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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 | 박승남 | 2026-0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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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
노아 홍수로 사람들이 다 죽고 노아의 식구만 살아남았는데 그 자손이 퍼지면서 그들은 또다시 타락하기 시작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바벨탑이란 자기들의 힘으로 높은 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구원을 이루겠다고 하여 쌓은 탑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해서 부르신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 이에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 즉시 행동을 취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굉장한 결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도,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가 만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이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아멘” 하고 순종한 것뿐입니다. “아멘, 믿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최초로 보인 믿음입니다. 이후 모든 싸움이 끝나고 평화가 왔을 때 한가해진 아브라함은 자식 없는 것을 걱정했고 자기 집의 나이 많은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 그러자 창세기 15장 6절과 같이 아브라함이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로마서의 핵심 구절이자 장로교 교리의 중심이 되는 8장 30절 말씀은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이제는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자녀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람 중에는 특별한 사람으로 칭찬을 들을 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고 그를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비 집과 친척과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완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후에,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자식이 태어날 것이란 말씀을 믿을 때 완전히 구원받았습니다.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즉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분’, 이시며 또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것은 우리 인간은 18절과 같이 바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12절로 보면 당시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사라는 여성으로서는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활을 믿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완전히 믿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선택한 여러분이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것만 가지고는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부르셔서 교회까지는 나왔는데, 아직 부활을 믿는 신앙에 이르지는 못했다면 예비 신자,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신자요 아직 의롭게 되지 못한 신자입니다. 이런 분은 갈대아 우르, 하란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의롭다 함(창 15:6)을 받지는 못한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어서 4, 5절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여기 ‘보수’(오페일레마)는 빚, 의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용자는 하루 종일 일한 노동자에게 빚을 진 것이고 돈을 줄 의무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경건하지 않은 자’를 향해 ‘너는 의롭다’라고 판결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경건하지 않은 자를 공동번역은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말하면 일을 하지 않아 돈을 줄 의무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월급을 준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것에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4절과 5절에서 우리가 또 주목할 단어는 여기시나니 즉 (로기조마이)입니다. 이는 바로 경제 용어로 계산하다, 지불을 청구하다, 장부에 금액을 기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는 지불한 삯(급여)을 장부에 기재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의 인생 장부에 ‘은혜’라고 기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경제 논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미는 ‘채무자’ 혹은 ‘품꾼’의 관계로 만들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경건하지 않은 자’의 장부에 ‘의’라는 금액을 써넣으셨음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의 빈 통장에 ‘그리스도의 의’라는 금액을 입금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거금입니다. 우리 인생의 의는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무화과 앞처럼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럽습니다. 이사야 64장 6절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하지만 주님의 의는 얼마든지 우리를 구원하고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만일 자기의 의 즉 그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믿음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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