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벧엘의 하나님 | 박승남 | 2019-01-13 | |||
|
|||||
[성경본문] 창세기28:10-22절 개역개정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28:10~22 벧엘의 하나님 창세기 27장을 보면 축복을 놓고 이삭과 리브가가 갈립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려 하고 리브가는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하려 합니다. 왜 이삭과 리브가가 갈렸을까요? 리브가는 하나님의 복은 구태의연한 사람에게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런 생각이 없는 거에요 지금 당연히 장자에게 가야되고 그것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맛있는거 에서가 해주는거 그거 먹는 재미에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위해서 저주의 위험까지 불사하고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리브가가 야곱에게 축복하도록 한 것은 자신이 임신했을 때 아이들이 태중에서 서로 싸우니까 하나님께 물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 체험이 리브가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 7절을 보면 리브가는 남편의 말을 이렇게 야곱에게 전합니다.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데 여기 여호와 앞에서 라는 말은 이삭이 하지 않은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이삭은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에서를 축복을 하려 한 것인데 리브가는 이 축복이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축복이요, 유효하다면 엄청난 잘못이다.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니 이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남편뿐 아니라 그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야 하며 또 이뤄진다고 믿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 여러분을 통하여 인간이 구원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였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것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부흥하고 존귀함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7장 13절을 보면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그러니까 리브가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겠다고 나선 최초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역사가 흐른 뒤에 모세가 “내가 저주를 뒤집어쓰는 한이 있어도 내 민족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앞에 매달렸습니다. 사도바울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곧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10:1)고 하면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인류의 저주를 대신 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결단을 한 여인이라고 크리스틴 알렌이라는 신학자는 말합니다. 결국 이삭의 뜻과는 다르게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고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에서는 야곱에 대한 원한이 깊어가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야곱에게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 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고 말한 뒤에 27장 46절과 같이 이삭에게 말합니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 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리브가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그 하나님의 복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고 만약에 그 자녀들이 가나안 헷족속 사람들의 딸을 얻어서 결혼을 한다면 내 인생에 의미가 하나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장자권 죽 하나님의 복을 가볍게 여긴 에서는 헷 사람의 여자 둘과 결혼을 했거든요. 리브가의 말을 들은 이삭은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이제 곧 밧단아람에 계시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거기에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네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야곱이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은 얻었는데 집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얼마동안이라고 했지만 그게 20년이 될 줄 리브가도 이삭도 야곱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집을 떠난 야곱이 루스라는 곳에 도착하는데 해가 지니까 돌로 베게를 삼고 거기 누워 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풍습이라는 책을 쓴 롤랑 드보는 이걸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 베게를 베고 잔 돌이 그냥 돌이 아니라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만난 장소는 반듯이 표시를 해놨고 돌을 세워놨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러니까 이 야곱이 아무 돌이나 베고 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 가서 그 하나님을 만났다고 세워 놓은 그 기념비적인 돌을 베고 잤다 이렇게 보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성지가 몇 군데 있습니다. 특별히 벧엘, 길갈, 세겜 이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던 곳은 전부 돌을 세워놨습니다. 그게 특별한 장소인데 그 돌을 베고 잤다는 것이죠. 그럴 때 꿈에 사닥다리를 통해서 천사들이 내려오고 올라가고 그런 것이죠. 야곱도 정신 없이 도망갔는데 거기가 신성한 장소라는걸 알았다는 것이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무튼 야곱이 돌로 베개를 하고 잤습니다. 그러니까 돌배게입니다. 돌배게 하면 생각나는 근대사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기독교적 윤리관을 배웠던 장준하입니다. 그런 그는 1944년 7월부터 1945년까지의 나날들을 수기로 쓰셨는데 그 제목을 [돌베개]라 하였습니다. 물론 하란으로 향하여 가던 야곱을 생각하면서 돌베개라 한 것입니다. 장준하는 26살인 1944년 1월에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평양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쉬저우에 있는 일본군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하지만 7월에 몇 명 대원과 함께 이곳을 탈출해 중경까지 6천리의 험로를 도보로 여행을 했습니다. 말이 6천리지 참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가 광막한 중원 대륙 수수밭 속에 누워 침 없이 마른입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고 또 눈 덩어리를 베개로 하고 동사(凍死)의 기로(岐路)에서 밤을 지새우며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없이 울부짖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못난 조상에 대한 한스러움과 다시는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단호한 결의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45년 1월 31일 그들이 꿈에 그리던 중경 임시정부에 도착하게 됩니다. 