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 박승남 | 2019-0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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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4:1-6절 개역개정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1-6 예수님은 누구신가? 지난 주에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말씀드리면서 먼저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이 말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에 대해서 우리는 요한복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나는 ...이다 라는 식으로 여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몇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6:47~48)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4~6절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줍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지만 그것은 활동하지 못하는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자 드디어 생령이 되고 움직이고 사람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창2:7) 이렇게 보면, 인간은 흙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람이 영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심장(心臟) 바로 마음 心자를 씀니다. 즉 이 말은 심장은 마음에 의해서, 영혼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장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조그만 염려하면 심장이 불안해 집니다. 위도 내가 조그만 걱정하면 소화가 안됩니다. 그러니까 다 마음에 의해 인간이 좌지우지됩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 영혼이 건강하면 육신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잠3:7-8)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살면 골수가 윤택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골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마디로 골수는 피를 생산해 내는 곳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근심, 걱정이 있으면 골수에서 피를 생산하지 못해서 병균이 들어와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면 내 영혼이 강건해 지고 골수가 윤택해져서 맑은 피를 생산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 병균이 들어와도 다 잡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병균은 똑같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그 병균을 이겨내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흙(육신)을 위한 양식이고 또 하나는 영을 위한 양식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입니다. 그렇다면 영을 위한 양식은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의 양식이라 하면 먹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영혼의 양식도 무엇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34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살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하늘에서 온 영혼의 떡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양식입니다. 떡, 빵은 유대인들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어야 하듯이 하늘의 떡도 매일매일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백성들이 주님을 통하여 매일을 양식을 먹었습니다.그러나 지금 그럴 수 없는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따르며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약할 때 성경을 읽으면 영혼이 자꾸 자꾸 강건, 담대해지고 기뻐집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수 없으면 듣기라도 해야 합니다. 예수로 충만해 지면 영혼이 강건해져 육신의 몸을 치료합니다. 진정 밥만 먹는 사람은 죽지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이 결코 죽지 않으시니까 말입니다. 육적인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은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습니다. 어떤 양식을 먹어도 죽으며 어떠 방법으로도 죽지 않을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육적 생명이 연장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도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런데 육적 생명은 죽도록 지어졌으나 그 안에 약속된 생명은 죽지 않는 다른 생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생명을 준비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이 생명나무를 주심으로 그것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하나님은 화염검으로 그 곳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살을 먹으라"라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화염검에 가려진 그 생명과는 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먹으면 삽니다. 그를 먹으면 죽었던 자가 다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내 영혼이 건강하게 자라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계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56~58절을 보면 예수님은“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그 당시 예수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기껏해야 30세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으로 말하면 약 4000년 전의 사람이고 예수님은 2000년 전의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은 1:1-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된 사도요한에게 그 오른손을 얹으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라,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 길, 진리, 생명 (요14:6)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외에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다.(요8:12) 인생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요8:36) 이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으신 분(요8:58) 양의 문(요10:7)이고 선한목자(요10:11)다. 부활이요 생명(요11:25)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은 또다시 자신이 누구인신지 밝히십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자들이 근심 걱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들었고 그리고 예수님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힘입니다. 제가 하는 말, 또 남들이 와서 위로하는 말 별로 힘이 안 되도 주님의 말씀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 근심이 사라져 버리는 힘을 지녔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자체가 능력이지만 주님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친절하게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이는 “하나님을 믿으니 내 말을 하나님 믿듯 믿으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며 이 말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근심은 불신앙에서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염려를 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피심을 믿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것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 걱정에 매여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걱정이 생기거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주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3절)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슨 말씀일까요? “내가 너희의 미래를 준비해 두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주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어디까지요. 하늘나라까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국까지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몇 년 앞도 아니 한치 앞도 모릅니다. 어제 옛날 서울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던 후배가 별세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철도고등학교를 나와서 열심히 건강하게 일을 잘했던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서 병원에 입원한지 열흘만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진정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다면, 그곳까지 가는 모든 과정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희들의 영원한 문제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다른 나라에 가는데 누가 그곳에서 살 것을 다 준비해 놓았다고 하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한 모든 것을 다 내가 준비해 놓았다.”그러므로 불안과 근심이 엄습할 때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막막할 때에 “나는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다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셨다”라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렴 없이 우리는 힘차게 앞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염려하지 말아야 할 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길(The Way)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울에 가야할 일이 있다면 서울 가는 것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습니까? 거기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미래를 살아갈 뚜렷한 길이 없었습니다. 미래는 무작정 가보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나라로 가실 분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어떻게 해야 갈지를 아십니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를 누구보다 잘 인도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다. 그분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가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준비되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우리는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기에 그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살아가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울 가려면 버스나 자가용을 타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가는가요? 어디 있는지도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모르는데 ... 그런데 예수님 “내가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실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다 훌륭하지만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갈 수 없습니다. 왜 천국을 가 본적이 없고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나라로 가장 안전하고 쉽게 인도해 주실 수 있으신 길 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진리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주장하던 진리는 다 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영원히 사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 누가 무슨 말을 했든지 간에 진리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학 지식이라고 해도 그 지식으로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어찌 바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땅고 하늘은 함께 병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우주 공간 높은곳을 찾아간다 해도 그분이 계신 하늘에는 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온 분을 통해서만 하늘나라에 대하여 알 수 있고, 또 그 분을 통해서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분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분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 땅에 오셨음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늘의 존재가 땅의 몸을 입고 살아갈 때 당하는 고통을 인간인 우리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잘사는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가장 못하는 나라에가서 머무는 데도 큰 아픔과 고통이 따르는데, 하물며 하늘의 존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겠습니까? 더욱이 그분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사셨습니다. 이들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집착하다가 그분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박해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달아죽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란 말씀은 이런 현실의 양면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와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하여 몸소 이런 아픔과 고통을 자청해서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하늘나라로 가는 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에 그분을 진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생명 -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을 집어넣으니까 생명이 왔듯이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시면 내가 참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사는 생명만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70~89년 사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몇 년이나 살까요? 영원히 삽니다. 한경직 목사님 85세 때 수안보 가는 쪽에 있는 이화여대 수양관을 찾으셨는데 이 때 김옥길 총장이 냉면을 대접했다. 그런데 이 때 기자들이 찾아와 묻기를 “한 목사님은 경건한 분이고 신령한 분이시니까 몇 살까지 사실 것입니까?” “기자 양반 눈치가 빠르니까 내가 몇 살까지 살 것 같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영원히 사오” 그러니 기자들이 눈이 뚱그래져 가지고 “아니 어떻게 안 죽는단 말입니까?” 그러자 “나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산다는 말이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이 계시기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왜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까? 영원히 사니까요?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 나라보다 좋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1:23~2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아서 교회를 위해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이다. 그는 진정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17년 7월 16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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