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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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시고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 박승남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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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0:25-43절 개역개정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0:2543 번창하게 하시는 하나님

 

 

 

옛말에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수고하고 애를 써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힘써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는 일마다 잘되고 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야곱은 이제까지 살펴 본대로 11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던 라헬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했을 때 야곱의 맘고생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요셉을 낳고 난 뒤 라헬의 지위도 확립되었고 여간 든든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야곱의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어언 14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 라반과 약속한 기간도 끝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에게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라반의 입장에서 볼 때 야곱을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야곱을 부려먹은 재미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라헬을 얻는 대가로 품삯을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야곱이 자기 집에 온 이후로 많은 재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돌려보내고 싶겠습니까? 물론 된 사람이라면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고 하며 두둑이 품삯을 주며 돌려보내겠지만 라반은 그런 위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종처럼 부려먹는데 재미 들린 사람은 그 종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을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제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을 삼켜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이 민족을 자기들 마음대도 짓밟고 수많은 것들을 착취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에 앞장서고 그런 가운데 이득을 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바로 친일파들입니다. 그래서 친일청산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우리 나라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친일했던 이들이 각 분야에서 득세를 한 어이 없는 일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국가보훈처의 사회주의 계열 및 친일 경력 독립운동가 서훈 재심사를 두고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고 발언한 이후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반민특위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입니다. 8·15해방 직후 무엇보다도 신속히 친일파를 척결함으로써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기회를 놓쳤고, 이후 미군정은 남한에 반공국가를 수립하기 위하여 공산세력에 대항할 세력으로 친일파에 주목하였습니다. 따라서 친일파의 청산은 미국의 국익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논리로 미군정은 일제강점기의 통치구조를 부활시키고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이승만 정권 역시 미군정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친일파는 이승만의 정권장악과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이를 위하여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였고 노덕술 등 친일세력은 특위 위원 암살 음모, 국회 프락치 사건 등을 일으켜 반민특위는 설치 1년여 만에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에 대한 처벌은 공식적으로 1명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로인해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친일의 대가로 축적한 부와 명예를 고스란히 유지한채 이를 바탕으로 더큰 부와 명예를 쌓아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중심부를 장악한 채 조상들이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빌붙었을 때 이상의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이 탐이 나서 자기의 딸마저 팔아먹었습니다. 야곱의 노동력이 두 딸보다 귀했고, 명예나 진실보다 일 잘하는 사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늘리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야곱이 자기를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간다고 말을 하니 라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고 하면서 말립니다.

그런데 여기 라반이 깨달았다는 말을 원어나 영어 성경에 보면 점을 쳐서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은"자네가 나를 좋아하면,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네. 주께서 자네를 보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점을 쳐 보고서 알았네."라고 번역했습니다. 결국 이는 그가 야곱이 믿는 하나님을 들먹이곤 있지만 그는 점이나 치며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 벌거나 자기 야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런데 시49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멸망할 짐승과 같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 라반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돈, 재물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이들은 멸망할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라반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나는 너 때문에 복 받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말을 듣는 야곱의 마음은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얼마나 듣습니까? 우리 결혼한 여자 분들은 시댁식구들에게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직장 상사에게 바로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복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바로 당신은 복 덩이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요셉도 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39: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그래서 당시 요셉의 주인이었던 보디발은 요셉 때문에 복을 받고 싶어 요셉을 가정 총무를 삼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야곱이 오기 전에는 가진 것이 미미하고 그래서 자기의 딸이 양을 치고 물을 먹였는데, 야곱이 자기에게 와서 일을 한 후부터는 양과 염소와 낙타가 큰 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이 자기에게 복을 몰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복을 받고 잘된 것이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함으로 자기가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라반뿐 아니라 야곱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30절입니다.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야곱이 성실하게 일을 한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도와서 라반의 집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적은 소유가 지금은 번성하여 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비록 기독교 때문에, 즉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가 잘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회개하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한국 민족을 위해 다방 변에서 많은 기여를 해왔고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하여 이 나라에 정신적, 물질적인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 우리도 우리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 까닭에 라반이 복을 받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복이 생기고, 함께 하는 사람들마다 복을 받고,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이렇게 야곱이 있는 것이 자기에게도 복이 된 줄을 알았기에 라반은 야곱을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위로 생각하지 않고 품삯 없이 종으로 일을 부려먹었는데 야곱이 간다고 하니까"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고 제안했습니다.

