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말씀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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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두 번째 박승남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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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월 두 번째 셀 가족 모임

. 말씀

1) 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 제목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 2:17, 5:26~27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1. 그림으로 보기 

1. 올해 총회와 우리 교회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우리 교단 총회는 제104회기 주제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로 정했다. 말씀을 붙들고 그 목표를 새로워지는 교회로 삼은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구원을 약속하셨고, 말씀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개혁의 원리를 찾았고, 오직 성경으로 개혁을 이루었다. 교회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교회가 성경의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날마다 자기를 혁신하여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새로워지는 교회를 정한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가 말씀에 이탈되었기 때문이며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말씀의 정신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2.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데 총회는 새로워짐의 영감을 느헤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에서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비보를 들은 느헤미야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나요?

그냥 무관심할 수도 있고 참 안됐다 하고 그냥 잠깐 동정이나 하다가 그칠 수도 있다. 아니면 아니 포로에서 돌아간 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성을 복구 못 했어. 성문들은 왜 다시 세우지 못한 거야?” 하고 비난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주전 538년에 포로에서 돌아갔고 지금 느헤미야 시대는 주전 444년입니다. 그러니까 1차 포로 귀한 이후 무려 94년이 지났고 2차 포로 귀한 이후 13년이 지난 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르시아 고위직 공무원으로 문제없이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기도를 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탄 것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애통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나 한국교회는 문제가 많아 그 문제를 수없이 나열할 수 있다. 또한, 얼마든지 비난하고 정죄하고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애통해야 하고 회개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무너진 것을 다시 쌓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이 직접 가서 성벽을 재건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결되었고 2장에 나오는 것처럼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아뢰게 되어 유다 총독으로 부임하도록 허락이 되었다.

 

3. 느헤미야의 이러한 회개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엇으로 이어졌나요? (9)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로 이어지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낮 1/4은 제자리에 서서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1/4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다. 그들은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며 율법을 등지고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님을 심히 모독하였다고 회개했다.

 

4.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된 느헤미야는 도착한 지 사흘 만에 한 일이 무엇인가요?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가서 사람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그냥 몇몇 사람과 함께 조용히 무너진 곳(폐허의 현장)을 살폈. 사실 밤에 수행원들도 데리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밤에 혼자 나갔다는 것은 자객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느헤미야는 굉장히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성벽 전체를 다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전체를 파악하고 전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 이것이 해안이다. 다 보고 난 뒤에 뭔가 하려고 할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12절을 보면 이것이 다 자기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5. 조용히 시찰을 끝낸 뒤에 느헤미야는 귀족과 방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자기에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자 감동한 지도자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6. 성벽재건 이후 유다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말씀으로 심령 부흥의 시간을 갖습니다. 성벽재건에 진력한 느헤미야는 뒤로 물러서고 앞에 나선 영적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인물은 누구인가요? 학사 에스라

 

  2. 말씀을 새겨보기

1. 성벽을 수축하게 되었는데 이 일은 저절로 되는 일도, 쉽게 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안팎의 문제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와 어려움을 무엇이며 느헤미야는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하고 사명을 감당했나요?

1) 대적들의 방해가 있었는데 무력으로 방해를 했고 근처의 유다 사람들을 괴롭혀서 군사를 분산시키려고 했다. (12) 또한 느헤미야 개인을 중상모략하고 곤경에 빠뜨리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공갈 협박을 하기도 했으며 그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밤에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러한 역경들을 믿음으로 지혜롭게, 담대하게 극복해 나갔다. 또한, 제사장에게 솔선수범하여 일을 시작하게 했고 유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분담시키고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게 하였으며 백성들 속에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었고 자신이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단순한 지도력이 아니라 신앙의 바탕 위에 세워진 지도력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신뢰성이 있는 지도자였다.

2) 내부의 문제도 발생했다. 빚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쳤다. 세금 낼 돈이 없다. 동족끼리 이자도 높이 매기고, 빚 때문에 토지가 빼앗기고, 자녀들이 노예로 팔려갔다. 외적인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내적인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솔선수범함으로 가능하였다.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40 세겔을 빼앗았고 또한, 그 부하들도 백성을 압제했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였으며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런데 욕심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결국 공동체와 자기 자신까지 망하게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욕심이 아닌 거룩한 비전으로 산다. 자기 혼자만 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려 한다.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부정하게 살 수 없다.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또한,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경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12:15)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0~21)

많은 사람이 물질에 매이고 물질에 인색하다. 그러면 새로워질 수 없다. 물질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는 말씀대로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주님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람은 물질에 매이지 않고 힘써 주님께 드린다. 또한, 이웃을 위해 선한 일에 힘쓴다. 물질과 재능과 시간과 몸으로 헌신한다.

