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서 돌아가라 | 박승남 | 2019-03-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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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1:1-16절 개역개정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31:1~16 떠나서 돌아가라 뉴욕 정신과 의사인 토마스 홈스 박사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강도에 따라 인생의 수많은 위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배우자의 죽음을 가장 큰 위기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부부의 이혼과 별거와 배우자의 구속, 가까운 친척의 죽음, 개인의 질병 등이 그 뒤를 따릅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14년을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4명의 여자를 통해 11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낳는 동안 야곱이 받았던 고통과 외로움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를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노가 그 마음에 쌓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자기가 배신했던 형이 있었고 외삼촌 라반도 더 있어달라하고 그래서 야곱은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런 중에 재산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재산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적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고 하는 원성어린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리는 라반의 아들들 즉 처남들이자, 외사촌들이 한 말입니다. 물론 그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야곱이 라반의 소유를 다 빼앗은 것은 결코 아니기때문입니다. 더더욱 빼앗은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야곱은 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외삼촌이 달라졌다ㅓ는 것입니다. 전에는 어떻게 하든 야곱을 붙들어 놓으려고, “너 때문에 내가 복 받았다.”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라고 말 하면서 살살 야곱을 달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반은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지 않고 자신이 가져야 할 재물을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야곱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말 한 마디 해도 좋은 말을 하지 않고 가시가 돋친 말을 하고 벌컥 벌컥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도 야곱을 곱게 보지 않고 그토록 모독적인 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라반은 야곱이 잘 되는 것이 바로 자기 딸들이 잘 되는 것인데 그런 것을 생각지 않고 자기의 재물이 빼앗겨진 것처럼 생각되어 몹시 뒤틀리고 화가 난 라반은 계속 모략을 꾸몄습니다. 7절을 보면 야곱이 아내들에게 한 이야기 가운데 이렇게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장인의 일을 해 드렸소. 그러나 장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시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셨소.” 30장에서 라반은, 야곱의 제안대로, 분명히 점 있고 얼룩무늬 있는 것을 야곱에게 주기로 계약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게 열성인자였기에 얼마 많이 안 생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라반은 그것조차 지키지 않고 야곱에게 주기로 한 것을 자기 아들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흰 양만 가지고 목축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양은 다 외삼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상하게도 건강한 가축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모두 점이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품삯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가축들을 얻게 되자 라반의 마음이 바뀌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점 있는 것만 네 것이 되리라.” 다음에는 “얼룩무니 있는 것만 네 것이 되리라.” 아니면 다음에는 “흰 것이 네 것이 되리라.”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자꾸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때마다 정반대로 되어 세월이 흐르면서 야곱은 심히 풍부하여 부자가 된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야곱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무엇 합니까? 시기와 미움, 모독, 위협을 받는 입장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말 감정대로 하자면 너무 치사해서 일이고 뭐가 다 그만두고 얻은 재물도 다 가져가라고 큰 소리 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도대체 이러한 대접을 받으려고 이곳까지 왔던가? 아니 좋아라고 부려먹을 때는 언제가 이제 와서는 미움은 고사하고 이런 모독까지 받아야 하는가? 정말 사는 것이 싫어질 수 있었습니다.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 보았자 야곱에게 득이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 뻔하였습니다. 아니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진정한 위기가 아닙니다. 아까 정신과 의사인 토마스 홈스 박사의 이야기에서 두 번째로 내면에 분노를 쌓아놓은 채 어려운 갈등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되면 하나님께 엎드려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지요. 그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러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엎드려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위기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는가요? 여러분 살아가다보면 아이들은 이리 저리 저지리를 하면 부모가 그것을 치워주고 정리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위기 극복은 야곱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야곱아!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이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어 놀라운 방법으로 품삯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야곱은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물론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로또 복권에 당첨되게 하듯 그렇게 된 것은 복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양이나 염소는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 약 150일이 걸리고 나귀는 12개월의 임신기간이 걸리고 낙타는 무려 390∼410일이나 걸립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여러 해에 걸쳐 되어진 것입니다. 즉 오랫동안 하나님은 야곱을 돌보시고 은혜와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란을 떠나라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떠나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 14:6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 자신을 돌이켜 우상들을 떠나라. 너희 얼굴을 돌려 너희의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데살로니가후서 3: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잠언 14:7절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그리고 창세기 12: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고 본문 13절에서도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떠나서 가라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살아가는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이 가능한 가나안으로 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떠남은 분리를 의미하고 구별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죄로부터의 떠남은 하나님 자녀로서의 구별된 삶과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거룩한 삶, 구별된 삶으로 초대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본토 친적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물리적인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그 은혜를 잊거나, 자신의 꿈, 욕심, 만족, 쾌락, 안락,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더이상 미련두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불안해 하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갈등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시간낭비하지 말고, 정신없이 살지 말고 떠나라 하십니다. 여러분, 이러한 말씀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분명 떠나야 할 모습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은 1)물질과 관계된 면에서 입니다. 물질에 집착해서 그것이 하나님과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2)하나님 대신에 나 자신을 더 신뢰하고 나의 능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교만마음 일 수도 있습니다. 3)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달콤함에 취해 있는 자리 (그것이 운동이든, 쇼핑이든, 술이든, 돈이든지) 4)불신의 자리, 두려워하는 자리, 의심과 염려와 근심의 자리, 죄악된 자리, 헛된 삶을 추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떠나야 할 곳을 떠나고 주님이 가라하시는 목적지, 목표를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은혜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구별되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향하여 매일 매일 작은 일상의 혁명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6절에서 야곱은 아내들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렇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힘을 다하여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라헬을 사랑해서 그리고 재물로 세워지는 자기 집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떠나라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어 쭉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하나님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재물이 늘어날 때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떠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위기상황을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재산이 느는 재미에 미적거리고 하란을 떠날 생각을 못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의 말씀까지 주시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냥 돌아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욱 구체적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13절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벧엘은 다름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광야입니다. 