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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화해와 평화 박승남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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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3:1-11절 개역개정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3:1~11 아름다운 화해와 평화

 

과거에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CCM 가수이자 대학교수인 하덕규 씨가 있습니다. 그는 한때 대중의 인기술과 대마초 등의 쾌락에 빠져 살면서도 참된 인생의 의미를 몰라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누나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예배에서 하나님은아무 문제 없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덕규 씨 인생의 참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덕규 씨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하나 썼습니다.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갔기 때문에 10여 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곡의 제목은 바로 [가시나무]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 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https://www.youtube.com/watch?v=s_vBf5Do-D8

그날 자기 안의 '수많은 나'가 존재하는 가시나무 숲을 보았다고 합니다.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나쉴 곳을 얻지 못해 지치고 곤고한 나깨진 영혼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누구도 다가올 수 없게 하는 나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어 돌아서게 만드는 나어둠과 슬픔우울함이 가득한 나. 그날 밤그 가시나무숲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노래하던 외로운 영혼을 만나주셨고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야곱도 그 안에 가시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시에 에서가 찔리고 레아도 오랫동안 찔렸었습니다. 물론 야곱도 다른 가시나무에 이리저리 찔려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못 느꼈을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과 늘 함께하셨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열심, 수단, 방법, 꾀로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라헬을 만나 사랑의 힘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기는 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약발로 시간이 지나가면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진정 그를 이해해주는 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롭고 지치고 피곤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형을 만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더욱 그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습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야곱을 찾아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에게 찾아와 씨름을 거시고 그 깊은 밤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진정한 승리자란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외로운 야곱을 만나주셨고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벅찬 감격을 안고 담대하게 브니엘을 지나고 얍복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는 피하지 않고 형과 대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젯밤 홀로 얍복 강변에 남아 있을 때 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강을 건넌 뒤 앞서 건넌 일행과 합류한 야곱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서 형 에서가 4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분명히 믿으면서도 그 군대를 보는 순간야곱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작전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내 말을 똑바로 듣고 내 말대로 빠르게 움직여라!"

야곱은 서둘러 대열을 정비했습니다. 두 아내 레아와 라헬두 소실 빌하와 실바에게 저마다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을 각각 나누어 맡겼습니다.

남녀 종들이 몰고 나간 가축 떼의 행렬은 멀찌감치 앞서 있었습니다. 그 가축 떼와 많이 떨어져서맨 앞에는 두 소실과 그녀들에게서 태어난 이렇게 가족들의 행렬 순서를 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라헬과 그 아들 요셉은 맨 뒤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곱 자신이 맨 앞으로 나가 앞장서서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뒤로 빠졌지만 말입니다.

형 에서와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자 야곱은 넙죽 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형을 대면할 때까지 일곱 번이나 얼굴이 땅에 닿도록 큰절을 올렸습니다. 같은 해같은 날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는 둘 다 100세 가까이 되는 노인이었습니다. 둘 다 큰 일가를 이룬 족장들이지만 야곱의 행동은 영락없이 주인을 대하는 종의 자세였고 왕을 대하는 신하의 자세였습니다. 그보다 정복자에게 항복하며 처분만 기다리는 패전국 신하의 모습이었습니다.

땅에 엎드린 야곱은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한번 분노하면 주체하지 못하는불같이 우락부락한 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그때의 분을 에서가 아직 삭이지 못하고 복수를 벼르고 있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하나쯤 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저 어린 것들은 무슨 죄가 있나?'

어젯밤 자신에게 나타나 복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지난날의 잘못을 용서받고 형과 화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고비마다 하나님은 항상 날 도와주셨어. 그래서 어젯밤에도 내게 나타나신 거야. 주여이번에도 절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일곱 번째 절을 한 다음 그대로 땅에 엎드려 있을 때였습니다.

"아우야! 내 아우 야곱아!"

형 에서가 자신에게로 힘껏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기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브엘세바 광야의 들판을 바람처럼 누비던 용맹한 사냥꾼 형이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아우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나다, 네 형 에서야. 어서 일어나라."

에서가 야곱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덥석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야곱이 의아스럽다 할 만큼 형답지 않은 목멘 소리였습니다. 형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니 야곱도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님에서 형님! 잘못했어요. 형을 속인 거 정말 잘못했어요"

"아니다. 아우야. 그런 말 하지 마라. 난 다 잊었다. 너도 이젠 더는 자책하지 마라. 아우야그동안 어디 봄 상한 데는 없느냐?"

"형님!" "아우야!"

헤어진 지 20년 만의 상봉이었습니다. 형제는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습니다.

무리가 보고 있었지만, 족장의 체면도 다 벗어던졌습니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어루만지며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오래도록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습니다.

