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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박승남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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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요즘 몇 주일과 오늘은 그래도 공기가 좋아 걱정이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일 매일 날씨 예보시간에 공기의 질을 점검하고 미세먼지 어플을 스마트폰에 깔아 확인하는 것이 생활화되었습니다. 미세먼지와의 싸움이 일상이 되어 버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이 우울한 현실은 우리가 달려왔던 성장과 발전, 기술의 편리함을 추구한 결과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 우리는 곧 꺼져버릴 거품 속에서 성장과 풍요를 누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에 뒤덮인 뿌연 하늘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서서히 죽어가는 도시 속에서 좋은 자동차와 고층빌딩, 깨끗하고 좋은 집과 빠른 교통수단, 스마트폰의 기술력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부유한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만 사실은 공기 전체가 더럽혀졌고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불안함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대에 비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고 있지만, 결코 좋은 삶을 누린다고 느끼지는 못합니다. 질병은 더욱 증가했으며 노후의 삶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이웃들과 사람다운 관계를 맺기도 어려운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돈 때문에 형제가 다투고 예수님을 찾아와 탄원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형이 인색해서 부모의 유산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같습니다. 불만을 품아우가 예수님에게 와서 형이 자신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도록 형을 설득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3) 라고 경고하면서 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12:13 -21) 소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 불리는 이야기입니다.

부자가 있었습니다. 많은 밭을 경작하는 농부인데 그해 풍작이 들어 소출을 예년보다 훨씬 많이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사실 돈이 없어도 걱정이지만돈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자는 거두어들인 곡식을 저장해 둘 곳이 없어서 걱정하다가할 수 없이 있던 창고를 부수고 더 큰 창고를 짓기로 했습니다. 창고를 지을 때 혹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면 이 부자가 잠을 편히 잤겠습니까? 아마도 비를 향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욕도 했을 것입니다. “이놈의 비가 사람의 속도 모르고 아무 때나 온다냐?" 창고를 다 지은 다음에는 부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 자기를 위로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야기의 끝에 가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여러분, 이 사람은 잠들기 전에 그는 누구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났을 것입니다. 자기 농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 일꾼들의 불쌍한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잊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그 부자는 행복한 잠에 빠졌습니다. 내일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식구들이 그를 깨우려고 보니 그는 더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식구들이또 이웃들이 뭐라고 하면서 이 부자를 애도했을까요?

여러분, 이 비유는 앞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 탐욕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탐욕은 그야말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그 좋은 환경을 지녔던 에덴동산에서 탐욕을 부렸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했습니다. 옛 뱀 곧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좋았던 주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되었고 그렇게 사랑했던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게 되었고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면 이 어리석은 부자는 바로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고갈시켜 가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거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옳지! 더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공동번역) 산업사회를 지나온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곧 선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경제학적으로 번역하면 성장하는 것이 선이라는 뜻이 되지요. 이렇게 더 많이 생산하거나 더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자원을 소비하고 낭비합니다. 특히 기업,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고용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경제가 성장하여도 실업자들은 늘어납니다. 이는 기존의 경제 논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정신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리,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비유로 돌아와 말하자면 부자들의 생각대로 세계가 돌아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의 표현대로 오늘 밤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이 떠나가기 전, 오늘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내일을 모릅니다. 단지 현실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움켜쥐고 후손들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 있는 것을 더 많이 사용하고, 결국 영혼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자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질은 그렇게 많이 없어 당장 누릴 것은 없다해도 그 의식은 이 어리석은 부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리석은 부자들은 공기 전체가 더럽혀져도 이에는 무관심한 채 더 큰 것에만 집착합니다. 자신들이 먹을 물이 땅속에서 말라가는데 하루에도 수천 톤씩 병에 담아 물을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현재의 성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 하나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점점 더 어리석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은 그저 거대한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며 지구를 망치고 있습니다. 집단적인 욕심이 무섭지요. 한 개인의 욕심, 욕심이 모아져 집단적인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 욕심은 굴러가는 눈덩이가 커지는 것처럼 확장됩니다. 그래서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욕심은 한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욕심으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정한 인간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1:15)고 분명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정치 경제학적 체제는 이러한 무한정한 욕심을 내버려 두거나 나아가 조장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TV.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서~ 그래서 어린아이들조차 이러한 대중 선전매체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교육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교회교육 어디에서도 이것을 위한 교육체계와 양성 과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 세계는 마치 자기 파멸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가장 우수하고 인간다우며 성공한 존재인 것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 삶과 환경과 생태계는 망쳐지고 파멸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 이연길목사님의 내러티브 컨퍼런스에 참석하느라 강원도 켄싱턴 리조트 설악비치에 다녀왔습니다. 주변 풍광이 얼마나 멋있는지 속소 커튼을 열면 바로 바다가, 새벽에는 일출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가다 보니까 무엇이 보였을까요? 불탄 산림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요. 지난 번 고성-속초에 엄청나게 산불이 난 것 말입니다. 43일 저녁부터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44일엔 초속 30m에 이르는 태풍급의 강풍이 불었는데 이 바람이 산불의 초진화가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방대한 지역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 산불로 인해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인근에 거주한 4000여명이 대피를 하였으며, 1757ha에 달하는 산림과 주택과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불은 아주 작은 불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루고 가꾸고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데 망쳐버리는 것은 너무도 쉽구나. 그야 말로 한 순간에 말입니다. 여러분 그 산불로 나무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던 크고 작은 동식물들, 생물들 어떠했겠습니까?

