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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 사역의 준비 박승남 20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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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4:1-13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1-13 시험과 사역의 준비

 

사순절을 맞이하여 광야에 나가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1절을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요단강은 누가복음 3장에서 밝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곳을 말합니다. 저도 예수님이 세례받으셨다는 그곳 요단강을 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물이 그리 많지 않아 강이라기 보다는 그냥 시내 갔습니다. 그리고 물은 맑지 않고 흙탕물 같습니다. 또한 강 중간이 이스라엘과 요르단 경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곳에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가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저도 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물론 온 몸을 잠그지는 않았지요.

여러분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려고 겸손하게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는데 이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3:21)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이렇게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당신의 아들이시라면 평탄하고 형통하게 공생애를 시작하도록 인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사단에게 시험을 받는 장소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아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런데 본문 2절에 날수가 다하매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날수를 다 채우신 것을 암시하는 말인데그렇다면 예수님은 40일 기도를 계획하고 나가셨다는 말이고그 계획된 날수를 다 채우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으셔서 대단한 각오를 하고 광야로 나가서 기도하신 것 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사역에 뛰어들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로 사역으로 뛰어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반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데 그 기간이 끝나갈 때 시험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인류 구원 사역을 시작하실 때가 오자 바짝 긴장한 자가 누구일까요? , 바로 시험하는 자사탄이었습니다. 성령충만하신 예수님께서 기도로 사역을 준비하실 때사탄은 더욱 긴장하여 아마도 어떻게 예수님 사역을 철저히 실패하도록 만들까를 깊이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유혹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정욕에 이끌리신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마귀가 공생에 사역을 하시려는 예수님을 넘어뜨리게게 하기 위해서 유혹한 시험입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사탄이 가지고 온 문제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과 싸우기 위하여 연구하고 연구해서 가지고 온 시험문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탄은 그 옛날 에덴동산에 있던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광야에 있던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단의 시험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이 가지 못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사단의 시험은 유홍가나 범죄자들의 소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에도예배드리는 곳에도또 선을 행하는 곳에도 사단의 시험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률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6:1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샤자갈이 두루 다니며 심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여러분광야는 한적한 곳입니다. 사람들의 내왕도 없고 신경쓰일 일도 없는 고요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이 광야에 수도원을 짓고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 생활을 했었습니다(1: 80). 그러나 여러분이런 광야에도 사단이 시험하려고 찾아 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40일간이나 황량하고 적막한 광야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며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또한 주리고 목마른 상태에 계셨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주리신지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생각하기에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가득찰 조건에 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시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고독할 때에 사단 마귀는 찾아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와줄 이 없는 것 같을 때 마귀는 찾아와서 너는 황량한 광야같은 곳에 버려졌다” “너를 돌보아 줄 이는 어디에 있느냐?”하면서 시험합니다.

여러분 본래 시험이란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시험때가 되면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잘 풀면 재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도 무조건 안좋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시험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마귀의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지피지기만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원수 마귀의 의도, 음모를 알면 넘어가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사단의 시험과 예수님의 대응을 살펴봅니다.

여러분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에게 첫 번째 던진 사탄의 싸움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데그렇다면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명령해 보아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지니고 계셨음을 알고 인간적인 약점 특히 육체적인 욕구를 자극해 그리스도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의 말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사단은 예수께 광야에 무수하게 흩어진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했습니다. 여러분떡은 곡식 가루로 만드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도 이미 있었던 물고기와 떡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되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떡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스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행사의 특정입니다. 사단의 행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에 반역적입니다. 그리스도께 돌들로 먹을 만들라고 유혹하는 사단의 말 속에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경멸하고 능욕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단은 이 반역적인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을 더 들어가서 이런 제안 속에 숨겨진 사탄의 음모는 무엇일까요? 사탄의 싸움은 단순하게 한 번 해보는 싸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승리하면 자기가 망하고자기가 승리하면 예수님을 망하게 하는 그런 생사결단을 건 싸움입나다 사탄은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으로 메시아로서 실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은 당신이 지금 배고프니까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그런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음모가 숨겨져 있는 도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반격하신 그 대답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사탄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단의 의도를 분명하 간파하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제국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심히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절실한 문제는 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대중들과 지도자들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이 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빈곤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대망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마귀는 예수님께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빵을 만들어 사역을 하라,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모세가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을 먹일 때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이 증명된 것처럼 말입니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만 된다연 예수님은 하루아침에 백성들 앞에 메시아로 군림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가장 빨리 메시아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사탄의 말을 듣게 되면 그 사역은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가장 빨리 망하는 길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유혹을 당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빵,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은 원초적이며 가장 강한 유혹입니다. 누구든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짓는 죄 중에서 빵, , 먹고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짓는 죄가 제일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먹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것이므로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영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도 하고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을 동물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당연히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부터도 먹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당연히 생각은 정신에서 더 나아가 영혼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빵과 정신’, ‘육체와 영혼’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빵과 정신’, ‘육체와 영혼물질과 영적인 것 이 두 가지는 다 소중하지만 거기에도 순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이 순서를 뒤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먹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물질적으로 빈곤하게 살다 보니 그런 생각도 날 만하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모두 우리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절대 소중한 것이지만, 하늘은 땅보다 위에 있고, 또한 땅이 생기기 이전에 먼저 하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땅보다 높고, 땅에 앞서 소중한 것입니다. 시간과 영원은 다같이 소중하지만 시간은 사라져도 영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소중한 것을 알았지 영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과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당장 육신의 안일함과 쾌락을 생각한 나머지 영혼을 망각하는 처사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거절하신 이유는, 빵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당시 육신을 입고 있던 예수님조차도 먹을 것이 절실히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조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메시야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셔서 행하셨으며 그것도 먼저 말씀을 들려주시고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시므로 무엇이 더욱 중요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17절 말씀처럼 이마에 땀을 흘려서 얻은 빵이 아닌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빵의 품위를 높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육신의 지나친 쾌락과 안일을 탐내지 말고, 정신적인 면, 영적인 면을 앞세움으로써 육신과 물질의 품위를 높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압제 밑에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입을 것은 물론이고먹을 것도 없는 그 당시 교인들의 힘으로 교회당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당을 지을 때에도 한국 교인들로 하여금 자립적으로 예배당을 짓도록 하고선교사들은 절대로 돈으로 도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1년 걸려 안 되면 2년을 걸쳐서라도 스스로 건물을 짓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 모임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한국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연서 힘을 얻어 굶주려 가연서 건축을 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자립정신이 되었고이 정신을 기틀로 해서 한국 교회는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일이 돈으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돈으로 하려는 일은 모든 사람을 타락시킬 뿐입니다. 더욱이 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밥이, 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귀는 다시 예수님을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 모든 권세와 영광올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녕 겨 준 것 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철하연 다 네것이 되리라