야곱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에서의 분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마침내 벼르던 복수의 기회가 왔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야곱을 죽여 원한을 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훈련된 장정 400명에게 칼과 활로 무장하게 한 뒤 뿌드득 이를 갈며 야곱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에서의 심경이 차츰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는 사라지고 그리움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증오 대신 형제애가 샘솟았습니다. 어쩐 일일까요.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요? 에서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에서의 저 깊은 마음 안에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날 얍복 강변에 있었던 야곱에게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야곱은 결사적으로 복을 구했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어 그의 실체를 보게 하셨고 그리고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새 이름과 함께 새 마음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에게도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잠언 16:7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간절히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고 자신의 야곱 됨,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고백하였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고 동시에 에서의 마음을 녹이셔서 야곱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주위에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고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여러분을 측은히 여기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너 많이 힘들구나, 너 많이 괴롭구나. 나는 네게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참된 승리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너에게 새 힘과 용기를 주겠다. 소망을 기쁨을 주겠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겠다. 사랑의 능력을 주겠다. 그러니 나에게 맡겨라. 나를 의지해라. 네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나를 붙들어라.

 

반면 여러분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한 것은 없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아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이는 없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이미 일러준 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도 서로 사랑하여라. 나는 네가 먼저 형제와 네 이웃과 화목하기를 바란다. 나는 진수성찬이 가득히 차려진 집에서 다투며 사는 보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느니라.(17:1), 나는 네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었다. (고후5:18) 또한 나는 네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한다.(고후5:19) 먼저 손을 내밀어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여라. (16:19) 나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니라(6:35) 그러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6:36) 네가 나의 뜻에 관심을 두고 살려 하면 내가 힘을 주겠노라.

20101123일 북한군에 의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이 2명이 목숨을 잃었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북방한계선이나 휴전선 일대에서 간혹 총격전을 벌이거나 행상 충돌을 빚은 적이 있지만, 해상이 아닌 육지를 겨냥해 그것도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 포격을 가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사한 해병대 장병 가운데 1명은 입대한 지 4개월도 안 된 이등병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신병교육대 교육을 무사히 마친 뒤 해병대 홈페이지에 올린 수료식 사진에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광욱아무더운 여름 날씨에 훈련 무사히 마치느라 고생했다. 푸른 제복에 빨간 명찰 멋지게 폼나는구나. 앞으로 해병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면서 건강하게 군 복무 무사히 마치길 아빠는 기도할게. 장하다우리 아들! 수고했다. 우리 아들!" 이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에게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1명은 말년 휴가를 나가던 병장이었는데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려고 부두에 나가다가 복귀 명령을 받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G20 회의로 연기되었던 휴가를 출발하였다가 떨어진 포탄에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바로 전날 일기가 고르지 못해 휴가를 가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배야 꼭 떠라. 휴가 좀 나가자"라고 써놓았는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광주에 있는 부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 쌍한 내 새끼"

젊은 아들들이 이렇게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 땅을 덮었던 전쟁 이야기가 이제는 끝이 나고 평화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합니다. 폐쇄된 개성공단이 아직 재개되지 못하고 잘 나가는 것 같았던 한반도 상황이 꼬이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대 이 땅에 동족상잔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전쟁의 두려움과 불안을 안겨주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는 꿈에도 그리던 휴가길에 포탄에 맞아 우리 아들이 죽어 넘어지는 일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한반도 땅을 강대국의 전쟁터로 만들려는 시도와 우리의 삶을 전쟁터로 만들려는 우리 안의 폭력성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모두를 죽이고 망하게 만드는 전쟁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우리 가운데서 번져나가야 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

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일을 더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은 사람이 되는 것

좀더 친절하고 더 잘니누며 예의지키는 것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

탄앞에서도 온유한 미소잃지 않

폭력 앞에 비력으로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

전쟁반대하는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평화의 싸앗물로 심어 가는 것

 

러시아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한국인으로 박노자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젠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라는 큰 업적을 얻고 싶은 욕심도 있고 록히드마틴 같은 군수 업체들로부터 정치 자금 돈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사실 트럼프 본인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 상당수는 군수 업체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면 그 주식은 폭락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명예냐? 돈이냐? 그런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리고 미국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 위협이 아니면 직장 잃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됩니다. 한국학 졸업한 사람 절반 정도는 일부 대학에서 CIA나 유사 기관에 채용되는데 한국 쪽으로. 그런데 평화가 되면 그 사람들이 백수가 될 뿐 아니라 CIA 예산도 삭감이 되고 펜타곤 예산도 삭감이 되고. 대한민국에서 호의호식하고 편안하게 사는 주한미군 장교들이 어디론가 또 가야 하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꺼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가 결국 오마바 전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평화적인 명예와 업적이냐, 아니면 군수업자들을 통한 돈이냐. 어느 쪽이든 택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과연 무엇을 선택할지는 예측 불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는, 교회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야곱과 에서 두 형제를 사이좋게 서로 만날 수 있게 하셨잖아요.