 

지구온난화는 심해지고 대기는 오염되고 있습니다. 최근 라디오를 통해서 미세먼지가 얼마나 나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미세먼지에 노출이 되면 1) 유해물질이 눈에 들어갈 때 안구 표면에 각막 손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가끔 미세먼지가 심한 날 눈이 간지럽고 답답한 느낌을 경험하신 적 있으실 텐데 그때 눈을 자주 비비는 행위로 각막과 결막에 생긴 상처로 균이 들어가 알레르기성 결막염, 자극성 각막염을 유발하고 안구건조증, 시력 저하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 그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에 노출이 되면 자연스럽게 호흡기관을 통해 미세먼지를 흡수하게 됩니다. 이때 기관지에 미세먼지가 쌓이면 가래가 생기며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지는데 이때 세균이 침투하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감기가 아닌데 기침 감기 같은 증상부터 심하면 기관지 점막이 부어오르고 근육경련이 일어나 기도가 좁아지면서 호흡 곤란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호흡이 불편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는 후두염, 기관지염, 부비동염, 천식, 폐렴, 만성폐쇄성 폐 질환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또한, 미세먼지는 혈관을 타고 체내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혈관 질병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초미세먼지가 그래서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폐포(허파꽈리)를 통해 심혈관에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키고 심근경색을 일으켜 심장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은 이와 관련된 질병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혈관을 타고 뇌에 침투하여 뇌졸중을 일으키고 혈관에도 손상을 입혀 협심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4)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세먼지는 피부에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미세먼지가 피부의 신진대사를 악화시키고 피지조절 기능을 떨어뜨려 피부 표면의 지방질 균형을 깨드립니다. 그래서 피부의 가려움증과 건조함을 유발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미세먼지는 쉽게 제거되지 않아 세안 후에도 모공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됩니다. 미세먼지 속 중금속,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피부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여 알레르기성 피부염과 아토피 피부염 증상을 악화시킵니다.