여러분라반은 진실로 심리전의 대가이기도 할니다. 자신이 품삯을 정하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정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거래에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약자에게 이런 권한을 주면 약자는 품삯을 잘 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여기서 야곱이 현재 라반이 가진 재산에서 그 분깃을 요구했다면분명히 라반의 계략에 말려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계략과 속입수률 사용해서라도 야곱이 요구하는 그 품샀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내와 자식들 모두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3143절에 나타난 랴반의 언행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격하던 마지막 날 밤에 여호와께서 냐타냐셔서 모든 것을 정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여전히 야곱의 것을 자기 것으로 싱각하는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그런데 이제 야곱은 20년 전의 그런 어수룩한 헛똑똑이 야곱이 야곱이 아닌 것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으면서 그는 이 협상(빅딜)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간만에 하나님께 기도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은 삼촌 랴반에게 품삯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삼촌의 현재 소유를 중에서 몇 퍼센트를 분깃으로 요청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삼촌은 다시 빼앗아 갈 것이 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래에 태어날 앙과 염소를 중에서 자신의 분깃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서도 분깃의 기준을 명확하게합니다. 가축들의 색상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흰색을 검다고 할리 없고 얼룩이를 검거나 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야곱에게 히든 카드가 있었던 것입니다. 십여 년 간 외사촌 집에서 목동생활을 하면서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비우고 일하지 않은 것입니다. 억지로 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삼촌을 위해서 일했슬니다. (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어떻게 하면 흠 없는 새끼들을 얻을까, 어떻게 하면 약골들을 튼실한 놈므로 만들 수 있훌까 고민하면셔 여러 가지로 많은 시도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성직자이지 생물학자인 멘델이 현재 체코지역인 브륀의 수도원에서 신부로 근무하면서 8년 동안 완두의 교배 실험을 통한 결과 분석에 의해 우열, 분리, 독립의 법칙이라는 세 가지 유전 법칙을 발견하여 1865년에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도 안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흰색인 양암놈과 수놈 둘을 교배를 하더라도 모두 흰색이 나오리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완전히 흰색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얼룩이나 점 있는 것도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는 계산에도 능했던 것같습니다. . 기하급수(幾何級數)라는 것을 제대로 이래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라반의 입장에서는 야곱이 자신의 소유 얼마를 떼어 달라고 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꾀 많은 야곱은 금방 보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라반의 것을 얻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라반이 줄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습니다. 물론 라반이 그리 많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외삼촌 라반에 기대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눈치를 보며 받는 것보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자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했던 야곱이 택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말한 것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31~33절까지입니다.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한 가지 일만 허락하여 주시면,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계속 먹이고 돌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 사이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양 떼에서 얼룩진 것들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고, 염소 떼에서도 점이 있는 것들과 얼룩진 것들을 가려낼 터이니, 그것들을 저에게 삯으로 주십시오.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훗날 장인께서 저에게 삯으로 주신 가축 떼를 확인하여 보실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가운데서, 얼룩지지 않은 양이나 점이 없는 양이 있든지, 검은 색이 아닌 새끼 양이 있으면, 그것들은 모두 제가 훔친 것이 될 것입니다."

야곱은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얼룩지고 점 있고 검은 양, 점이 있고 얼룩진 염소)들을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야곱에게 매우 불리한 계약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생물학적으로 우성이 아니라 열성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중근동의 양들은 거의 대부분 순수한 흰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염소는 순수한 흑갈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라반은 금방 여기에 동의합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그런데 보십시오. 라반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 이렇게 말해 놓고서도 바로 그 날로 숫염소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내고 또 모든 암염소 가운데서도 흰 바탕에 얼룩이 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어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라반은 야곱이 있는 데서 사흘 길을 더 나가서 자기와 야곱 사이의 거리를 그만큼 뜨게 하였습니다. 입으로는 야곱이 말한 양들을 주겠다고 해 놓고는 그것조차도 아까워서 자기 아들을 시켜 빼돌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럴듯하고 말하고 약속도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이율배반적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드리거나 남 주는 것이 아까워서 챙길 것은 다 챙겨버리고 속이는 것은 없습니까?

