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시는 하나님 | 박승남 | 2019-03-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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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17~45 도우시는 하나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뿌리(Roots)]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 1921~1992)의 집을 방문한 친구가 그의 사무실에 걸린 사진을 보고 의아해 했습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높은 담장 위에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친구는 비아냥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니 웬 거북이 사진인가? 자네의 명성과는 맞지 않는 초라한 작품이로군." 그러자 알렉스 헤일리가 대답했습니다. "볼품없는 사진이지만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항상 깨우쳐 주는 것일세. 느릿느릿한 걸음인데다가 위로는 도저히 오르지 못하는 거북이가 혼자서 담장 위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히 누군가 도와준 것이지, 이 거북이 그림은 때때로 '내가 굉장하구나!'라며 자만에 빠질 때마다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네. 거북이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내가 이 높은 자리에까지 어떻게 올라오게 되었는가를 말이야.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일세." 여러분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있을 때부터 탯줄을 이용하여 어머니의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어머니가 물려주는 젖을 빨아먹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부모를 위시한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나아가 이웃, 선생님, 친구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나아가 더 넓게 보면 우리는 농사짓는 농민이나 장사하는 상인이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도움을 입고 살아갑니다. 결국 한 사람이 살아 갈 수 있고 나아가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하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람의 도움만으론 부족하고 더욱 큰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시121:1~3절은 노래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 읽은 본문에 나타나는 야곱이라는 사람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어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어 주셨습니다. 특히 하란 외삼촌 집에 와서 뼈 빠지게 고생했지만 가족 외에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을 때에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재산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말씀하시면서 하란을 떠나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물론 이 때 그의 아내들도 야곱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결단을 내리고 하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라면 20년간 함께 한 외삼촌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이 마땅하였지만 외삼촌을 두려워한 야곱은 그렇게 할 수 없이 몰래 떠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용의주도한 인물입니다. 때 마침 양털을 깎으러 집을 떠나 멀리 있는 들판으로 나간 사이에 일을 처리했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양털 깎는 일은 무척 중요한 행사였고 큰 잔칫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집을 떠나 그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각에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야곱의 일손도 몹시 필요로 했을 텐데 웬일인지 야곱과 야곱의 종들은 떼어놓고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이것은 이제 라반이 야곱을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을 데려가면 또 무슨 손해를 입게 될까 걱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양털을 깎는 일이 끝난 후에는 축제가 있었는데 이 축제에 야곱이 있으면 불편해서 즐길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야곱에게는 기회가 되었고 라반에게는 화근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바로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짐과 재산을 다 챙겼습니다. 그 때 라헬은 아버지 소유인 드라빔 신상을 훔쳐 짐 속에 넣었습니다. 이 신상은 사람 모양의 작은 입상으로 하란 지역에서는 가정 수호신으로 모셨습니다. 또한 이 우상은 자녀들 간에 재산 분쟁이 생겼을 때 집안 상속자임을 내세우는 유력한 증거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영악한 라헬이 아버지 몰래 챙긴 것입니다. “자, 이제 서둘러 떠나도록 합시다.” “애들아 빨리빨리 움직이자. 요셉은 엄마 곁에 바짝 붙어 다니고...” 야곱은 서둘러 아내들과 자식들을 낙타에 태웠습니다. 이 때 야곱의 나이는 놀랍게도 97세, 고향 땅에 계신 아버지 이삭의 나이는 157세였습니다. 떠날 때는 빈손에 지팡이 하나 짚고 욌지만 돌아갈 때는 큰 일가를 이루어 마치 거상의 행렬과도 같았습니다. , 야곱은 일행을 독려하여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길르앗 산악 지대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사흘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야곱이 재산을 챙겨 식솔들을 거느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배신감이 몰려왔습니다.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소식을 들은 라반은 그동안 자신이 야곱에게 잘못했던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야곱이 자기를 속였다는 생각에 괘씸하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꾼들과 자기 친척들로 급히 추격대를 꾸렸습니다. 창칼과 활로 무장하고는 야곱 일행을 급히 추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라반은 야곱과 같은 속도로 가서는 야곱일행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명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부랴부랴 쫓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인생의 단면과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고 아우성을 치면서 죽을 둥 살 둥 애를 쓰고 노력하며 삽니다. 마치 이 라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수고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썩 만족할 만한 것입니까? 시127편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리고 야고보서 4장 13~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서둘러라! 야곱에게는 식솔이 적지 않은데다가 가축 떼가 딸려 있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가나안 땅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라고 하며 자신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달아난 중죄인을 잡으려는 듯 거칠게 추격대를 몰아 붙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야곱은 라반의 재산에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기 재산만 챙겨서 떠났을 뿐입니다. 