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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가정 박승남 20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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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6:1-7절 개역개정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6:1-7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가정

 

창세기 37장부터 우리가 살펴본 대로 38장을 제외하고는 요셉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46장에 들어와서는 초점이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사실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창세기 371~2절을 보면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이야기도 결국 야곱의 가족이 어떻게 애굽으로 내려갔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야곱은 욕심이 많고, 야망이 크고, 감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 쌍둥이 형과 불화를 겪고 20년간이나 헤어져 살아야 했고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의 가정에 이런저런 답답하고 속상하고 우울하고 참담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0명의 아들은 요셉을 팔아버리고는 짐승에 물려 죽은 것처럼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 가정을 어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식들과 야곱 사이에 무슨 진정한 교감이 있었겠습니까?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동생을 팔고 또 아버지를 속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를 제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야곱은 야곱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이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무려 22년간 의욕을 잃은 풀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넷째 아들 유다는 울적한 마음에 집을 나가 다른 곳에 가서 살림을 차리기도 했고 그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이 가정에 무슨 웃음이 있었겠습니까?

요즘 우리도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온 나라가 코로나 사태와 그와 연루된 신천지 집단으로 인해 그리고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정파적인 비난과 공방 그리고 터무니없는 가짜, 거짓 소식과 선동성, 악의적 보도들로 인해서 걱정과 염려가 되고 인상을 찡그리고 화가 나고 우울해지게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웃을 일이 없었던 야곱의 가정이 달라졌습니다. 어둡고 슬픈 가정에 소망의 빛이 비취게 되었고 급기야는 진정 행복한 가정, 복된 가정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야곱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된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야곱이 그의 기운을 소생시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있고, 애굽의 총리로 있다는 소식! 이 소식은 그를 거의 죽게 했다가(46:26) 다시 소생하게 할 만큼(46:27)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소식보다 더 귀한 복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며 임마누엘!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소식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을 듣고는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다가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브엘세바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브엘세바는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던 곳입니다.

창세기 21:33-34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라고 합니다.

또한, 브엘세바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 26장 을 보면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이 살던 그 땅(그랄)에서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26:12,13) 그런데 블레셋 사람이 시기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우고는 추방했습니다. 그래서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류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다시 두 번이나 그랄 목자들에게 그 소중한 우물을 빼앗기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을 아예 떠나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26:24) 하셨습니다. 힘들고 지쳤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위로해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습니다.(26:25) 우리는 이사를 하려면 집부터 얻는데 이삭은 제단부터 쌓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다음에 살 곳인 장막을 쳤고 우물을 팠습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먼저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뜻깊은 곳에 야곱은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즉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아버지를 위로, 격려해 주시고 복을 주어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낭패와 실망 당한 야곱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생각하고, 아버지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야곱이 영적으로 새롭게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그의 가정도 회복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야곱과 그 가정은 그동안 있었던 불행과 어둠의 그림자를 거두고 새 아침의 밝은 햇살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또는 시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게 된 가족들의 마음에도 경건한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때 요셉의 형들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동생에게 못 할 짓을 하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렇게 괴롭게 해 드렸던 자신들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야곱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열 명의 아들들로부터 속아 이토록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 요셉을 죽은 줄만 알고 긴 세월 동안 가슴 아픈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내게 왜 이러한 일이 있었을까? 그럴 때 자연스레 지난날 야곱 자신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일들을 회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식들을 미워할 수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 가족에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거짓 사기 집단 신천지를 수사해서 그 비리와 잘못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거기에 빠진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이 돌아올 때 우리는 질책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진정 우리 가정에서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할 때 그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할 때 진정 소망이 있게 됩니다. 그 가정이 영적으로 살아나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줄 믿습니다.

 

야곱은 본래 삶의 의지력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길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 아닌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전과 같으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인 자기를 초청했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단숨에 달려가서 만나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덤벙대지 않고 흥분하지 않습니다. 옛날 야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시작되지요?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렇습니다.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성경 기자는 하나님이 그처럼 원했던 이스라엘로서 야곱이 이제야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 이스라엘로서의 진실된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세기 4311절을 보면 야곱이 형들을 따라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기로 결단했던 때도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내려놓고, 애지중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라고 결단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 그리고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희생 제사를 드렸을 때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드린 희생 제사는 아버지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드린 제사이며 동시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드린 제사(예배)였을 것입니다. 아마 이때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아들 요셉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랍니까? 얼마나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갑니까? 한 성숙한 성도의 기도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지 마옵시고 당신의 마지막 명령과 소원을 묵묵히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지위를 주지 마옵시고 섬길 자리를 주옵소서.

