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 박승남 | 2019-0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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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3:4-8절 개역개정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4-8 믿음이란? 커다란 시련에 직면한, 여섯 자녀를 거느린 선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온 가족은 저녁 식사에서 마지막 빵 한 덩어리를 먹어야만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다음 날 추운 아침, 집 안에 음식이라고는 없었으나 믿음의 어머니는 식탁 위에 일곱 개의 접시를 올려놓았습니다. ????얘들아, 하나님께 우리 먹을 것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식탁에 둘러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가 막 끝났을 때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문간에 빵집 아저씨가 와 있어요.???? ????눈 때문에 꼼짝 못하겠군요. 몸 좀 녹이려고 들렸답니다.???? 집안으로 들어선 빵집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침에 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하지만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에게 줄 빵이 없단 말입니까????? ????한 덩어리도 없습니다.???? ????좋아요. 가져다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빵집 주인은 자기 마차로 가서 일곱 덩어리의 빵을 가지고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각각의 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습니다. ????엄마. 빵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빵을 보내 주셨어요.????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나도요.???? 자녀들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개인적으로 응답하신 것을 느끼면서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휘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포위했습니다. 펠드리히 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사태를 논의했습니다. 미리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한 사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사제의 말에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찬성하였고 펠드리히 시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리고 기쁨에 찬 찬송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프랑스군 진영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구원병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돌려 다른 곳으로 퇴각하였습니다. 펠드리히 시민들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막강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맞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크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초대교회와 바울의 견해 사도행전 16:3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떠는 간수에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며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인가요? 예수님과 복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마가복음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복음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삶과 정신, 그 말씀이 모두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을 보면 복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복음 - 이 복음은 1)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2)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3)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 2. 사도요한의 견해 요한1서 4:9-12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믿음이란 단어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시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왜 예수님을 믿느냐?” 물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왜 주일날 교회에 가느냐?” 물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그 사랑 때문에 왜 예배드리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결혼이 무엇이냐 물으면 바울은 “결혼 서약에 사인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고 요한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답이 다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차이가 날까요? 바울사도- 선교사로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함 얼마 있다가 떠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핵심을 설명해 주고 믿느냐 하여 믿는다 하면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요한은 한 교회를 맡아서 일하는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회자 입장에서 믿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 결혼 오래하다 보면 결혼 서약했는지 안 했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결혼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요한은 믿음이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에 예배드리고 주의 일하고 복음을 전하고 헌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믿음을 지속적인 관계로 설명한 것입니다. 참 잘 설명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일회적인 동작, 결단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설명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3. 예수님의 견해 본문 5절과 같이 예수님은 믿음이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2:23), 그런데 니고데모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는지 요한복음에 의하여 바로 그 후, 어느 날 밤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신분, 사회적인 위치를 보면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도 피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귀한 일이요, 잘한 일입니다. 그는 진지하게 배우고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밤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그는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동문서답 같은 말씀으로 응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니고데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먼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사도바울 같으면 주 예수를 믿으라 했을 텐데 예수님은 거듭나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믿음을 거듭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는 ‘위로부터, 다시, 새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태어났으니까 이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려면 새롭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진정 2번 태어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사람이 됩니다. 한번은 땅에서 어머니로부터 태어납니다. 물론 이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또 한번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어디서요? 네 위로부터 즉 하늘로부터입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네,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 번 물어 봤었는데 산모가 애를 날 때 배 안에 있는 태아도 나오려고 힘을 쓸까 안 쓸까요? 우리는 보통 산모만 힘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애도 죽을힘 다 씁니다. 의사들이 쓴 글을 보면 산모에게 진통이 오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 때가 어떠한 때인가 하면 아기가 “나 준비됐어요. 하고 엄마에게 사인을 주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성령으로 태어나는데 성령님이 나를 낳아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나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는 회개함을 받는 것이기에 회개를 말합니다. 사도행전행 2: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정리하면 인간은 성령으로만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물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즉 회개함으로 세례를 받는 심령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거듭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의 행위는 아닙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 아무리 몸부림 친다 해도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지 아기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태어났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즉 회개가 있지만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회개란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하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이 때 성령이 나에게 들어오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 믿음에 대한 분명한 사실을 살펴보면 1)소속이 달라집니다. 예수 믿으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요. 땅의 사람에서 하늘나라 사람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내 소속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2) 믿음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성장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이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베풀 때 세례 받는 사람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든,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유아복을 입혔다고 합니다. 그 옷은 호주머니, 동정도 없는 옷입니다. 이는 세례 받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 나이, 신분 불문하고 하나님 나라의 애기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의 신분이 신앙의 신분으로 이해하는데 문제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예수 처음 믿었으면 신앙적으로 애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적 애기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를 신앙의 대통령으로 취급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 그 시골이 조그만 마을인데 강씨집안의 어른이 교회에 나오려 하는데 자기 집안의 아랫사람들이 집사 등이니까 자기도 집사를 주면 문중의 많은 사람들 데리고 나오겠다 합니다. 그러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겉 늙은이가 되어 신앙이 성장이 안 됩니다. 신앙은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륜이 흘러야 합니다. 아기가 갑자기 대학생이 될 수 없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6절을 보면 감독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신앙으로 하면 몇 살쯤 되었나?” “나는 영적으로 얼마나 자랐는가?” 다른 교회에서 보면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도 애기 짓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본 요한3서를 보면 사도요한 외에 세 사람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입니다. 그에 대해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9~10) 그야말로 디오드레베는 유치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인 가이오와 데메드리오는 다릅니다. 이들은 사랑과 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나그네를 잘 대접했고 교회를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진리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디오드레베에 대해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1절) 그리고는 가이오에 대해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라고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영과 육의 균형적인 건강을 빈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적으로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그와 함께 더욱 영적으로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여러분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강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까지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4:13) 입니다. 즉 주님이 바로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닮기 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에는 예수님의 1)무릎에, 2)손에, 3)볼에 입 맞추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회개, 복종, 주님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단계입니다. 야러분의 신앙의 어느 단계까지 왔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깊어져 날마다 영적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과 깊이 사랑을 속삭이기 바랍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지성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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