133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헤르몬산에서 시온산 줄기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 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

그렇습니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그곳에 영생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 주며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끝이 없거늘 그토록 많은 곳에서 그토록 수많은 마음이 등을 지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민족을 보더라도 한 핏줄 한 형제인데 아직도 총부리를 마주 대고 살아야 하니 이처럼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 되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얼싸안고 서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만져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함께 할 때 하나 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두려워하는 심령에, 미워하고 등지고 마음에 칼을 가는 심령에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평화의 왕, 사랑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간에 막힌 미움과 증오와 시기와 분쟁의 담을 허시고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서로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신 것입니다. 평화를 이룩하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기쁨의 소식 복음이 널리 전해져야 합니다. 예수 그분은 우리의 평화시라고 외쳐야 합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곳에는 늘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에도 수없이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삶의 난제와의 전쟁도 있고나 자신과의 전쟁도 있고세상의 흐름과 문화가치관과의 전쟁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쟁터에 서 있었던 적이 많습니다.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우고 나아가 자신과 싸우고계속해서 몰려오는 의심과 싸우고불 신앙과 싸우고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앞길을 막는 요단과 싸워야 하고더위와 싸워야 했으며그들의 발목을 잡는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야 하고자신들의 혼을 빼앗아 버리는 가나안의 현란한 문화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쟁에서 이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던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나요? 그것은 모세의 홍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홍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이스라엘은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14:15-16).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하나님의 처방은 손을 높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14:21) 아마도 모세는 그 홍해 경험에서 철저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손을 들고 살면 하나님의 방법이 나타나고 우리는 세워지는구나!' 그래서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의 자리에서도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우게 하고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든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는 용서입니다. 화해요. 사랑입니다. 새사람이 된 야곱은 앞서나가 엎드려 고개 숙이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러한 야곱을 진심으로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룻밤을 자고 난 에서에게서는 지난날의 원한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오래전 헤어진 동생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어머니 뱃속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하나뿐인 아우는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동생이 고향 집을 떠나 먼 타국에서 나그네 세월을 보낸 것이 그렇게 애처롭고 애틋할 수가 없었습니다. 들판을 누비던 에서는 원래 호탕하고 인간미 넙치는 남자였습니다. 한 번 마음이 풀리니 더없이 좋은 형으로 돌아갔습니다.

반가움과 그리움의 울음이 잦아들 즈음에서가 고개를 들어 야곱의 뒤를 따르는 여인들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아우야함께 온 이 사람들은 누구냐?"

"형님.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 몸에 주신 아내들과 자식들입니다."

야곱은 맨 앞줄에 선 두 소실과 그녀의 자식들부터 소개했습니다. 그들이 나와 에서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다음으로 그 뒷줄에 선 레아와 그녀의 자식들을 소개하자 그들도 절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맨 뒷줄에 선 라헬과 요셉을 소개했습니다. 그들도 앞으로 나왔습니다. 라헬에게는 시숙이요 요셉에게는 큰아버지인 에서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어이쿠제수씨들 저는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올시다 "

"오냐오냐! 귀여운 내 조카들이로구나"

에서가 반갑게 야곱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맞았습니다. 당시 야곱의 자식들은 모두 15세 미만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입니다. 에서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하나하나 껴안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야곱은 옆에서 그런 광경을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에서가 갑자기 생각난 듯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아우야! 내가 이리로 오다 보니 여러 기축 떼가 줄줄이 너희보다 앞서 오더구나 웬 것들이냐?"

"형님. 그것들은 제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제 딴에는 정성 마련했는데 형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아우야 무슨 그런 것을. 그럴 필요까지 없습니다. 나도 형편이 넉넉하다. 네 살림을 축내고 싶지 않구나" 에서가 극구 사양했습니다.

"아닙니다형님. 변변치 않지만, 형님 마음에 드신다면 괘념치 마시고 제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제 잘못을 용서하고 이렇게 기쁘게 맞아 주시니형님 얼굴을 뵙는 것이 마치 하나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제가 형님께 드리려고 마련한 선물이니 부디 받아 주십시오. 하나님이 그동안 제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저는 모든 것을 넉넉히 가졌습니다."

"그래알았다. 정 그렇다면 고맙게 받도록 하마"

에서도 더는 사양치 않고 야곱의 호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은 나이 많은 현자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두움이 물러가고 동이 터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가 누릅나무인지, 향나무인지 알 수 있으면 동이 튼 것입니다. "다른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짐승을 한 마리 보고 그것이 이리인지 여유인지 구별할 수 있으면 동이 튼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현자가 말합니다 "아니다. 그런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현자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우리 형제, 자매인지 아니면 우리의 누구인지 알면 동이 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도둑같이, 사기꾼같이 보이면 그때가 몇 시이건, 해가 중천에 있어도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아직도 밤이니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형제가 이웃이 어떻게 보입니까? 도둑으로 보입니까? 사기꾼으로 보입니까? 야곱이 전에 형님을 보았을 때 그 얼굴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런데 이제는 형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보였습니다. 바뀐 것은 야곱의 마음입니다. 야곱이 바뀌니 형 에서의 얼굴도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심령도 새롭게 변화되기를 축복합니다. 20195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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