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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감옥생활 박승남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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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15, 22 요셉의 감옥생활

   

 

어제 이문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 방문했습니다. 197129일 졸업한지 무려 48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같은 반 친구들의 교류의 장인 단체톡이 있어서 15명 정도가 소식을 주고 받고 있어서 다른 친구들도 다 오고 싶었지만 사정상 못오고 4명만이 찾아왔습니다. 톡으로 교류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 얼굴을 보니 매우 반가운 만남이 되었습니다. 방문한 친구 중에는 장로도 있고 집사들도 있었고 범인을 잡느라 뛰어다녔던 형사출신 친구도 있었는데 좀 늦은 시간에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때가 되어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결코 원하지 않은 감옥에 갇히게 된 요셉도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물론 이 만남은 반가운 만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불편한 만남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어색하고 두려운 만남이기도 합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결과가 무엇입니까? 팔림이요. 외면이요 종으로 전락이 된 것입니다. 파렴치범으로 누명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수모와 수치를 겪고 말도 안되는 오해까지 받고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요, 너무도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감옥으로 몰아 놓은 이들에게 대해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은 물론 보디발의 아내나 보디발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통 사람들 같으면 그 상처, 그 원망 때문에 자기를 파괴하고 그 미움 때문에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을 텐데 요셉은 그 상처를 극복하고 그 원망을 넘어 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서 받은 훈련은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셨을 때 어떻게 하셨나요? 예수님도 요셉처럼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우리 예수님은 더 나아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저주하고 조롱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억울하거나 너무도 힘든 고난, 고통을 당하게 되면  얼마든지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잘 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라며 항변, 항의, 원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왜 내가 아플까,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닥치는 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은혜를 깨닫게 되고 해석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언제나 멸망이 아니라 영생이며 우리의 유익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고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복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 요셉은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가로막고 자신을 실패하게 하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싸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환경을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이라는 환경을 통하여 자신을 극복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요셉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 던져졌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의 의미요법((logotheraphy)

우리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문이 닫힐 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통하여 요셉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던 것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바로의 신하들을 섬기며 정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었으며 애굽 관리들의 관습과 관료들의 언어를 배우므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무료하게, 한숨 속에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 있게 보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발전하는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 왕 앞에 설 기회를 만들어 주셨을 때 은사를 활용하여 축복의 통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갔지만 고난에도 불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요셉은 노예의 신분에서 총리의 신분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고난의 힘든 시기를 맞이하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높이 세워주시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를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진정 높여 졌을 때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왜 자신을 높여 주셨는가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욱 섬기게 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서 중직을 맡게 되었을 때, 세상에서 높임을 받게 되었을 때 이것을 기억하십니다. 보십시오. 요셉으로 하여금 아버지 집에서 즐겨 입던 채색 옷을 벗기시고 노예 옷을 입히셨고 감옥까지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말구유로, 십자가로 내려가신 것처럼 더 낮아질 수 없는 자리에까지 내려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요셉에게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으니 그들은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왕이나 대통령의 측근은 굉장한 총애를 받는 사람이고, 굉장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술과 떡을 맡은 관원장이라면 왕의 생명과 직결된 직책이기 때문에 왕의 절대 신임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서 살다가 감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들은 모두 바로 왕의 음식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무슨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산 것일까요? 짐작컨데, 궁중 음식에 독이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건의 경위는 모르지만, 두 관원이 모두 요셉이 갇혀 있던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뒤의 일을 보면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억울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억울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같이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 요셉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아전인수격 해석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것이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그와 함께 잘못한 자는 벌을 받고, 억울한 자는 누명을 벗게 된다는 진리도 보여 줍니다.

 

여러분 요셉은 예수님처럼 밑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계속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비록 요셉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요셉이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4절처럼 친위대장에게 다시금 신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시위대장은 요셉을 다시금 인정하고 감옥에 갇힌 왕의 최측근인 두 관원장을 모시도록 배려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셉이 성실하게 일을 했고 그만큼 요셉이 남다르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명을 부여 받은 요셉은 두 관원장을 섬기는 자기 직무에 충실합니다. 그런데 그 섬김의 모습을 보십시오. 어느 날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갔는데 요셉은 그들에게 근심스런 빛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저들에게 물었습니다. 7절입니다.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여러분 이것은 매우 짧은 내용이지만 이것은 그의 마음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습관적으로 자신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저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저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원장들의 안색까지 살핀 것이고 저들의 근심거리를 들어 주려고 한 것입니다. 사랑은 관심이요, 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관원장의 근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기회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사랑의 섬김은 하나님의 기회를 포착하게 만들었습니다. 형통은 하나님의 기회와 인간의 준비가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랑으로 섬기려는 자세를 키워야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그러자 요셉은 분명히 말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그렇습니다. 요셉은????꿈은 하나님이 해석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며, 자신은 하나님이 그들을 돕는 데 사용되는 매개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꾼, 종으로 섬긴다고 생각하면 겸손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요셉이 저들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12,13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이는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누명을 벗고 옛 영광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음모와 모함은 떡 맡은 관원장이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해몽대로 그는 나무에 달려져 새들이 그 고기를 뜯어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요셉은 14, 15절과 같이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처음으로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기회를 잘 선용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요셉이 나는 자유하고 싶습니다. 나좀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을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 자네 해몽처럼 된다면야 그렇게 해 주지, 뭐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못 하겠나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흘 뒤 바로 왕의 탄생일이 되었는데 결국 그 날에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나 복직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그렇게 고마운 요셉을 기억하고는 왕에게 제가 잘못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이란 사람이 알게 되었는데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그렇게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잘 못되어서 감옥에 갇혔으니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맨 마지막 절인 23절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여러분 가장 비참한 인생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바로 잊혀진 인생입니다. 차라리 미움 받는 것보다 더욱 비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어 나간 뒤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학수고대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은 흘러갔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일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렇구나, 사람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구나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되겠구나, 사람에 기대해서는 안 되겠구나

여러분 사람은 사랑하고 기도해 줄 대상이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되지 아닙니다.

1463절을 보십시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물론 사람간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는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사인 제가 여러분을 믿지 못하고, 여러분이 저를 믿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정에서 부부 관계 속에서 신뢰관계가 깨어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본적인 신뢰관계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지나쳐 믿다가 그것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낙심하게 되고 절망까지 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머리 싸매고 누워 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말 그럴 줄 몰랐다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 줄 몰랐습니까? 사람이란 원래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 배반할지 모르는 인생들, 그러므로 만일 자기에게 절망감이 들 정도로 그 사람을 믿었다면 어쩌면 그것은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를 그를 의지했다면 그것은 잘못이요, 그 사람이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2:24) 그렇게 철석같이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는 3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 인생이 원래 그럴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여기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사람에게 기대한 것이 어리석었구나.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비록 사람은 요셉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를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새벽에 본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49:15) 아멘!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7:10) 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사람에게 실망과 배신과 버림을 당할 때 더욱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도우심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1~2) 아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13:6) 이러한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111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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