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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 은혜 박승남 20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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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5:1-15절 개역개정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5:1-15 벧엘의 은혜

 

지나 시간에 야곱에게 닥쳐온 엄청난 불행을 살펴보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 디나가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매우 분노한 아들들이 엄청나게 큰 사고를 친 것입니다. 세겜과 그의 아비 하몰뿐만 아니라 세겜 성에 사는 남정네들을 다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이로 인하여 야곱은 목숨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곧 주변 족속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 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제 그들이 연합하여 야곱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그만 엄청난 화풀이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줄곧 야곱에 관심을 가지시면서 지켜보신 하나님은 야곱이 이러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아니 세겜이라는 문제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아니 우리들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갈 때 이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떠하실까요?

여러분 가만히 보면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고 해결을 못합니다. 야곱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일은 크게 저질러놓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할 때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있습니다. 양들이 문제만 일으키고 해결 못하는 것을 목자가 해결하는 것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고난을 당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런 고난 중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만 소망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셨을 때, 우리의 죄가 사해지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엄청난 문제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거기서 그 옛날 네가 약속한 대로 내게 단을 쌓으라.

여러분 야곱에게 벧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벧엘은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롭게 있던, 그의 생애 가운데 가 장 비참한 그 순간에 찾아 오셔서 그를 위로하고 일생을 동행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와 같이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 없고 절망만 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계셔서 나의 손을 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역경이 있으면, 또한 거기에는 우리를 끌어 올려 당기시고, 또는 밀어 올리시는 그 어떤 힘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 힘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바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길이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고 감격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서원을 지켜야 할 때가 도래했건만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을 잊어버렸었습니다. 세겜이라는 곳이 너무 좋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실패를 당했습니다.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진정 그 혼자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아내와 자식들과 종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감옥에서 풀려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두렵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할 때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23:11) 이 말씀을 보면 풀려날 것이라든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든지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담대하라, 그리고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한다는 말씀 한 마디로 엄청난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직접 음성으로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오늘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들려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설교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통해서나 삶의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쨌든 내 속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을지라도 담대하게 되어지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의 기독교 강요 -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나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영혼에 빛을 비추시자, 야곱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과 하나님 앞에서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욱 더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세상에 팔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야곱 자신을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드러나게 했다는 것은 말씀이 나의 문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나를 다시금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정 속에 있는 악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위력입니다. 야곱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의 영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정이 모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부터의 신앙고백적인 결별을 합니다. 주술적인 방어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귀 고리나 작은 신상들, 부적과 같은 순전히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던 자 기들의 생활습관들을 고쳤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부흥이요, 신앙의 갱신이요, 신앙의(종교)개혁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외쳤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비로소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거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몸과 마음의 성결을 외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이루실 때마다 원하셨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결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성결하게 하라(19:1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3:5) 그리고 여리고를 점령하기 전에도 적진 앞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완전히 자기 포기요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들의 생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만야 이 때 적군이 쳐들어오면 그야말로 다 죽을 수밖에 없지만 죽고 사는 것을 주님 앞에 맡기고 명령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면에서 성결하게 하라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앞에서 죄를 멀리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 위해 자신을 정리하고 재 헌신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 내가 해결하기를 원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말을 들은 가족들은 어느 하나 반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수히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아내 라헬도 그리했고 자식들도 그리했습니다. 이것을 주었다는 것은 이제 그 신들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가정에 영적인 부흥이, 갱신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동안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의지하고 살았던 죄를 회개하며 이제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요, 새롭게 자신들을 드리겠다는 헌신을 한 것입니다.