5) 그리고 많은 남성의 문제인 탈모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두피에 쌓이면 모공이 막히고 모공에 염증 반응을 일으켜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낭세포의 활동이 저하됩니다. 이로 인하여 평소보다 머리카락이 더 쉽게 빠지고 모발도 가늘어져 탈모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제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생원인을 보면 불법 소각,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매연 등이 1차 원인이고 이후 대기 오염물질들이 각종 산화물과 화학반응을 하여 만들어지는 2차 미세먼지도 있습니다. 또한 국내 51%, 중국 34% 그 외 15%가 미세먼지 발생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한 생활 실천방안은 미세먼지 나쁨일 때 야외활동 최소화, 외출 시 마스크 착용, 귀가 시 옷, 신발을 털어 미세먼지 유입을 차단, 손 씻기, 세수, 샤워, 양치질 자주 하기, 물은 하루 8잔 정도 자주 마시기, 될 수 있는 대로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과 걷기 일상화, 실내 조리 시 유의, 야외 소각 금지 등이 있으며 실내에서도 미세먼지 농도를 관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본의 집요한 확장 욕구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힘은 점점 무력화되어 갑니다. 오늘날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기 위한 선한 싸움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규칙과도 같습니다.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의 문제,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규제요구는 번번이 대자본의 법정투쟁(?)에 굴복하고 맙니다. 쓰레기 소각장의 불법 사례에 대해 시민들의 규제요구를 받아들여 행정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회사는 재판을 걸어 승소하고 맙니다. 무분별한 골프장 건설에 대항해서 시민들이 오랫동안 투쟁을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고집을 부리면 난개발로 허물어지는 산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같이 미세먼지 예보로 불안해하는 시민들에게 그저 마스크를 쓰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정부는 이미 국민의 편이기보다는 자본과 그 앞잡이인 정치인들에게 포위당한 채 무한개발과 무한성장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2장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걱정에서 비롯됩니다. 현재 인류가 치닫고 있는 생태위기의 원인은 바로 반 생태적 문화에 예속되어 내리는 어리석은 선택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 선한 선택을 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이뤄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욕심으로 사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말씀처럼 다섯 시에 같이 늦게 와서 1시간밖에 수고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한 데나리온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불편해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라고 볼멘소리를 하거나 기분 나쁜 생각이 든다면 아직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는 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기 는 공정, 공의입니다. 하나님 및 사람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잠언 168절을 보면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삼하 22:21-25). 하나님은 다윗의 의에 대하여 상 주시는데, 여기서 의는 깨끗한 손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을 때 얼마나 손이 더러워집니까? 나눌줄 모르고 움켜쥐기만 할 때나 뇌물 받을 때 그 손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손으로 폭력을 행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손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합니까? 아니면 추하고 지저분하고 더럽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물론 쓰레기를 줍고 풀을 뽑고 환경을 돌보면서 비록 손을 더럽고 지저분해진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 손은 깨끗한 손인 줄 믿습니다. 나눠주고 베풀어 주고 보듬어 주고 격려해주고 감싸주고 모두 아름답고 깨끗한 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이처럼 우리의 의로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우리의 삶이 더욱 의로워지기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의와 심판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를 구하는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우리가 창조된 지구의 모습을 그 질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구를 앞세우는 것이 결국에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자연과 지구에 대한 공격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맑은 물, 깨끗한 환경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문경새재에 가보면 얼마나 좋습니까?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지요. 그러나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한 것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이러한 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그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고 또한 사람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던 아름다운 낙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생태적 위기에 도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성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확장해 감으로써 위기를 가속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태적 조건을 파괴하고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분단과 생태적 파괴를 그대로 물려주는 기성세대 종교로 전락한 한국의 기독교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름하여 생태적 회심입니다. 생태적 회심, 생태적 회개는 단지 개인적인 잘못을 회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나야 하는 회개입니다. 즉 우리가 환경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플라스틱, 비닐, 종이컵 등 일회용품을 마구 사용하는 것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 일회용 컵을 쓰지 않기 위해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운동을 합니다. 장바구니 들고 시장이나 마트에 가기 운동을 합니다. 귀한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성도가 할 일입니다.

 

한반도의 생태적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서울을 비롯한 지방의 도시들은 대기와 농토와 수질을 오염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금융 자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산과 들이 투기의 대상으로 바뀌어 난개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술화의 과정에서 모든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석유와 핵을 에너지원으로 씀으로써 대기오염을 가중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자본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만 힘을 쓸 뿐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미 대부분 시민이 반생명적 문화에 포섭되어 자본의 욕구와 자신의 욕구를 동일시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반생명적이고 반 생태적인 기술과 자본의 포로가 된 시민의식을 깨우치는 것은 매우 힘든 실정입니다. 그동안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통해 이룩한 것은 많지만 생태적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린 반쪽짜리 민주화 사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기독교는 창조질서의 영성에 바탕을 둔 생태적 영성을 회복해야 하며, 교회의 환경운동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생태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시민운동과 함께 하는 생태 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기독교 환경운동연대에서는 강조합니다. 요즘 골프장 건설로 인한 난개발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선 성직자들과 교우들이 있고, 생태환경의 보전에 앞장서왔던 성도들도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 함께 드리는 이 귀한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 어리석은 욕심을 버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서 헌신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34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기도하겠습니다. 201962일 환경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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