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 홈 >
  • 말씀 >
  • 주일 낮 설교
주일 낮 설교
요셉 이야기 1 박승남 2019-09-0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483

http://areumdaun.net/bbs/bbsView/34/5628535

[성경본문] 창세기37:1-11절 개역개정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7:1~11 요셉 이야기

 

오늘 말씀은 나이 계산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47:9절을 보면 야곱이 바로 왕앞에서 내 나그네의 세월이 130년 이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때 요셉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요?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그리고 30세에 애굽의총리(41:46)가 됩니다. 이어 7년간 풍년이 있었고 7년 흉년이 접어 들었는데 창45:11절을 보면 흉년이 다섯해가 남았다고 밝힙니다. 그렇다 결국 요셉의 나이는 39세가 됩니다.

그리고 야곱의 130세에서 당시 요셉의 나이 39를 빼면 야곱이 91세가 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91세 때에 요셉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하란에 온지 14년 되는 때입니다.(29:20,30; 30:25, 31:41) 그렇다면 야곱은 91-14=77세에 하란에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77세에 하란에 가서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 결혼 한 뒤에 또 다시 7년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7년이 끝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요셉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외삼촌 양을 위하여 6년을 더 섬김니다.(31:41) 결국 20년을 세월을 외삼촌 라반을 위해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때는 요셉은 6살이나 7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요셉이 17세의 소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10년 동안 숙곳과 세겜 그리고 할어버지 이삭이 살던 헤브론에 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요셉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이어 요셉의 신앙을 보면 우선 아브라함은 믿는자 즉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은 이런 저런 체험은 있었지만 어쩌면 겨우 명맥을 유지한 사람 들이라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130살 때 애굽에서 바로를 만났을 때 내가 130세인데 험한 세월을 보냈나이다(47:9)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험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셉은 아브라함의 그 신앙의 꿈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이기는 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기는 자의 완전한 표상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중요한 것이입니다.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 꼭 붙는 것이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보십시오.

에베소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보면(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서머나교회(2:11)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버가모교회(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리라

두아디라교회(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

사데교회(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라

빌라델비아교회(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3:21)에 주시는 말씀을 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모두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짐승으로 비유되는 악한 로마권세와 이세벨로 비유되는 로마의 여신, 음란과 거짓과 우상의 세력에 지지 말고 무너지지 말고, 너희들이 속에 잘못된 것을 지녀서 자폭당하지 말고 제발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당시 칭찬만 받은 두 교회를 빼놓고는 모두 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차리고 제발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장보다 더 원하는 것은 이기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긴다는 것은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해 나가는 것이며, 주님의 증인으로 살면서 고난과 박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 땅에 성령안에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 세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장은 했을지라도 주님 보시기에 이기는 교회는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며 동시에 요셉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창세기가 50장인데 요셉 이야기가 몇 장을 차지하니까? 37장과 39장에서 50장입니다. 무려 13장입니다. 출생까지 하면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13장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출생장면이 나오는 창세기 25장 그리고 27장부터 35장까지로 보면 10장이고요. 하여튼 성경은 부피가 많으면 그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에요.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2절을 보면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하면 고자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고자질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를 배우기에 고자질을 안좋게 봅니다. 남자로서 의리없고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은 입이 싼 아이고 나아가 형들 앞에 교만했고 세상사는 지혜가 모자란 철부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달리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고자질을 했어도 어쨌든 형들이 범하는 잘못에는 동참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것도 왕따가 되어 더 미움을 살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형들이 저지른 잘못은 아버지가 알아야 할 큰 잘못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요셉의 고자질을 정의감에서 나온 정직한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자질이 우리나라에서는 나뿐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독일 같은 나라는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잘못하면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 고발하여 악을 뿌리 뽑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고자실 했다는 것은 형들을 비난하려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악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비록 고자질 같고, 내가 괴롭고,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 할지라도 요셉은 정직했기에 거짓말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곧 요셉의 캐릭터는 고자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 자신이 죄를 싫어하는 사람,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 법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 이것이 그의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셉이 그 형들을 미워해서 은근히 형들이 혼나는 것을 즐기기 위해 고자질 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야곱이 형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라고 했을 때 그는 순종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을 싫어했거나 미워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순종했고 형들이 그 자리에 없어서 수소문까지 해가면서 찾아간 것을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나쁜 감정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왜 일러바쳤을까요? 그의 정직성 때문입니다. 우리의 위기는 정직을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하면 죽습니다. 우리는 정직하면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보고도 보지 않은 척하고, 사건도 해석을 반대로 해서 현실을 지혜롭게 산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세상의 악과 잘못을 고발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보면 아버지 야곱의 편애가 나옵니다.