저희를 위해 쓸 재물을 주지 마옵시고 저희를 쓰옵소서.

저희가 잘 집을 주지 마옵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할 발판을 주옵소서.

좋은 직장을 주지 마옵시고 저희에게 일을 주옵소서.

쾌락을 주지 마옵시고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주옵소서.

만족을 주지 마옵시고 희생하게 하옵소서.

좋은 봉급을 주지 마옵시고 주님의 뜻을 행할 힘을 주옵소서.

우리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여기에 비할 다른 기쁨이 없나이다. 아멘"

 

브엘세바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고 난 뒤 꿈속에서인지 생시인지 밤에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분명한 지침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엎드려 있는 사람에게 앞으로의 될 일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곧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내가 반드시 너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겠다. 요셉이 너의 눈을 직접 감길 것이다."

이 얼마나 복된 말씀인가요? 아버지 이삭이 흉년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려 할 때 내려가지 말라(26:2)고 막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약속(The Promise)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성취로서, 그리고 새로운 약속의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시듯이, 이제 야곱을 애굽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약속은 성취를 낳고 성취는 또 다른 약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쉼과 위로를 주려고 하십니다. 약속의 자손들을 기근에서 안전하게 보호하시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을 번성케 하여 민족을 이루고 훗날 출애굽의 역사,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뜻을 가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 모를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교회, 가정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루 하루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걸어가다보면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신 선하신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에게 그리하신 것처럼 야곱에게도 임마누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복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교회에 함께하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23:4 표준새번역).

그렇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불안과 근심, 두려움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보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도 결혼식장도 장례식장도 제대로 못 가고 심지어 예배당도 못 나옵니다. 즐겁게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진정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떠한 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맡길 것뿐입니다. “주님,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옵소서. 우리 가정에 함께 하옵소서.” 세상에서 가장 복된 가정은 임마누엘의 가정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지만, 유혹을 받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는 애굽에 머물게 되지만 애굽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 복된 가정이 어떠한 가정입니까? 임마누엘의 가정입니다. 그러면 임마누엘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입니까? 그것은 약속의 말씀이 있는 가정, 그리고 그 약속을 붙들고 사는 가정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 이처럼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두려워하던 이스라엘(야곱)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마차에 태우고, 온 식구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납니다. 정든 약속의 땅을 뒤로하고 마음 가볍게 말입니다. 그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가득히 채워졌고 하늘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독실한 신자였고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의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가족과 함께 로마를 여행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큰딸 우나(Una)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중증에 떨어졌습니다. 병원 치료는 효험을 나타내지 못했고 점점 악화하였습니다. 그러자 엄마인 호손 부인(소피아 피바디)은 두려움과 슬픔에 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딸이 너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잠도 자지 못한 채 긴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가? 우나를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만일 하나님께서 우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는 우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나는 더는 하나님과 싸우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녀를 뒤덮는 큰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몇 분 동안 기도한 후에 딸을 바라보니 딸아이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이마를 짚어보니 이미 열이 내리고 있었고 며칠 뒤에 그 딸은 말라리아로부터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기대하고 갈망하는 것의 실상입니다. 윌리엄 L. 레인은 실상'의심할 수 없이 확고하게 구축된 객관적 실체를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 이뤄질 것을 확신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모험을 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며, 또 다른 사람을 축복하며 그들에게 받은 복을 나누며 삽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치우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지시를 받고야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우리에게 믿음의 족장, 노년에 자녀들을 축복한 영적인 사람, 멋진 이스라엘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을 위시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처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모험을 걸고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됩시다. 지금은 이런 저린 이유로 걱정 근심이 되고 두렵고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랑으로 서로 함께 하는 여러분, 복된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03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함께하면 역병도 시련도 고통도, 문제도 이길(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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