임시 정부를 본 순간, 실로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임시정부의 사람들은 패기와 열정이란 찾을 수 없고 파벌주의와 세력의 아귀다툼을 하는 소인배들이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나와 결국 이범석 장군을 만나게 되고 미군과 함께 국내 침투조로서 'OSS' 훈련을 받고 국내 잠입 명령을 기다리던 중 그렇게 기다리던 조국 광복의 날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45년 11월 23일, 그는 김구 주석을 위시한 임정 간부들의 수행원으로서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게 되지만 그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의해서 그리고 박정희 공화당 정권에 의해서 탄압을 받다가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그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했던 장준하가 받은 것은 돌베개 벤 것 같은 그런 고난의 시간들뿐이었기에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이었고 오늘 우리 민족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준하처럼 그런 고상한 이유로 돌베개를 베고 자는 고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장자의 명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추구하다가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처량하게 객지의 첫 밤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딱딱한 돌을 베고 자던 밤에 야곱의 심성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내면의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꿈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영적 바탕, 즉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영성이 발동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풍습이라는 책을 쓴 롤랑 드보의 말이 맞다면 더욱 그러한 것이지요. 하지만 에서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배고픔에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을 바꿔버리는 현실성만 있었지 영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가장 처절한 순간에 하나님을 꿈꿀 수 있게 했던 그 영성의 바탕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촉매와 같은 것입니다. 야곱의 꿈은 자기가 누운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놓여진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이 사닥다리는 야곱이 도망가다가 외로워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놓은 사닥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처량하고 외로운 야곱, 도망가는 야곱을 만나 주시기 위해서 내려주신 사닥다리입니다. 땅에서 하늘이 아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진 사닥다리입니다. 바로 이게 복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사다리를 놓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기 위해서 내려오는 종교, 하늘에서 내 머리를 향하여 사닥다리가 놓이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이 사닥다리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보면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사닥다리가 인자로 바뀝니다. 왜요?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는 땅에 있는 죄인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통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닥다리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닥다리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거룩한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이 진정한 영적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보니까 하나님께서 사다리 위에 서 계시는데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13~15절의 말씀인데 표준새번역으로 된 것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여러분 이 때 야곱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야비한 사람이라 하나님께 버림 받은 존재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심판하며 등을 돌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뜻밖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용기를 주시고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눈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의 마음에 환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이제 자신감이 생기니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야곱은 그 날 꿈은 그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후로 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에게 먼저 땅에 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그렇습니다. 지금 야곱이 누워있는 땅의 이름은 루스 땅입니다. 아몬드 나무라는 뜻의 이방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체험한 야곱은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벧엘은 훗날 요셉 족속에 의하여 정복되었습니다.(삿 1:23) 아무튼 이 말씀은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임과 동시에 비록 지금 야곱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지만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란 땅에 가서 외삼촌과 함께 살면서도 항상 자기가 차지할 땅으로 돌아 갈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후에 그 땅을 에서가 아니라 야곱 차지하여 살게 되었고 후에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정복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자손이 잘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자손이 땅에 티끌같이 되리라는 번성의 복, 그리고 모든 족속들은 야곱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 이 얼마나 귀한 꿈입니까?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손에게도 해당되는 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야곱은 늘 자녀들이 많아 질 것이라는 꿈을 간직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손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죽을 때 믿음으로 12아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꼭 꿈대로 됩니다. 정말 야곱의 12 명의 아들이 이스라엘 12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12 아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기둥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른들은 자녀들이 잘 되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15세까지 부모에게서 좋은 신앙교육을 받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세상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50세에 부모의 기도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50세에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나 그는 전 생애를 다시금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결과 그의 유명한 글들은 50세 이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도 어머니의 신앙교육 아래서 16세까지 열심히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세상에 나가서 살았습니다.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사생아도 낳았습니다. 하지만 30세에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고 주님께 돌아와 자신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일은 참으로도 많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세상 가운데 살았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돌아오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선 제가 기도합니다. 자식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부모는 기도합니다. 