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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봉과 구별된 고센 땅 박승남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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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6:27-34절 개역개정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46:27~34 가족상봉과 구별된 고센 땅

 

 

 

야곱의 이야기를 보면 가정에 형과 불화가 있어서 결국 집을 떠나 홀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금 애굽으로 갈 때는 어떠한가요? 27절을 보면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칠십 명으로부터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누구를 요셉에게 미리 보냈나요?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유다는 야곱의 넷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세 명 중에서가 아닌 유다를 요셉에게 보낸 것인가요? 그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유다가 보여준 희생의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베냐민을 끝까지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고 애썼던 유다를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모든 형제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임, 인정, 칭찬을 받는 것인가요? 왜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는 것일까요? 왜 에스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요? 모두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기적이고 욕심부리고 자기만 아는 세상에 그래도 훈훈한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그들은 어려운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고 자원하여 수고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로 인해 흉흉한 가운데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를 지을 수 있고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희생하면 예수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으니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랑, 희생을 얼마나 가슴 깊이 느끼고 있을까요?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나요? 요즘 저 자신을 보면서 주님을 온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아직도 멀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63절을 보면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과 지혜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면 당연히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칭찬받는 사람이란 당연히 자기를 부인하고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하고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2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여러분,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입니까? 29절에 마지막에 나오는 얼마 동안이라는 히브리어는 d/[(오드) 계속, 여전히, 아직, 다시라는 뜻입니다. 그리니까 계속해서 여전히 아직도 다시 울었다는 것입니다. 울고 또 울고 그렇지요.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만났을 때도 그리 크게 울었던 요셉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자기를 사랑해 주신 아버지를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쁘고 고맙고 좋았겠습니까! 이것을 표현한 길이 바로 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진작 아버지를 찾지 않았나요? 당장 자신만 생각하면, 아버지 뵐 것만 생각하면 곧 찾아가서 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못했던 것은 형들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이거 저것 생각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만났다면 형들이 놀라고 위축되고 진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만났다 해도 불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억제하고 참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때를 주시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사랑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샀지만, 아버지는 요셉의 꿈을 가슴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셉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거의 일주일이나 걸리는 그 먼 거리를 찾아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때는 8월 중, 하순쯤이라 그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는 거리를 걸어야 했고 밤이 되면 아무 데서나 자야 하는 그 고달픔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오늘의 기쁜 감격스러운 상봉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자녀가 바른 삶을 살아감으로 부모님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효도이며, 순종함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부모공경입니다. 요셉은 20년을 객지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버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고센 땅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만나 두 부자는 서로 목을 껴안고 울었습니다(28-30). 이산가족 상봉 때 쉽게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러한 상봉이 속히 있게 되고 나아가 헤어진 이산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요셉도 감격스러웠지만, 아버지 야곱은 어떠했겠습니까? 3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사랑하는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어 준 것도 정말 고맙고 그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이제는 죽어도 좋다고 합니다.