 

2. 느헤미야 1035절 이하를 보면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결단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동안 십일조 생활을 제대로 못 한 것인데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구약에서 십일조는 종교적인 용도와 아울러 공동체적 축제(성도의 교제와 기쁨)와 사회복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레위인들과 제사장과 그리고 성전을 돌보지 않은 것이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은 것이며 성도의 교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공동체의 기쁨을 상실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헌금원리는 신약시대에도 이어진다. 즉 교회 유지를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복음 사역을 활발하기 이루기 위해 헌금이 필요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십일조 정도가 아니라 밭을 팔아 전부를 드리기도 했다. 그래서 가난한 자, 필요한 자들이 궁핍을 해결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4:34~35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약의 헌금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나의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헌금의 기준이 십일조였다. 그래서 구약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소득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일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는 직무유기였으며 공동체를 돌아보지 않는 악한 것이었다. 수입이 있음에도 십일조를 못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것은 물질에 매여 있다 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표일 수도 있다. 물론 오늘날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고 위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헌금을 관리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바르게 헌금을 집행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십일조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십일조는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려야 한다. 진정 하나님이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마음이 있다면 정상적인 헌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십일조에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이 깊이 담아져 있다. 이것을 율법이라 치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못 하던 성도들은 이제부터라도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처럼 십일조를 드리라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3. 당시 귀족과 민장들이 백성들에게서 높은 이자를 받아 원성이 높게 되자 느헤미야는 그들의 행위를 꾸짖고 이자 받기를 그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도자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따라주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있게 되었을까요?

개혁에는 항상 반대가 있기 마련인데 느헤미야가 솔선수범하고 느헤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자들이 잘못을 고치고 그러니 공동체가 평안하여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도움으로 52일 만에 무너진 성벽을 완공할 수 있었다. 참으로 말씀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526절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허물과 죄를 보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회개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한다. 나아가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평안케 하며 기쁨으로 섬기게 하고 물질에 매이지 않고 주님께 매이게 한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공동체에 기쁨이 넘치게 하신다. 다윗은 고백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은혜의 잔, 기쁨과 감사의 잔, 평안의 잔이 넘치게 하신다. 아멘!

 

4. 학사 에스라는 특별히 지은 나무강단에 서서 백성 앞에서 율법 책을 폈을 때 그리고 말씀을 전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나요? (느헤미야 8)

율법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성경 봉독 시간에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자복하며 울었다. 율법 책을 듣고(배우고) 백성들이 운 이유는 무엇일까? 율법을 모르고 살았는데, 율법을 듣고 보니 너무 못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개했다. 그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성경을 듣고 느끼는 영적인 희열, 감격이다. 재밌는 것(Fun)에는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재밌는 것을 해서 느끼는 것, 두 번째 앎으로 느끼는 지적인 것, 세 번째 영적으로 느끼는 즐거움. 이 세 가지의 즐거움 중에 영적인 희열이 가장 크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주제를 통하여 기대하는 한국교회의 변화된 모습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2:13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다.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붙들고, 초막절을 지키고, 제사를 새롭게 하고, 이방 결혼을 금지하며 십일조를 드리고 그로 인해 제사장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제 역할을 하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성전 봉헌자들을 세우고, 통솔자들을 임명하고, 거주자들을 정하며 예루살렘을 명실상부한 신앙의 중심지로 세우면서 느헤미야는 마무리된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나아가 한민족 공동체가 되어야 할 그림이다.

 

5. 지금 세상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동안 교회가 교회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고 주인도 주님이시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답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 되신 주님을 제쳐놓고 인간이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늘 주님을 자신과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역사하신다. 주님은 교회 외에 대안이 없으시다. 그래도 교회를 통해 이 민족을 살리고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시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다시금 주님께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새로워질 것이다. 세상에 감동을 주고 희망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주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물론 교회가 목적은 아니다. 교회 왕국을 세워서도 안 된다. 목회자는 은퇴한 후에 주님의 이름만 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4. 삶으로 옮겨내기

1. 당신은 성경을 얼마나 주기적으로 읽고 있습니까? 또 성경을 어떻게 묵상하십니까? 여러분의 영적 삶을 나누면서 앞으로 그런 삶을 규칙적으로 살도록 합시다.

 

2.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느낀 것을 말해보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회개, 기도, 삶의 개혁, 담대함과 지혜,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 탐욕을 버리고 인색함에서 벗어나 주님께 매임, 십일조, 공동체를 생각하고 헌신)

 

. 돌봄과 기도 (Work & Prayer)

아래의 제목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2) 교단 총회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 3) 나라와 민족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와 지도자들과 국내외에 산적한 여러 난제(문제)를 위해 4) 전도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5) 셀 모임과 리더와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이들과 셀 가족 식구들 및 각자 기도 제목을 들어보고 위해

. 증거 (Witness)

새해 표어 및 실천사항: 주제: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 (2:17, 5:26~27) 실천사항: 1) 매일 말씀 묵상, 기도하며 말씀대로 사는 성도 2) 사랑의 섬김으로 예수 안에서 가족 공동체 3) 세상에 나가 소금과 빛으로 칭찬받는 하늘 청지기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11()까지 515~6시까지 가지니 힘써 참여 바랍니다. 아울러 이번 주 금요기도회 생략합니다.

한 주일 헌금: 오는 주일 낮 예배 시 실시 신년 대 심방: 13() 오후 2시부터 가집니다. 식사 및 청소 담당: 선한목자(2)

 

. 돌봄과 기도 (Work &Prayer)

찬송 204장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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