이제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양중에서 얼룩지거나 점 있거나 검은 것이 있어야 교미를 했을 때 역시 얼룩지거나 아롱지거나 검은 새끼가 나올 텐데 그런 것을 모두 가져가버리니까 어찌 해볼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론 외삼촌을 욕하고 원망하고 머리를 싸매고 낙심하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야곱은 이런 불가능한 환경 가운데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여러분 야곱은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서 방황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는데 첫날 밤을 지내고 나서 보니 자신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장인에게 속아서 사기 결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장인한테 또 속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합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를 낙심케 하고 쓰러지게 하고 한 맺히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 말씀을 믿고 어떠한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았습니다. 비록 인간적인 술수, 얕은꾀가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복 받은 비결입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나머지 양 떼를 치면서 미루나무(포플러), 살구나무(아몬드나무), 신풍나무(플라타너스)나무에서 푸른 가지들을 꺾어서 껍질을 벗긴 다음에 벗긴 가지에 흰 무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흰 무늬 가지들을 물 먹이는 구유 안에 똑바로 세워 놓고, 양 떼가 와서 물을 먹을 때에 바로 눈앞에 세워 놓은 그 가지들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양들은 물을 먹으러 와서 거기에서 교미를 하고는 놀랍게도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이 지거나, 점이 있는 양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는데 불가능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늘리기 위해 머리를 쓰고 준비하고 고도의 작전을 편 것입니다. 여러분, 부지런하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때론 너무 부지런해서 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비록 그가 하는 일이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는 자기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얼룩지고, 아롱지고, 검은 것들을 얻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나무껍질을 뜯어다가 양들이 먹는 물에다가 놓았는데 어떻게 얼룩지거나 검거나 아롱진 양들이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자연의 섭리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 31:9-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자기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렇습니다. 야곱이 한 일이 비과학적이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라반에게 그렇게 당한 야곱을 측은히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아직 많이 다듬어져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게 중요합니다. 야곱이 어떤 방법을 썼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야곱이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썼어도 하나님은 야곱의 소유를 풍부하게 해주기 위한 역사를 하셨을 것입니다. 나뭇가지들이 신통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의 방법 속에 역사하셨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30절을 보면 야곱은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그러면 여기서 야곱에 세우고 싶은 집은 어떠한 집이었을까요?

야곱은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는 것처럼 [재벌 가정]을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도 쌍둥이의 둘째로 자라면서 받은 피해의식과 설움 그리고 삼촌 라반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라반에게 앙갚을 하느라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펀애와 아내들의 질투 때문에 자식들 마음 속에 더 큰 분노를 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정에는 자식들 간에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요셉이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원하는 바대로 재벌가정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까! 그가 행한 모든것이 루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한 [믿음의 가정, 말씀의 가정]을 세우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세우고자 한 []은 어떠한 집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가정]입니까 아니면 [재벌가정]입니까? 말씀을 따라 사는 임마누엘 가정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헛된 물질을 추구하는 욕심의 가정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야곱은 기어이 거부가 되었습니다.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여러분 야곱의 재산은 양이나 염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목민이 가져야 할 모든 짐승들과 노비들을 골고루 그것도 풍성히 가졌습니다. 그야 말로'매우', '번창하여', '많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떠한 분이라고 믿습니까? 인색하신 하나님, 엄하신 하나님으로 아니면 나와 별 상관없는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아니면 함께 하시고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주시고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주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시는((6:38) 분이십니다. 그리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20, 4:19) 우리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고, 없는 것이 없으시고,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 주시고자 작정을 하시면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우리가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려주십니다. 그것도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말입니다. 고린도 후서 8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렇게 주신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풍성한 복을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나 야곱에게는 똑같이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창세기 123절과 2814절입니다.땅의 모든 족속이 너(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의 통로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그리고 바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복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그것이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 다른 사람과 상관이 없으면 그것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주석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지 않고 쓰는 돈을 계산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33~34절을 보면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세계제일의 교회가 한국에 있고 세계 10대교회 중에 여러 교회가 한국에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자랑하고 나눌 줄 모른다면 고인 물처럼 썩어 냄새를 피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나누고 주고 베풀어야 합니다. 북한을 포함한 이 민족에 그리고 세계에까지 복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나아가 물질까지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복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019317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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