3절을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채색옷이란 길고 소매달린 옷, 넓은 옷, 또는 여러 색깔들이 있는 옷을 말합니다. 이게 다 종합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옷은 소위 말하자면 장남에게 입히는 옷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요셉을 장남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왜요?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가 라헬이니까 요셉이 라헬의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형들이 가만 두겠습니까? 야곱의 편애의 뿌리는 이삭과 리브가로부터 비롯됩니다. 특히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바로 왕앞에서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야곱의 삶의 근원에 리브가가 있습니다. 리브가의 편애가 야곱을 수많은 상처의 삶을 살게 만들었습니다. 리브가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귀하게 여긴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이루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고, 야곱을 하란으로 떠나게 했으며, 하란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게 했다. 그리고 자청한 대로 리브가는 결국 야곱과 헤어진 후로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을 하란으로 보낸 이후 리브가의 삶은 성경에서 사라지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편애를 받은 야곱은 요셉을 편애하여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자녀들에게 갈등을 주고 가정의 불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4절을 보면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형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가정의 불화였습니다.

여러분 부모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녀들 중에 누구를 더 특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통해서 부모님들이 배워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애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나워 주어야 합니다. 신명기 21:15~17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편애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습니다. 에서처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녀에게 편애가 물론 좋지 않지만,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편애 받는 자녀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만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거절감과 열등감, 분노라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반면에 지나치게 편애를 받고 자라면 이 세상이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 같이 착각하게 되고 자기가 이 우주의 중심인 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경우도 편애의 부정적인 것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씻고 성숙한 인격으로 연단되기 위해 고난의 시간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배다른 형제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편애는 몹시 불편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요셉의 입장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특별한 대우를 해 주는 아버지에 대한 요셉의 감정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무슨 실수를 해도 다 용서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자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신을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믿음을 갖고 자라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비극은 거절감 때문입니다. 부모가 나를 거절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이용했을 뿐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느낄 때 인격에 위기가 옵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 ????자기 자식을 죽일 만큼 나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진짜다????라는 믿음이 생기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요셉은 편견없이 대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갔을 때 그를 사들인 경호대장 보디발의 사랑 받는 종이었다. 나중에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거기서도 감옥 장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애굽의 바로왕에게 사랑을 받아 바로의 모든 사무를 처리하는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사랑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나오자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나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하늘에서 제자들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예수님은 위에 계신 분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에 제자가 되었고 그리고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았고 주인으로부터 사랑 받았고 간수장에게 사랑 받았고 그리고 바로왕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사랑 받으니까 채색 옷을 입었고 사랑 받으니까 가정총무가 되었고 간수장에게 사랑 받으니까 감옥 일을 전담했고 바로왕에게 사랑 받으니까 애굽의 나라를 치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았기에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특히 우리 청년 학생 여러분 위로부터 사랑 받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고 어른 들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그것이 요셉의 길입니다. 로마서 1418절을 보면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자질, 편애만이 아닙니다. 5절 이하를 보면 그 유명한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2번 꿈을 꾸었고 첫 번째 꿈을 꾸고는 형들에게 이야기 하였고 두 번째 꾼 꿈은 아버지에게도 말했습니다.