셀 리더도 기도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대수롭게 여겨질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 기도였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부모 여러분 기도하는 부모는 자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금 못된 자식이라도 해도 그 자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언젠가는 그 자녀를 옳은 자녀로, 귀한 인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는 꿈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야곱은 자손이 잘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축복을 주시는 꿈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먼저 야곱에게 복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복 받지 못하고 어떻게 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야곱은 이 말씀을 굳게 믿고 복 받을 꿈을 꾸었습니다. 복의 사람이 될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복 받을 사람으로 행동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결국 야곱은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성경 3대 거부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꿈을 가졌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인 1886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의사 존 펨버튼 (John-Pemberton)이 평생을 연구하여 코카콜라를 조제법을 만들었습니다. 한 약국 주인이 이 의사에게 그 조제법을 팔라고 찰거머리처럼 매달렸습니다. 그는 그 조제법을 자기에게 팔기만 하면 애틀랜타(Atlanta)를 세계 제일의 상업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이익금으로 대학을 세워서 젊은이들을 양성하겠다고 꿈을 펼치며 말했습니다. 그 의사는 그의 꿈에 감동이 되어 코카콜라 제조법을 500불에 팔았습니다. 그는 코카콜라를 온 세계를 덮게 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코카콜라 회사를 창설한 아사 켄들러(Asa Candler) 입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샤르뎅이라는 사람은 “세계는 꿈을 가진 자가 가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양 속담에는 “벌레의 눈을 가진 자는 망하지만 새의 눈을 가지고 멀리 보는 자는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축복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물론 땅을 얻고 부자가 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야곱 자신 만을 위해 땅을 주시고 부자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는 꿈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부자는 꼭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꿈, 다른 사람을 복을 주기 위해 꿈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꿈 중 가장 소중한 꿈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언제나 너와 함께 하여 주고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여러분 ‘임마누엘’ 이 보다 더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든든한 것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 언젠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무디가 사는 시카고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한 밤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무디는 오직 성경책 한권 외에는 어느 다른 물건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알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파자마 바람으로 서 있는 무디에게 신문기자가 찾아와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호언장담하시더니 교회가 다 불타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러자 무디는 “하나님이 더 큰 예배당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기자는 “그렇다면 수표라고 가지고 나왔단 말입니까?” 그 때 그는 들고 있는 성경을 가리키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기자와 주위 사람들은 무디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훗날 영국으로 건너가서 큰 부흥회를 인도하였고 많은 돈을 모금하여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믿으십시오.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사십시오. 임마누엘 꿈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될 것도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꿈을 꾼 야곱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생각하였습니다.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렇습니다. 어제 밤잠들 때까지 그곳은 낮선 곳이고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깨달음을 갖고 보니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괜히 걱정하고 한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염려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그것을 모르고 염려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인생이 고달프다고 한숨을 쉬지는 않습니까? 무엇인가 쫒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보십시오. 야곱은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천당입구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요, 성전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전이고,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바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한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예배에 대하서는 오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부어 드린 기름은 당시 야곱이 갖고 있었던 소중한 재산입니다. 허런까지 가려면 노잣돈이 필요했는데 바로 그 기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앞으로 어떻게 하려 했는지 아무튼 야곱은 그것을 아낌없이 부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그만큼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어 도와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동을 주신다면 인색한 마음 갖지 말고 아낌없이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어 이렇게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예배는 서약과 헌신으로 변합니다. 야곱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서원을 합니다. 우리에게 뭔가 있어서 헌금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 감격으로 자신의 몸을 헌신하고 가진 것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다는 약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고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나에게 복을 주셨다는 그 사실 때문에 야곱은 약속을 합니다. 야곱의 물질관이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는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의 표현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린다” 는 뜻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자기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살던 곳과 사랑하는 어머님 곁을 떠나게 되었고 부모님이 주신 기름마저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에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이는 앞으로 자기에게 생기는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겠다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게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야곱의 생애를 간섭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를 간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며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2019년 1월 1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