드디어 일주일을 쫓아가 야곱이 진을 친 바로 근처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야곱은 길르앗 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때 라반은 “너는 내 손에 있다. 오늘은 하루 봐주겠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에게는 참으로 위급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살기등등한 야곱은 그날 바로 덮치지 못하고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아마 길르앗 산에 이를 때에 캄캄한 밤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하룻밤 사이에 놀라운 일이 있게 됩니다. 분노로 가득 차서 노기를 띠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 뻔한 라반 그러던 중 잠시 눈을 붙였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틈을 이용하셔서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심으로 야곱을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다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1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꿈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야곱과 시비를 따지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야곱을 감싸신 것입니까? 왜 이렇게 야곱을 도우시는 것입니까? 도대체 야곱이 뭐가 그리 잘났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이 실수를 많이 했고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상황 가운데 개입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가 잘못했든 잘했든 상관없이 위기에 부딪히면 자녀의 일에 개입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 우리들이 훌륭하고, 믿음이 있고, 매사에 무엇인가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장애물을 제거해주시고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기를 막아주십니다. 야곱도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것만큼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해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라반에게????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 말은 “야곱이 잘못했던 잘했던 따지지 말고 그냥 돌려보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분명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죄를 드러내시고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미가서 3장 8절을 보면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국가적, 개인적으로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야 할일도 있습니다. 과감하게 정리하고 청산하고 제거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개혁하고 새롭게 고쳐 더 낳은 미래, 발전된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공정함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진정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되어지는 일이 될 때 그것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 자신의 당파와 자신의 정권의 이익만을 위한 일이나 편 가르기 식으로만 되어지는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 잘못한 것을 꼭 밝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야 속이 시원합니다. 또한 일을 바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경각심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하나님께서는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덮어두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심판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을 보호하시기 위해 시비를 따지지 말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잘 살피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잘못한 일이 있거든 따지지 말고 그냥 넘어가 주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최종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또한 우리 하나님은 덮어주시고 가려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형벌 받고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어 주시고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의 그 모진 고통과 그 엄청난 저주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는 자는 그가 어떠한 죄를 지었던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덮어주시고 품에 안아 주십니다. 인간이 잘못했을 지라도 사랑해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도 품어 주셨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탕자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고 잔치를 베풀어 준 아버지처럼 그리 영접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를 보면 이러한 사랑을 물씬 받은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동이 터 올랐습니다. 그리고 라반 일행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때 야곱과 야곱의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간신히 라반을 피하여 가나안으로 도망을 하였는데 결국 라반에게 잡히고 말게 되었으니... 그리고 아마 이때 야곱은 "이제는 죽었구나? 설혹 죽지는 않는다 하여도 나의 재산은 다 빼앗기고 처자식들은 인질이 되고 나는 그야 말로 빈털터리로 갈 수 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좌절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하란을 떠나기전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3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바로 그 이 순간에도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진정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야곱을 사랑하시고 도우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 만나 배에 타 두려워하였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을 위해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여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라반은 결코 야곱을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한 선교사님이 어떤 원시 밀림 지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잔인한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첫 날 짐을 풀고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그 이튿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족민들이 환대해주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 하도 이상해서 그가 부족민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들이 내가 도착한 날 가만 놔뒀습니까?” 그러자 그들의 대답이, “그렇지 않아도 당신을 치려고 갔는데 당신 텐트 주위에 시퍼런 칼을 든 건장한 무사 7명이 거기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6년이 지났습니다. 