우리 어르신들 가운데도 자식을 앞서 보낸 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을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죽으면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하는데 야곱은 아들 요셉을 가슴에 묻고 아픈 마음으로 지내왔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고 메이지는 듯 명치 끝이 아프고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이렇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과연 자식들은 알기나 할까요?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그 자식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물론 요즘은 옛날과 같지 않아 약아빠진 부모들, 무정한 부모들도 없지 않아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식 사랑하고 그 자식을 위해 염려하는 마음은 어디 가겠습니까? 자식이 잘되면 부모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아프거나 무슨 변을 당하면 그렇게 아프고 슬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맞이하는 요셉을 보십시오. 참으로 효성스러운 모습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려고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버지께 자기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 자랑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들으신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고 그렇게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이 지금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은 자랑하는 것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부모님은 자식이 자랑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물론 교만한 마음이 아닌 진정 감사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효도는 자식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도 합니다. 효도를 위해서 내 몸을 잘 관리합니다. 효를 위해 출세하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어엿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담대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성공이나 출세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셉 이야기에서 그가 출세했다, 성공했다 그래서 참 좋았겠다는 것보다는 그가 총리가 되므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 모진 흉년에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아버지를 매우 기쁘게 해 드렸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서의 성공과 출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야곱과 요셉의 마음 더 나아가 주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보십시오. 28절을 보면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라고 합니다. 이제 요셉을 만나러 가는 길에 야곱은 그가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곳에서 살 것인지를 그의 이름대로 믿음으로 생각하고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인도하다의 히브리어의 뜻은 hr;y:(야라) 던지다, 쏘다, 가르치다 입니다. 돌을 던지는 것이며 화살을 쏘는 것이며 할 말, 해야할 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두 다 의도적인 행동입니다. 특히 사무엘상 20장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그런데 20절 이하를 보면 요나단이 말합니다.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요나단은 화살 셋을 쏨(야라)으로 다윗에게 문제없으니 돌아오게 하든지 아니면 위태한 상황이니 도망치게 하든지 하는 신호를 보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고센 땅을 언급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요셉도 형들을 비롯한 가족에게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고센땅의 언덕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야곱과 그 가족들이 정착하여, 출애굽 때까지 거주했던 곳입니다(46; 8:22; 9:26). 이곳은 일명 '라암세스’(47:11), '소안 들’(78:12, 43)로도 불렸습니다. 그런데 고센 땅은 애굽 땅의 가장 윗 부분의 땅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은 요셉을 만나고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서 애굽 땅으로 가지만 애굽 땅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 아들 요셉이 애굽의 실세 총리이기에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 산다고 해도 누가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화려하고 번영된 도시에서 노후를 즐기면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자식들을 왕궁이나 여러 요직에 취직하게 해서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집안을 확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출세와 성공 말입니다. 어쩌면 자식들이 그것을 원할 수도 있었습니다. 손자들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야곱은 유다를 통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라고 분명히 알립니다. 아마 야곱은 애굽의 지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좀 더 멋지게 화려하게 살게 하고 싶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은근히 자신의 대단한 영향력을 과시도 하고요.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해서 왕궁 주변에서 살게 하고 괜찮은 자리에 취직도 시켜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요셉은 고센 땅을 원하는 아버지 야곱의 의중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허락을 얻기 위해서 식구들에게 미리 대답을 가르칩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싫어하니까 생업이 목축이라고 하고 양과 소를 가지고 왔다고 하면 애굽 사람들과 떨어져서 고센 땅에서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고센 땅에 살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민족 갈등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야곱 가족이 애굽에서 애굽 민족과 갈등하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특히 그들과 같이 어울려 살게 되면 요셉의 가족들은 은근히 교만하여 애굽 사람들의 경계심을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들어가되 세상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충돌을 좋아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늘 겸손하고 온유하고 친절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부하지 않으면서도 진실하게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섬겨주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복을 바라기 전에 복 받을 만을 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복은 주어지는 것이지 빼앗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grace)주어지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야곱은 비록 애굽에 들어오긴 했지만 애굽은 나그네로서 머물 곳이고 언젠가는 가나안으로 가야 하기에 언제라도 돌아가기 쉬운 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나그네 인생임을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9절 이하를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저들은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세상에 미련을 둘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재산도 많았습니다. 족장이었으므로 딸린 종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강대국 애굽의 실세 총리의 아버지인데 얼마나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이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이 땅의 것을 사모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모세도 애굽 왕궁에서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에 대해 히브리서 1126절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봅니까? 무엇을 좋아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선택하며 살고 있습니까? 세상 부귀 안일함입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까? 요한1217절을 보면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시민권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시민권(3:20)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되 하나님 나라의 시민,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센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방 나라, 이방 신들이 가득 찬 애굽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변방에 자리 잡은 것은 비록 흉년이라 애굽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거룩함 위해서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나 요셉이나 가족들이 애굽 사람들의 악에 물들거나 애굽 사람들처럼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애굽 사람들 속에 살면서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민족적, 신앙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고센에 살도록 한 것입니다.

 

애굽은 우리에게 세상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동화되어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별되어 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역병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 거룩하지 못한 것, 세상에서 사느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센 땅은 농사를 짓는 애굽사람들에게만 좋지 않지만, 목축하는 야곱의 가족들에겐 더없이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사람들은 목축을 가증이 여겨서 목축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요셉의 가족들은 요즘 말로 '자가격리'가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성민의 순수성과 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백여 년 동안 애굽에서 살면서도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때론 우리를 고센 땅으로 이끄십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국민이 자가격리 상태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것이 많은 이때 깨어 기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고 환난 중에 소망과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천성을 바라보며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03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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