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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보내면서 | 박승남 | 2019-0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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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43:18-21절 개역개정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43:18-21 한 해를 보내면서
이러한 때에 [내려가는 연습]이라는 책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2009년도에 지식생태학자 유영만교수가 쓴 것입니다. 그란데 오늘의 상황과도 견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시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을 경제빙하기라고 명명하고, 따뜻한 새봄(희망)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적 생존 패러다임으로 '내려가는 연습(Top to Bottom)'을 제안합니다. 밑바닥까지 기꺼이 내려가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내려감'은 ‘추락’과는 다릅니다. 추락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지만, 내려가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잠시 멈추어 처음 출발한 목적지를 향하는 마음이자 노력으로 추락은 절망이나, 내려감은 또 다른 희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르막만 간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내리막과 오르막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내리막 길을 갈 때 원망, 불평하지 마십시오. 내리막을 갈 때 반드시 오르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불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어떤 낮은 자리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취할 태도는 감사밖에 없습니다. 낮은 자리에 떨어져도, 내리막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감사할 때에 그곳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50편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도 감동시킵니다. 반면 사탄은 엄청 화가 날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있고 짜증날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감사하게 되면 원수 마귀는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싸움소는 머리를 최대한 낮춰서 상대를 제압합니다. 낮출수록 강해집니다. 우리 모두 바닥을 치고 다시 힘차게 도약합시다. 내리막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내리막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새 길을 보이십니다. 내리막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생수의 강 같은 복을 주십니다.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왜 이런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을까요? 우선 이전 일, 옛날 일은 출애굽 구원의 사건 을 말합니다. 그것을 이사야 43장 16, 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다 다 잘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 말로 머리로만 아는 일입니다. 그냥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옛날에 하나님이 그랬다더라 라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그들의 현실에서 에너지, 동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믿고 오늘도 얼마든지 그런 일을 행하실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엄청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저들은 바벨론 여기 저기에 흩어져 집단생활을 하면서 강제노동에 동원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조롱도 받고 천대도 받고 무시도 당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자존감은 추락했고 삶의 의욕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패배주의에 빠져 우울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이전 일, 엣날 일을 기억, 생각하면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오늘도 우울증에 빠져 사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란 어떻게 보면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과거중에서 기뻤던 일은 잊어버리고 슬프고, 실패하고, 불행했던 일만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옛날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하나님 그리고 미래의 하나님, 희망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 출애굽사건만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새롭게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현실이 어렵고 우울감에 사려잡혀 있거나 고통스러울지라도 과거 회고주의, 패배주의에 빠져 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둡고 불행한 과거에 집착해서 산다면 절대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출애굽 사건도 바벨론 귀환사건도 모두 옛날 일입니다. 그러면 새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며 또한 매일 매일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출애굽, 바벨론 귀환 사건 모두 소중한 사건,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귀한 영감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오늘 각자 형편에 있는 우리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당연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바국 2장 4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를 죄악에서 부르셔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운명,세상말로 새로운 팔자를 우리에게 펼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날마다 이루십니다.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43:19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러분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올려면 광야, 사막 길을 걸어야 했는데 그 광야에 사람 다니기 좋게 길을, 그리고 갈증을 해결하도록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포로생활하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도저히 현실성 없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장애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광야, 사막에 도로가 나 있습니다. 어쟀든 당시로서는 전혀 현실성 없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앞을 미래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애가 4:3절을 보면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타조는 타조는 알을 15개-30개씩을 낳아 낮에는 따뜻한 모래 속에 방치하여 두었다가 기온이 내려가는 밤이면 암컷들이 교대로 알을 품어 줍니다. 그렇지만 모래 속에 숨겨둔 알을 잊어버리는 수가 많으며 그 알을 도둑맞을지라도 쾌념치 않습니다. 더욱이 타조는 목이 마르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자기가 낳은 알을 깨어 먹는 무정하고 애정이 없는 잔인한 새입니다. 승냥이 역시 잔인한 동물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여기 승냥이나 타조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잔인한 바벨론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위대한 일을 보고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을 존경하고 귀하게 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출애굽 때나 에스더(모르드개) 때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출애굽기 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에스더 8: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그러므로 살면서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만들고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기죽거나 주눅들지 말자.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을 믿으며 담대하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선택받았고, 부름받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기릅니다만 때로는 자녀들이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망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려고, 찬송을 받으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떤 것인가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놓고 새기고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내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천년만년 포로로 바벨론에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어렵고 힘든 가운데 계속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새 일이 있습니다. 새 날을 열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새 일은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일을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가슴에는 새로운 꿈과 희망이 약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그래도 힘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 천년 전에 낙망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그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새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는 사람에게는 믿는 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일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끊임없는 실패만 거듭했다 할지라도 패배의식에서 헤어나고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에게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커넬 할랜드 샌더스(Colonel H. Sanders:1890∼1980)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를 대신해 두 동생을 돌봐야 했고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웬만한 음식은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그가 12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고 어쩔 수 없이 그는 일을 해야만 했고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29세 되던 1920년 켄터키 주 니콜라스빌에서 주유소 운영하게 되었고 배고픈 여행객들이 쉬어가는 주유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해 잘 되니까 아예 식당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1939년 화재로 그의 레스토랑과 모텔이 소실됩니다. 다시금 재건하지만 1950년 가게 앞으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고 그는 다시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5세로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어렵고 힘든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너무 연약해져 병까지 얻은 그는 침대에서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찬송도 보통 찬송이 아니라 너무 너무 기쁘게 부르는 찬송이어서 그는 창문을 열어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다리가 하나 없이 목발을 짚고 가면서 기쁘게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보시오. 당신은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겁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고 저 천국이 내 집이고 언젠가 거기 갈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너무 벅차답니다.” 그 말을 들은 샌더스는 자신이 옛날에 교회에 다녔던 생각이 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회개의 눈물이 나왔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건강도 회복되고, 새로운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환상 중에 닭들이 철새처럼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게 뭡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얼마 후에 “샌더스야, 저 놈들을 튀겨라. 튀겨서 팔아라”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닭튀김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케이에프씨 [KFC Corporation]입니다. 처음에는 주유소 내의 식탁에서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자 샌더스는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후 10년 동안 11가지 독특한 맛의 치킨 양념을 완성시켰으며, 그 비법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100여 개국에 13000여 개의 체인점이 생겼고 양복 차림의 온화한 미소를 가진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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