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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땅에서 | 박승남 | 2020-03-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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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7:1-12절 개역개정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창47:1~12 낯선 땅에서 오늘은 우스운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아기 엄마가 서점에 가서 한참 책을 찾는데 ~점원이 와서 무슨 책 찾으세요? 도와 드릴까요? 했더니~ "돼지고기 삼 형제" 있나요? 점원이 "아~네 ~ 혹시 "아기 돼지 삼 형제" 찾으시는 거 아니에요? 교회에서 식물인간 된 신자 병문안 갔는데 식물인간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한다고 한 말이~ "아드님이 채소 인간이 되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누구랑 전화통화 하다 갑자기 주머니에 뒤적이며……. “나 핸드폰 없어졌다"!! “좀 있다 통화하자"~하면서 전화기 끊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 우울한 뉴스뿐일 때에 주님으로 인해 웃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 낯선 땅에 가게 된다면 사람도 그렇고 온통 낯선 것투성인데 매우 위축되고 불안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낯선 코로나 19를 맞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이라는 낯선 땅에 내려가게 된 야곱의 가족은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사랑하는 요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을 진심으로 환영한 요셉은 46장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형들에게 바로 앞에 말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요셉은 바로 왕에게 나아가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라고 아뢰었습니다. 이후 요셉은 형들 가운데서 다섯 사람을 뽑아서 바로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정말 바로는 그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생업이 무엇이오?" 그러자 저들은 교육받은 대로 바로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임금님의 종들은 목자들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왜 자신들이 목자라는 것을 밝히라고 했을까요? 46장 34절과 같이 목축은 애굽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직업인데 말입니다. 가증히 여긴다는 말은 구역질 나는, 혐오, 질색, 몹시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까이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마치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는 개고기를 먹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거기서는 한국인 식당에서도 보신탕만은 팔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유럽이나 미국에 사는 분들에게 한국에 나왔을 때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보신탕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돌아가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요셉은 왜 이러한 이야기를 왕 앞에서 하도록 교육한 것입니까? 그리고 형들은 왜 시킨다고 목축 이야기를 한 것입니까? 그런데 4절을 보면 그들은 시키지 않은 말까지도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여기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거류라는 단어의 원어는 숙박, 또는 손님으로서 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표준새번역을 보면 “소인들은 여기에 잠시 머무르려고 왔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면 형들의 마음은 요셉 때문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셉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자원해서 고센에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요셉의 친인척이라면 자연스럽게 총리인 요셉을 등에 업고 한자리하고 어깨에 힘을 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셉이라면 가족, 친척, 가까운 사람을 곁에 두고 애굽의 영광을 누리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셉은 그리고 형들은 목축업이 직업이라 밝힘으로 스스로 멸시와 천시를 받게 했을까요? 애굽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거절하고 고센 땅을 요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자 그렇다면 거꾸로 저들이 목축을 버리고 애굽의 중심에 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곱과 그 아들들은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자녀들, 후손들은 애굽의 문화에 동화되어 애굽사람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의 자녀들이 한국말도, 한국 문화도 잊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문화를 잊어버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까지도, 하나님까지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왕을 알현할 때 거기에는 신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당신들이 우리를 가증히 여기든, 멸시하든, 천대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걷겠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들은 비록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 살게 되었지만, 그들의 소망은 애굽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요 그 땅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영화를 바라거나 애굽의 중심지 중에서 한 땅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들이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임을 밝히면서 가나안 땅에서 가까운 고센 땅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애굽 사람 되기를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당히 밟힙니까?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우습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는 것을 천하게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분명하게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밝히십니까?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까?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여러분 고센 땅은 나일강 삼각주의 북동지역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살았던 곳입니다.(창45:1, 10) 이러한 고센에 대하여 지난주 말씀드렸는데 이 시간에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환난 날에 피난처 된 고센(창45:9-11) 애굽을 중심으로 하여 가나안 일대에 심한 흉년으로 야곱의 일가 70명은 굶어 죽는 환난에 처했으며, 전혀 살길이 없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극한 환난 날에 피난처, 보호처, 축복의 장소가 된 곳이 고센 입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 보면 우리 문경 땅이 그러한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온 나라, 온 세계가 재앙으로 난리인데 우리 문경 땅은 그래도 코로나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언제 어떠한 상황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가 필요하며 이 소중한 곳을 안전하게 잘 지키도록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진정으로 안전한 곳이 있습니다. 잠언 18장 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그리고 시편 46:1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시50:15절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과 걱정 근심에 싸이지 말고 이 약속의 말씀 붙잡고 우리의 견고한 망대가 되시고 피난처 되시며 큰 도움 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혼자 울어야 하는 고민 덩어리, 이런저런 갈등, 해결 못 하는 사건 등이 환난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하갈이 이스마엘을 데리고 브엘세바 광야에서 죽음 직전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살려달라고 할 때,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시고, 먹고 자식과 살게 하셨습니다(창21:14-19). 하나님은 기근으로 아사(餓死) 직전에 처한 야곱과 그 가족도 살려 주셨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피하십시오. 그래서 고센의 복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구원의 이적이 임한 고센(출11:5-7) 출애굽기 8: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전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또한, 9장 4절을 보면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9:25-26절을 보면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고 말씀합니다. 