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信行一致) | 박승남 | 2025-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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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일치(信行一致)
한국 기독교 역사에 기리 남은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신행일치”의 설교가였다고 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신행일치의 삶을 살았던 모범적인 모습을 갖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거듭남의 신앙원리’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거듭나지 않으면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손양원 목사님이 이러한 신앙의 자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영향이 컸습니다. 손종일 장로님은 이웃집 형님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바로 실천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새롭게 태어남을 경험한 후 술과 담배를 끊어 버렸고, 심지어 상투도 잘라버렸습니다. 이렇게 깊은 회심을 경험한 손 장로님은 밤을 세워가며 성경을 탐독하는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일가가 모여 제사를 지내는 설날 아침, 제사상을 뒤집어 엎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감나무에 매달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총 재산이었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교회가 없던 곳에 교회를 세우고 길선주 목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경남 함안군에 있는 칠원 교회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애국지사 못지않게 나라의 운명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 누구보다 앞장 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어 마산 교도소에서 1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불같이 뜨거운 아버지의 신앙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공립학교 당시 동방요배를 강요받았을 때에도 아버지가 알려 주신 10계명을 떠올리며 동방요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손양원 목사는 아버지로부터 절개있는 신앙, 행동하는 신앙을 그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환경이 바로 신행일치의 삶을 살도록 했습니다. 신앙의 개념과 형식만이 남아 있는 듯한 오늘날 신행일치의 삶, 신앙이 곧 삶이 되는 신앙의 모습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주님은 신행일치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주님은 신행일치 즉 삶이 신앙이고, 신앙이 삶이 되는 경건한 삶을 통해 복음의 길을 열어 가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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