선교의 열매를 많이 맺고 안식년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귀국 후 이 간증을 하고 나서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한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자기를 위해 7명의 기도후원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은 어떠한 모습이든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6) 자 그러면 야곱을 따라 잡은 라반은 어떻게 했습니까?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어쩌자고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내 딸들을 전쟁 포로 잡아가듯이 하느냐? 27 왜 이렇게 나를 속이고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치는 거냐? 나에게 알렸더라면 소구를 치고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떠나보냈을 것이 아니냐? 28 내 손자들이며 내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떠나보내지도 못하게 하다니, 이런 바보짓이 어디 있느냐? 29 나는 얼마든지 너를 해칠 수 있다. 그러나 어젯밤에 네 아비의 하느님께서 너와 시비를 따지지 말라고 하셨다. ”하고는 이제 다른 것으로 시비를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0절을 보면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네가 나의 허락이 없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것은 이제 허락하마. 그런데 어찌 나의 드라빔을 도적질 하였느냐? 그것을 놓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에 이것은 야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장인께서 저의 처들을 강제로 빼앗으실까 보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장인 댁 수호신상들을 훔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장인의 물건 가운데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저에게 있는지, 우리의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보시고 있거든 가져가십시오." 그래서 라반은 이제 야곱의 장막을 뒤집니다. 야곱의 장막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하자, 레아와 두 명의 여종의 장막에 들어가서 찾다가 찾지 못하자 라헬의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드라빔을 훔친 라헬은 그것을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 유목민들은 생리 중인 여자를 매우 부정하게 생각하여 접촉을 삼가 했습니다. 이런 당시의 관습을 라헬은 적절히 이용하여 그 아버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라반도 역시 가장 신성한 가정의 수호신이 설마 여자의 하체에 깔려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헬의 엉덩이 아래에 깔려 있었던 우상 이것만 보더라도 금은과 목석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이고 거짓된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라반은 자신의 수호신상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기세당당하던 라반의 기가 꺾이게 됩니다. 반면 순간 야곱은 기운이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도리어 야곱이 라반에게 당당히 따지게 되었습니다. 전세가 역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을 추격해온 외삼촌을 나무라면서 그동안 자신이 외삼촌을 위해 어떻게 수고했는지 그럼에도 외삼촌이 자기에게 어떻게 했는지 서운했던 것들을 쏟아놓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지금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셨고 이삭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신이 라반의 집에서 겪은 고난과 그동안 수고한 모든 일들을 살펴 주시고 자기에게 많은 복을 주셔서 양 떼와 소 떼와 염소 떼를 주셨고 자식들도 주셨고 지난밤에도 라반을 꾸짖으시어 해를 받지 않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야곱의 고백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상하신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곧 우리의 모든 사정과 환경을 다 아시고 은혜의 손길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1:10절을 보면“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그렇습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하나님이 되는데 내가 너를 도울 것인데, 내가 너를 붙잡아 줄 것인데 왜 너는 두려워하고 왜 놀라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종살이 하고 있을 때 바벨론 사람들을 보면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절절 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네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을지라도, 종살이 할지라도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너는 내 백성이다. 그러니 놀라거나 두려워 말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겠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입니까 아니면 아내입니까? 또한 알아주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우리의 속마음을 부모가 모르고 자식이 모릅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스러움이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민과 갈등을 누가 알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아픔과 억울함과 눈물을 이해하고 누가 닦아 주겠습니까?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심장과 폐부와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또한 굳세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사44:1-2)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 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지만 특히 성경을 보면 어려울 때, 고난의 시절, 앞이 캄캄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위급하고, 위태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많이 보여 알려줍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상황,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한 상황, 그런데 하나님은 그럴 때 부르짖는 백성들의 호소를 들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어떤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주저 앉아 있는 자를 찾아 주셔서 도와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영, 육간 건강하게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간증)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의 전반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 여러분은 야곱을 도우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지금도 여러분의 삶 속에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도우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시고 담대하십시오. 어깨를 펴십시오. 그리고 힘차게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4)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2019. 3. 31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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