17세기 성령의 사람이었던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는 그의 책, "하나님의 임재 하심의 실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란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훌륭한 면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주님, 당신께서 나에게 이 일을 가능케 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그것을 다시 바쳤습니다. 그리고 나면 그럴 때마다 나는 훨씬 더 많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할 때마다 나의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버려두신다면 이렇게 밖에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넘어지는 것을 막아주시고, 제게 부족한 것을 고치시는 분은 당신이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개입하셔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어려운 일에도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야곱과 그의 가정에 영적 갱신이 이루어지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그 토록 염려하던 것을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실패를 경험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이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갱신, 영적 부흥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방법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드디어 야곱과 그 일행이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지난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셨던 은혜로운 말씀이 생생하게 생각났을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자신은 너무도 허물지고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입었으면서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찾았고 때로는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벧엘까지 오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으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도착한 가나안 땅 세겜에서 첫 제단을 쌓았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할 때입니다. 그다시 말하면 그 땅의 당시 소유주는 가나안 사람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은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남의 땅 가지고 인심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남의 것을 빼앗아주시는 분이신가요? 아닙니다. 비록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가나안 사람이지만 원 소유자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어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거기서도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다가 애굽에 내려가서 낭패를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정신을 차려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와 벧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하시고는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낭패를 당했으나 야곱은 세겜에서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벧엘로 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벧엘에서의 은혜의 체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어떠한 장소, 어떠한 사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하든 그것은 바로 처음 사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사랑이 식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기 너의 처음 사랑이란 너의 그 처음 사랑' 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단순히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형제 사랑을 잃어버렀다는 말이 아닙니다. 윤리적인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주께서 그 입으로 토하여 버리(3:16) 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면 너의 그 처음 아가페는 누구를 향한 첫 사랑이란 말인가요?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생명처럼 지켜야 할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동시에 형제 사랑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버렸다는 말은 어느 순간 주님을 향한 사랑을 버렀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이혼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이혼 위기에 처한 교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을 몰라도 주님과는 결코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버린 것은 에베소교회가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던 모든일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교회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여기 떨어지다라는 말은 '높은 곳 또는 수직의 위치에서 떨어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파트 1020층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떨어지다라는 단어에는 잃다, 멸망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겠지요. 에베소 교회는 떨어져 영적으로 죽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개하라더 늦기 전에 잘못된 행위를 버리고 즉시 돌아오라고 다급하게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심정으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과 그 가족이 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교회 나아가 한국교회와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성도들이 영적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헛된 우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주님 주시는 영적인 거룩함의 새 옷으로 갈아입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고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주님의 용서와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영적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을 그리고 한국교회와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일본의 위협과 주변 강대국들의 도발과 북한의 으름장속에서도 이 나라를 보호하시고 열린 미래를 주실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이상하게도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를 떠난 뒤에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죽음은 전혀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이 언급됩니다. 이 이야기가 왜 기록되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유모를 장사한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 뜻은 '통곡의 상수리 나무'입니다. 드보라를 장사한 상수리 나무 아래서 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유모도 아니고 어머니의 유모라면 장수하시고 돌아가신 것인데 왜 그리 통곡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당연히 어머니를 생각해서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마 어머니 리브가는 그가 하란으로 간 뒤에 그 언제인지 모르지만 별세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주시던 어머니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장사도 치려드리지 못하였으니 그 슬픔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른들을 항상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천국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이 땅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만날 수 있을 때 효도하고 공경하고 사랑하고 잘 섬겨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어서 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 벧엘에 와서 제단을 쌓고 난 뒤에 비로소 밧단 아람 즉 하란에서 돌아온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어떠한 복인가요?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 말씀은 이미 창세가 3228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이 말씀을 해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그동안 야곱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영혼이 소생된 야곱에게 다시금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신 것은 이제 다시 시작하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3:13~14)고 하신 것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누구입니까? 야곱입니까 이스라엘입니까? 세속적으로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처럼, 처음 사랑을 버리고 여러분의 욕심과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를 새로 지으심을 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6:16)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고 겸손히 새 이스라엘로 왕 같은 제사장들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렇게 약속해 주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실행하시는(23:19)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 속에 빠져 어둡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늘 희망차게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영적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자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가서 다시금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으로 신앙의 개혁과 영적 부흥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약속의 사람으로 살아갈 새로운 삶과 약속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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