, 그러면 그 꿈이 어디서 났을까요? 물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요셉의 신앙은 아버지에게서 또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만 받은게 아니라 이삭인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창세기 3528~29절을 보면 이삭은 180세에 별세하여 장사됩니다. 그런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것은 60세 때(25:26)입니다. 그리고 야곱에 헤브론에 돌아왔을 때 나이가 약 100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이삭의 나이는 160세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이 때 요셉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요셉이 6살이나 7살쯤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나이가 17살쯤 되니까 요셉이 10년 정도는 숙곳에 살았고 세겜에도 살았고 할아버지 이삭을 찾아가서 살았고 하니 적어도 7년 동안은 할아버지 이삭과 함께 산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어른 들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또 들려줍니다.

그러면 할어버지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이삭의 가장 극적인 이야기인 창세기 22장 모리아 산에서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 땅에서 농사하여 100배나 얻은 이야기,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했지만 마침내 르호봇의 은혜를 주신 이야기 등등 아마 노인들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수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요셉은 형들보다 훨씬 덜 밖에 나가 일했기에 더 많이 들을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야곱으로부터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결국 한창 성장기에 있었던 요셉에게 그의 아버지 야곱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이삭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신앙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사람은 이삭과 야곱이었다는 것이지요. 요셉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으로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정에서 주로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줍니까? 세상적인 이야기, 부정적인 이야기, 아이들에게 별로 유익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줍니까? 아니면 영적인 이야기, 은혜와 소망이 되는 이야기, 성경 이야기, 고난 가운데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 이야기,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온갖 선한일을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 이야기, 복음을 많이 들려주십니까?

 

여러분 요셉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은혜로운 이야기, 놀라우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놀라운 꿈을 꾼 것입니다. 아직 어렸던 요셉으로서는 형들의 곡식단이 둘러서서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 이 몹시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고 말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요셉은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계시적인 꿈은 함부로 말을 하면 안됩니다. 나는 분명히 계시적이라 하지만 듣는 사람은 이것이 계시인지 아닌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비한 것을 받았으면 그걸 함부로 이야기 하면 안되요.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거에요. 그걸 발설함으로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꾼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계시적인 의미가 있는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 형들이 알겠습니까? 요셉 자신도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 꿈이 담고 있는 엉청난 하나님의 계시를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그러면 물론 요셉은 이 꿈을 가슴에 담았지요. 그리고 점차 이 꿈의 의미를 알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꿈을 부여잡고 그 모진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0517~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124절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주신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비전으로 삼고 황량한 가나안 땅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용기를 얻고 새 출발을 하게 되고 자식을 낳게 되고 헌신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 기쁨으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슴에 품고 계십니까?

전도서 102절을 보면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2: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지혜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옳은 일쪽으로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 기울고 있는가? 의의 길인가 불의한 길인가? 생명의 길인가 파멸과 죽음의 길인가? 평화의 길인가 분쟁과 다툼의 길인가? 사랑의 길인가 미움과 증오의 길인가? 소망의 길인가 낙심과 좌절의 길인가?

 

여러분 요셉의 일대기를 읽어 보면 그는 평생 하나님이 주신 꿈을 먹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러야 될 대가는 아무리 비싸고 힘들어도 그는 최선을 다해서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반기 생은 그 꿈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아들과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나이 든 사람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환상을 보든, 예언을 하든, 꿈을 꾸든, 이 세가지 표현은 한 가지 의미를 삼중으로 표현하며 강조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무언가 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꿈이 있다는 겁니다.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꿈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무슨 꿈입니까?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병들고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고 갇힌 자가 놓임을 받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고 세상에서 상처입고 고통 당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넘치고 생명이 약동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고 완성되어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요, 이 꿈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꿈입니다. 이 꿈은 너무나 황홀한 꿈이기에 이 꿈 때문에 한 생을 완전히 주님 앞에 나실인처럼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숨을 쉽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기뻐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세상에서 기가 죽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세상적인 야망이나 세상적인 꿈을 접어두고 오로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일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20199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요셉 이야기 2 박승남 2019.09.16 0 2067
다음글 죽음(슬픔)과 소망 박승남 2019.08.27 0 1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