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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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람이 되는 비결 박승남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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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베소서4:13-16절 개역개정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13-16 성숙한 사람이 되는 비결

 

두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열한 살이고 하나는 일곱 살인데, 어머니의 생일날이 돌아오자 각자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고 부산을 떱니다. 저금통을 깨드려 그간에 모아놓았던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갑니다. 어머니는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큰 아이는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어머니의 루즈를 하나 사들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바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장난감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제일 좋아 보이니까, 어머니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미숙아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위한다면 어머니가 기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아이는 제 시각에서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사랑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장난감을 가지고 어머니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는 기뻐했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까지 미숙아로 남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성숙한 사람과 미숙한 사람의 모습을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미숙한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미숙한 사람은

첫째 간사한 유혹이 빠집니다.

성숙한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숙자에게는 항상 위험이 널려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다 그에게는 위험합니다. 요즘 아이들을 그래도 나졌지만 옛날에는 눈깔사탕 하나가지고도 낮선 사람을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풍조에 밀려갑니다.

세상 풍조, 유행에 따릅니다. 그래,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미숙하기 때문에 그는 늘 세상 유행이 좋습니다. 놀러 다니는 게 좋고, 그저 장난하는 게 좋고, 오히려 그쪽에 항상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유행에 아직도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 매혹에 취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직 미숙자입니다.

또한 미숙자는 요동한다고 합니다.

이러 저리 쉽게 흔들리고 쉽게 시험에 듭니다. 또 꾸준하지 못합니다. 요동함이라는 것은, 이 휘청거리는 것은 바로 아직도 어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성숙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해야 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성숙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방향과 목적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비교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외길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직업도 바꾸지 않고, 생각도 바꾸지 않고, 전공도 바꾸지 않고, 한번 시작한 것으로 일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느 TV[성공시대]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바로 그런 것이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궤도 수정을 자주 해서 이런 직업을 택했다가, 이런 전공을 택했다가,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몇 번 수정하고 나면 성숙할 겨를이 없습니다. 시간이 모자랍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방향이 정해지고, 모델이 정해지고,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 목적 변경 없이 그대로 인생을 사는 것, 거기에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방황하는 생활에는 성장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본문 13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13)”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이라는,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변함없이 직선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성숙함이 있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숙은 결코 많이 가지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숙이란 바로 그 인격의 문제입니다.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느냐 그것에 대한 바른 목표를 세우고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좋은 열매를 원하십니까? 열매를 서두르지 마세요. 좋은 나무가 되세요. 좋은 나무가 되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학생을 놓고도, 좋은 성적을 내라 하고 서두르지만 그래서 될 일이 아닙니다.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자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자면, 기회도 얼마든지 옵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자세, 그 인격 자체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생각을 집중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의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히 가르쳐줍니다.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것이 없고, 계속적으로 겸손한 자세에 있어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런고로 항상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바로 거기까지가 성장의 한계입니다. 언제라도, 계속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더 겸손하고 더 깊이 온유한 사람이 될 때, 그는 끝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인격, 겸손한 인격으로, 더욱더 겸손하게 성장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장의 기초입니다.

 

이 성장의 비결에 대하여 오늘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3절입니다.

1.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13)”그래서 성장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따로따로 되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세요. 믿는 것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없어요. 흔히들 이 날은 좋은 날이다, 저 날은 손 있는 날이다 그러는데, 이 날은 왜 좋고 저 날은 왜 나쁘냐, 하는 것은 모릅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입니다. 이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는 것만 있습니다. 좌우간 믿는 것은 대단합니다.

전에 1250분에 결혼식 주례를 한 일이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양가가 합의해서 결정해야 되니까, 한쪽에서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있습니까? 그대로 따라야지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하냐 그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는 입장에서는 NO PROBLEM, 비 안 오는 날이면 되지 무슨 상관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지식이고, 믿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믿음은 있는데 지식이 없으면 미신이요, 지식은 있는데 믿음이 없으면 철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성장이 제일 많이 될 때가 어느 때입니까? 갓난아이 때입니다. 이 때 아이들은 엄마 젖꼭지가 아프도록 먹어댑니다. 물론 요즘은 분유를 먹지만요.

그리고 다음은 청소년기 때문입니다. 이 때 아이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참 옆에서 보면 놀라기도 하고 신기해 할 정도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먹나, 저것이 어떻게 다 들어가나. 얼마 시간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엄마 밥 줘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갓난아이처럼, 학생들처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 마음도 한계가 있습니다. 뭔가 가득 들어 있으면 다른 것이 못 들어갑니다. 돈을 좋아하고, 친구(이성)를 좋아하고……. 그러면 신앙, 말씀이 잘 못 들어갑니다. 기도 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 없이 기도하면 미신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기도가 함께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말씀을 배움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2. 오직 사랑 안에서(15)”입니다. 이 모든 것을 묶어서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행하고,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미쳐서, 높은 사랑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서 하는 곳이며 예수님의 화신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신앙생활하기 위해 다니는 것 이상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 교회가 긍정적으로 보이고 사랑스러워져야 내 믿음이 자랍니다.

목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반대로 목사를 비딱하게 보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목사와는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말씀을 통한 신령한 관계가 중요합니다.

 

3. 그리고 참된 것을 하여(15)”입니다.

진실, 그것이 성장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진실 하려고 노력해보았습니까? 잠언 307~9절을 보면 아굴이라는 사람은 이러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죽기 전에 저의 두 가지 소원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내 마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깨끗한 진실을 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무릇 진실이 있고야 성장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은 "진실이나 진리를 말하여"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삶은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드러낼 때, 우리가 믿는 바인 진리를 입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그만큼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은 삶의 성실을 포함합니다. 즉 성실한 사람, 봉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바라기만 하면 사랑이 죽어 갑니다. 부부관계가 나빠집니다. 그런데 잘 하냐 못 하냐 상관없이 눈감고 잘하기만(마음으로 사랑해주면) 하면 상대방도 잘해 줍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변화되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가 주를 위해 헌신해 볼 때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우리는 1)교회서 시켜줘서 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내가 찾아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예배 후 주보, 휴지 줍는 사람

초대교회/ 가난한 빵 굽는 기술자 - 어떻게 하면 섬길까 제일 맛있는 빵 예수님께 드려야지. 성전 앞에 갖다 놓음 - 어떻게 하면 맛있게 구울까? 아침에 - 빵 없어짐 - 거지가 갖다 먹곤 함 - 이것을 알게 된 랍비 저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 주어야지 하곤 아침에 빵 갖다 놓은 것 붙들어 이놈아 예수님이 먹은 것이 아니라 거지가 먹은 것이야 그렇게 예수 믿는 것 아니야그 때부터 빵 굽는 사람 살맛을 잃어버림 - 랍비 회개 - 예수님께 드리려고 하면서 할 때 그 빵집의 빵 맛은 어떠했을까?

4. 나아가서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15)”입니다. 범사에, 모든 환경에서, 역경은 역경대로, 순경은 순경대로, 성공은 성공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닮아갑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에게서 온 몸(교회학교, 제직회, 담임목사, 구역...)이 각 마디(그리스도와 연결된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렇게 서로 성숙한 성도 각각의 재능과 은사, 봉사의 삶이 모아져 서로를 일으켜 주고 도와주어서 결국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치가 이뤄지고 그때 교회의 진정한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이란 비기독교인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원도 믿음이 없는 사람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괴로워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소원이 바로 내 소원이 바로 내 소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바로 내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여기시는 그것이 바로 내 영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생각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느끼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지체로, 이 지체의 분량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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