉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세례를 받았기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그리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악한 요소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쓴 뿌리인데, 히브리서 12장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대하 7장 13-14절을 보면, 성전 건축을 마친 솔로몬에게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힌 것을 ‘하늘을 닫고’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회개하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하늘에서 듣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회개할 때 영적인 눈이 열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됩니다. 세례는 회개의 핵심을 보여주는 예식이기에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진입하게 되고 그동안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상, 하나님이 다스리는 법칙을 따르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 죄악된 삶에서, 욕망과 욕정이 다스리는 세상을 청산하고 거룩한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적 세계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받지 않은 분은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여러분을 영적인 세계로 인도했던 진정한 세례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25년 한 해,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 하나님과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22절 상반절의 말씀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되신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마태복음 3:16절과 마가복음 1:10절을 보면, 각각 “성령이 비둘기 같이”임하셨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에 “형체로”라는 말을 첨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몸으로’라는 의미와 ‘형식, 겉모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세례 요한이 예수님 위에 성령이 실제로 임하게 된 사건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름아닌 ‘비둘기 같은 형체’입니다. 비둘기는 보통 ‘평화’, ‘순결’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성령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특징과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비둘기가 상징하는 것처럼 평화의 일을 하실 것을 평화의 메시아가 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한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보면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합니다. 여기 평화와 나음 즉 치유를 말씀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치유받고 하늘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의 탄생과 발전은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함께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독교의 탄생, 초대교회의 탄생은 마가의 다락방에 불같이 임한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베드로가 요엘서를 성령의 임재라는 관점에서 재해석을 하면서 설교하고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라고 소리 높였을 때,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해 받는 참된 세례의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것처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사건입니다. 성령의 불로 받는 세례를 경험할 때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게 되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나를 다스리고 인도해 가시는 성령님 안에 살아가게 되고 이전과 전혀 다른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세례는 단순히 물세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는 세례입니다. 불같이 성령이 임하는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비늘이 벗어지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 세계가 주는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온 생애를 헌신하고 충성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끝으로 22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의 임재는 어떤 신비한 환상이나 이미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말씀으로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실 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류 구원의 활동을 시작하라고 주신 신호입니다. 또한 거룩한 사역을 위한 성부 하나님의 격려입니다. 이 음성은 변화산 사건에서(마 17:5) 일어났고, 수간 주간(요 12:28)에 다시 들려진 말씀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향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의 공생애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에 반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자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성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향해 ‘사랑하는’이라고 부르신 것은 인격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무한한 기쁨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그의 아들의 신분으로 메시아 과업을 감당하도록 임명한 사실과 앞으로 그 사역을 감당하게 될 모든 과정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를 기쁨으로 임명해 줌과 동시에 구원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0:38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의 빗장을 열어가는 그 첫 관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사역을 감당할 만한 자격이 있음을 인증하는 것이고, 동시에 위로와 격려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세례의 강을 건너고, 홍해라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된 주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세례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바로 세례받은 주님의 자녀, 백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세례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온전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가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성자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 주신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 또한 성령의 임재가 있는 삶입니다. 권능 있는 삶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권능을 받고 구원 사역을 감당해 내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사명이 되고, 우리의 비전이 되어 말씀대로 우리에게 맡겨준 사역을 감당해 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명을 인준해 주시고, 위임해 주시는 말씀에 따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25년 한 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한해가 되어 온전하게 세워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온전하게 세워지는 가정이 되고 온전하게 세워지는 우리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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