순식간에란 말은 우리말로 시계의 똑딱 하는 시간에란 뜻입니다. 똑딱 하는 순간에 사탄은 어떤 심리적인 상상력 을 통하여 천하의 영광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은 다 내 것이라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기만 하연 다 네게 주리라는 말입니다. 첫번째 시험은 깊이 숨겨져 있는 음모였다연 두 번째 시험은 사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표현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말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다 자기 것이란 말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그에게 넘겨준 적이 있습니까? 또 그 권세와 영광을 자기가 줄 수도 있고 안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소유권 이양의 자유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기가 하나님보다도 높고 위대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수 당신도 내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소위 부유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매력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지성인들은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을 돋보이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만 이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자기 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유혹입니다. 현세적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기가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을 잘 살게 해주지 못한다는 터무니없는 교만에 빠지기 쉽고, 돈과 명예를 차지한 자는, 만민이 그 돈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잘나서 고개 숙이는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혹은 비단 힘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권세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이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면 구성원들이 힙듭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관철시킬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권위 사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의 자리에 올라가기 원하지만 권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음을 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4가지 그릇된 권위자의 유형들을 보겠습니다.

1) 힘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라면 해야지 말이 많아라고 자기 마음대로 밀어 붙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지 마라가 많습니다.

2) 평가하는 샤람입니다. 너 이것 밖에 못 해?’겨우 이 정도야? 다시 해!’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평가 받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3)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니다. ‘지시만 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입나다. 니가 뭘 알아그걸 말이 라고 해?’하는 가까이 다가 갈 수 없고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주입합니다.

4)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시람입니다. 이들은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해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내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귄위자들이 되지않기 위해서, 사단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만이 이 세상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고 우리가 예배하고 섬길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 를 주 너회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6:13)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아 성경에 네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써있는 곳도 한 곳도 없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라 하였지너 같은 사탄을 경배하라는 곳도 한 곳도 없다.” “메시아의 사명을 성취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지 너 따위 악한 사탄이 도와서 이뤄 지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과 결탁하여 사는 길이 빠른 길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철저히 패망하는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묵묵하게 그의 말씀을 따라 살 때만이 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이나 복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소원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탄은 이제 다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예수님을 데리고 갔습니. 마태복음의 순서는 광야성전 꼭대기그리고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유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광야그리고 성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마태복음에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굶주림명예그리고 권력의 순서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지역적인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광야그리고 예루살렘입니다. 아마도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절기 때 예루살렘에는 순례객들이, 성전에는 예배하는 자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어떤 기적적인 복을 바라고 있었올 것입니다. 그 때 성전에서 한 사람이 뛰어 내렸는데 마치 종이처럼 날렵하게 내려앉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를 우상처럽 받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시켜서 당신의 발도 상하지 않게 하실 것이고당신은 쉽게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유혹이었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유혹이 다 있습니다. 이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도취에 속아넘어가 이단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유혹은 부지불식간에 그릇된 신앙의 길로 인간을 유인하기도 합니다. 최근 유투브를 통해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씨에 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가막힌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고 하면서 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내려오십니다. 임재사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단한 신령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엄청난 종교사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미혹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도 눈앞의 것만 보고, 안이한 일에만 집중되기 쉽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유혹입니다. 눈을 들어 먼 앞날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믿음을 갖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사탄의 음모는 그 속에 또 하나의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말을 듣고 성전에서 뛰어내렸다면 그것은 하나닝을 시험한 것이 됩니다. 사탄은 이처럼 교묘한 수단으로 우리를 꼬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한 마디로 사탄이 제시한 두 가지 유혹을 단번에 물리쳤습니다. 시험은 예수님의 완전 숭리로 끝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까? 인류 구원사역올 어떻게 성공적으로 완성하실까를 생각하고 준비하시기 위하여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사용한 금식하셨다는 말은 동사인 네스튜사스입니다. 이 말은 헌신올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인 금식올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으로 들어가시기 위해서는 이러한 엄숙하면서도 강한 헌신의 시간이 필요하셔서 나가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로 모든 일을 할 때,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할 때 사탄을 물리칠 수 있고 사탄의 방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준비하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악의 세력을 꺾기 위해 나가신 것 입니다. 겉으로는 기도하러 가셨습니다만 영적인 깊은 의미는 기도로 사탄을 멸하러 나가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셔서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이 광야의 싸움을 통해서 사탄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탄은 임기웅변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는 존재입니다. 갑자기 자기가 영웅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를 타락의 길로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또 인간들의 기본적인 욕망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간질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함정에 몰아넣고 철저하게 망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악한 존재입나다 이런 사탄을 예수님은 기도하시연서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이런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와 말씀뿐입니다. 2019310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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