형을 피해 도망치는 가운데 있었을 때. 그래서 그는 두려움과 고독 가운데서 불안한 가운데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정말 자기를 찾아주어 위로해 주고 도와줄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소망이 없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느 덧 해는 지고 밤이 되어 쓸쓸히 자리에 누워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까요? 하나님께서 꿈에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사닥다리는 야곱이 누워있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천사들은 어떠한 천사들입니까? 요한계시록적인 입장에서 보면 천사들은 성도의 기도를 담아 하늘에 올려주는 천사들입니다. 즉 야곱의 어렵고 힘든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하나님은 천사들이 아니더라도 야곱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닥다리, 천사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야곱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표현해 주신 것일 것입니다. 물론 신약 요한복음 1:51절을 보면 이 사닥다리는 우리의 중보자요 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밤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을 위로해 주시고 은혜의 약속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그러자 잠이 깬 야곱은 베고 있던 돌베개와 가지고 있던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두려워할 때 나타나셔서 담대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 외로워할 때 나타나서 벗이 되어 주신 하나님, 낙심 가운데 있을 때 나타나셔서 소망과 비전을 주신 그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쓸쓸하기 짝이 없던 바로 그 광야가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의 집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 떠나 집 없는 존재, 떠돌이, 외톨이가 되었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뒤에는 “아, 내가 어머니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 방황하고 있지만 지금 하나님의 집 안에 있구나! 내가 하나님의 품 안에 있구나! 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구나!”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영혼 속에 하나님을 향한 문이 열리게 되었고,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며 넘쳐 오르는 소망 가운데 하란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이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금 위기 가운데 있는 야곱에게 나타내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여러분 벧엘의 하나님이란 “나는 네가 힘들 때 너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그 하나님, 네가 두렵고 낙심 될 때 비전과 용기를 준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동시에 “나는 지금도 너와 함께 하여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다”고 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받고 있던 야곱은 다시금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여 영적 각성이 일어났고 그 옛날 벧엘의 은혜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며 든든했겠습니까? 여러분 진정 벧엘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근심 중에 있다고 해도, 혹은 외로움에 사로잡혀 돌베개와 지팡이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또 집과 가정과 친구들을 다 잃어버리고 들판에 외로이 서 있는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어서 보호해 줄 사람 하나도 없는 그런 지경이 된다고 할지라도 벧엘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시며, 보호해 주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겠다”고 합니다. 경제가 너무 어려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민들, 가난한 이들도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기 어렵다고 그냥 주저앉아야 합니까? 그야 말로 희망을 버리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럴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우리는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벧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분을 의지하며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을 의지하여 힘과 소망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주님을 만난 사람은 두렵지도,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참새들은 하루의 일과 중 첫 과제가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조반을 먹지 않은 채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들에게 먹이를 공급하십니다. 새장 안에 들어 있는 새는 시간에 따라 주는 양식을 걱정 없이 먹고 삽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중에서 마음껏 기르시는 새보다 애완용으로 새장 안에 가두어서 기르는 새가 죽는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굶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앞으로 우리의 여정이 끝마칠 때까지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떠나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야곱이 돌아가기 어려운 조건도 많았습니다. 재산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처자들과 자녀들 그리고 많은 식솔들이 딸려있었습니다. 더욱이 아직 에서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못간다고, 갈 수 없다고 아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무사히 돌아오게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너와 함께 하겠다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진정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우신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을 든든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사람을 보내어 아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 있는 곳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사정, 형편과 하나님께서 돌아가라 하셨다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자 이제 긴장된 순간입니다. 여기서 만일 아내들이 우리는 못 가겠다거 하면 일은 틀어지는 것입니다. 절대로 못 간다든지, 갈려면 당신 혼자나 가라든지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어도 가족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정말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만일 그 아내 사라가 못 간다고 틀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 그런데 보십시오. 라헬과 레아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말은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서로 시기하고 질투했지만 이제 한 마음이 되어 적극적으로 남편 야곱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 것입니다.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여러분 가족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 중요한 가족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특히 주님의 일을 하는데 좋은 후원자가 된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아내나 남편이 또는 자식과 부모가 이해해 주지 못하고 속만 긁어 놓으면 얼마나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힌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우리 가족이 믿음의 좋은 협조자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범적인 부부 중에 하나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저들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한 마음이 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굴라를 데려다가 부부가 합심하여 성경공부를 시키기도 했고 사도바울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이들에게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가정입니까?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름답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옵소서. 특히 우리 부부들이 마음과 뜻이 하나 되어 힘써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며 함께 더불어 노래하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이 종과 더불어 정말 행복하게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지금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그 협조를 받고 있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받으며 그 후원을 받고 있습니까?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사랑 대신에 미움과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후원을 받기는커녕 방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소망을 잃고 낙심 충만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미국을 방문하던 날, 수많은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평생 동안 신학을 연구하고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면서 당신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이 때 이 세계의 위대한 신학자는 뜻밖의 너무나도 단순한 말을 해서 기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떤 말을 했을까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찬송을 나직이 읊조렸습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563장)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본향이 하나님께 돌아가 그 품에 안기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그러니 이제 너는 은혜의 자리, 바로 나에게로 돌아와 내 사랑 안에 거하라.” 2019년 3월 2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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