10가지 재앙 중에서 4번째 재앙부터는 고센이 구별되었습니다. 따라서 고센은 하나님의 구원 기적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이십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고센 땅을 구별하여 주셨습니다. 고센 땅에는 조금도 해함이 없이, 생명의 역사, 구원역사, 복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현재 똑같이 환난을 겪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분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고센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 자유를 얻은 고센(창46:34) 애굽은 수많은 잡신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애굽에서 살아도 여호와 참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켜 낼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된 곳이 고센입니다. 이러한 잡신 속에서 유일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때로는 우상에 기웃하고 그 문화에 동화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출애굽 이후의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성령의 전으로 구별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세상을 기웃하며 물질, 쾌락 등 헛된 것들을 의지하며 섬긴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고린도전서 8:4~6절을 보면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헛된 우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과 자유를 주신 주님만을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복이 제일 큰 북이요, 하나님을 섬길수록 더욱 생활이 좋아지는 복은, 최고의 복입니다. 이 믿음의 복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형들 중 몇을 택하여 왕을 알현하게 한 요셉은 나아가 자기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를 만나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가, 얼마나 아버지를 공경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면 왕의 명령이 없이는 왕께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참 효자입니다. 왕과 비교할 때 야곱은 극히 초라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도 숨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당당하게 왕을 알현하시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부끄러워합니까? 예수님을 부끄러워합니까?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아니면 자랑스럽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야곱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애굽의 왕에게 나아갈 때나 또 물러날 때나 모두 바로 왕을 축복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축복합니까? 히브리서 7장 7절 말씀대로 “두말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바로 왕이 윗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랫사람인 야곱이 왕을 축복하였습니다. 어떻게요?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처음 보는 낯선 애굽 왕에게 당당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을 빈 것입니다. 물론 왕도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축복하는 야곱을 건방지다 하지 않고 그 축복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축복하기를 좋아합니까? 영어로 헤어질 때 Good bye! 라는 말을 씁니다. good의 의미는 잘 알려졌지만, 이 경우 by(e)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by(e)는 by ye 「당신 곁에」가 결합한 단어(이때 ye는 you의 문어체)입니다. 그리고 good도 사실은 God가 변화한 것입니다. 원래의 형태인 “God by ye.” 또는 “God be by ye.”「하나님이 당신 곁에 계시기를, 곁에 계셔서 복 주시기를!」이라는 뜻입니다. Good bye! 는 결국 축복의 말입니다. 저들은 감사하다는 말인 Thank you! 라는 말고 함께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겠다”(창12:3). 그리고 예수님은 전도자를 파송하시면서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만일 그 집이 합당치 않으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10: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 우리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평안을 빌면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의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이 축복하자 바로가 야곱에게 말하였습니다. "노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오?" 그러자 야곱이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떠돌이 인생 즉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면서 그 나그네 인생은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 말에 머리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았던 175년(창 25:7), 자기 아버지 이삭이 살았던 180년(창 35:28)에 비하면 야곱의 나이 130은 야곱의 고백대로 얼마 안 되는 짧은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도 야곱을 생각하면 모두 청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130년 세월이 얼마 못 된다고 했을 뿐 아니라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고난 가운데 살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40절에 야곱이 말한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 31:40)라는 이 한 구절만 보더라도 야곱이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요즘 전 세계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서글프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인생을 그렇게 쉽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시편 90편을 보면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시 90:9-10). 전도서 1:2~3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했으며,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전 2:11). 시편 102:6~7절을 보면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삶도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울분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낙심, 불안, 원망 불평하지 말고 고요히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야곱은 바로 앞에서 나그네 인생을 지냈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주책없이 신세타령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13~14절을 보면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여기 그들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삭과 야곱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이 땅에서 고달픈 인생을 살았지만, 저들 앞에 본향이 있기에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야곱은 왕에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5~16) 나그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 자기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가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맞이해 주실 것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평안을 누릴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비록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고달플지라도 우리는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낯선 땅이란 외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는 낯선 땅이 되기도 합니다. 왜요?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낯설어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낯설어집니다. 이 세상이 전부 다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낯설어집니다. 결국, 이런 면에서 우리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낯선 땅에서 사는 우리 그러나 이곳에 우리에게 참 좋은 가이드, 안내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쓸쓸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천국 본향을 바라보며 축복하며 아름답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20년 3월 22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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