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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1 - 루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박승남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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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9:1-12절 개역개정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49:1~12 야곱의 축복 1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120세였으나 눈이 흐려지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반면 147세였던 야곱은 지금 노환이 든 상태라 기력이 없고 눈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별세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총명과 영적인 상태는 놀랍습니다. 1절을 보면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말합니다.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이미 요셉은 아버지께 와 있는 상태입니다. 48장과 같이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두 아들을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두 아들은 이미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들들도 아버지가 얼마 사시지 못하실 것 같고 또한, 요셉이 와 있으니 주변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모이라고 하시니 저들은 곧 모여서 아버지 앞에 앉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한 아들 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합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은 받은 사람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복을 약속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축복했습니까? 492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표준-그는 아들 하나 하나에 알맞게 축복하였다. 공동번역- 그들 하나 하나에 알맞은 복을 빌어주고는)

그렇습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축복한다고 해서 덮어놓고 축복한 게 아닙니다. 자기 생각, 계획이나, 자신의 욕심, 욕망을 가지고 자식을 일방적으로 축복한 게 아닙니다. 사실 아버지로서는 모든 자식이 다 잘되기를 바라므로 그래서 그 자식들을 자기 임의대로 힘껏 축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자식의 분량대로, 열두 아들 하나하나에 알맞은 복을 빌어 주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기복신앙이 있습니다. 기복신앙이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 그 사람의 어떤 삶과 관계없이 복을 비는 것입니다. 여러분, 깡패들도 새 차를 사면 돼지머리 놓고 술 부으며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고 고사를 지냅니다. 이것을 기복이라고 합니다. 저들의 삶은 악한데 그런 악한 것은 덮어놓고 복을 달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이런 기복신앙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축복한다고 해서 덮어놓고 우리 아들들 다 잘 먹고 잘살게 해 달라고 그렇게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인생을 살면서 또 평생 자식을 키워 오면서, 그 자식의 행적이나 행동거지, 성격이나 그 성품을 보면서 거기에 따라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실 만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축복했는데 알고 보면 장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열두 아들마다 그들의 품성과 신앙과 성격과 행동에 따라 축복의 형태도 다 달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은 연속적입니다. 그래서 별안간 복을 받고 별안간 저주받고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는 과거에 잉태되고 미래는 현재 속에 잉태됩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 자식을 낳아 키워 보면서, 그 아들 하나하나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축복을 보면, 어떤 아들은 저주에 가까운 심판을 선언하고 어떤 아들에게는 축복합니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 같은 아들은 축복했다는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 받을 사람이 복 받는 것이 축복이고, 저주받을 사람이 저주받는 것 또한 복입니다. 저주받을 사람이 복 받는 것은 무서운 형벌입니다. 복 받을 사람이 복 받는 것이 복이고, 저주받을 사람이 저주받는다고 하는 것이 복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에게 주는 기회요, 그에게 알려주는 경고요, 사랑으로 경종을 울려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갈라디아서 67절 말씀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까 기복신앙을 말했는데 그 사람의 행위와 성품과 관계없이 무조건 복 달라고 비는 것은 전부 타락한 신앙입니다. 또 한 가지 기독교에 가장 무서운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없고 하나님과 관계없이, 그저 사람이 잘만 하면 복 받고 자기가 잘만 하면 이 세상에서 출세하여 세상에서 복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여러분 콩 심은 데 콩이 나서 콩을 거두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팥을 거둔다고 하는 거, 이게 하나님의 법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복인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아들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죽는 순간에 참으로 그 자식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기회를 주고 경고를 하고 저주스러운 삶을 포기하고 복 받는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그런 축복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서 보는 열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의 모습

야곱의 열두 아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었습니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똑같은 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들은 축복 된 아들이 되고 어떤 아들은 저주스러운 아들이 되었습니까? 신기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똑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아들은 저주스러운 아들이 되고 어떤 아들은 복된 아들이 됩니까?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까?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성도는 자신을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어느 한 부류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의 아들이요 백성이 됩니까? 여러분은 지금 복을 뿌리고 있습니까? 저주를 뿌리고 있습니까? 지금 어떻게 살고, 어떤 품성을 가지고 어떤 성품으로 사느냐에 따라 장래에 저주가 잉태되기도 하고, 복이 잉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야곱의 네 아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그리고 유다에게 축복한 아버지 야곱의 축복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 르우벤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르우벤에게 축복합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물의 끓음 같았다는 것을 다른 번역을 보면 처럼 불안정하니(unstable)’, ‘물들 같이 억제되지 않으니(uncontrolled)’ ,‘물들과 같이 사나우니(turbulent)’, ‘격렬한 홍수 같으니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물처럼 불안정하다는 것은 유대 시내의 물들이 홍수 때는 넘쳐흐르지만 건기 때가 되면 바싹 말라 버리는 것에서 끌어낸 표현입니다. 루우벤은 야곱의 장자요, 힘도 세지만 다른 영향에 의해 쉬 동요하거나 걷잡을(억제할) 수 없는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서 쉬 끓었다가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적인 인물, 변덕스러운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성격이 파르르 끓어 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안정성이 없는 성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루우벤은 그 충동적인 성격을 참지 못해서,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히기도 했습니다. (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아무리 맏아들로 태어나고 모양도 좋고 위풍도 당당하고 여러 가지 권능도 탁월했을지라도 그의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그는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잘 태어나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 있어도, 성품이 조급하고 정욕적이고 충동적이면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불안하고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성품, 그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믿는 것 같고 교회 봉사 많이 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복에서는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은 야곱의 경고를 듣고 그 인생을 바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336절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하나하나 축복할 때, 르우벤 지파는 이미 힘을 잃어버리고 지파로서의 능력도 다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르우벤 지파가 멸망해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르우벤 지파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사사 시대에 몰락해버렸습니다.

여러분, 르우벤 지파의 후손들 가운데에는 왕이 태어난 적도 없고, 사사가 태어난 적도 없고, 선지자가 태어난 적도 없고, 예언자도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지파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우리의 성품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할 가장 중요한 제목은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데 장애가 되는 어떤 성품이 있습니까?" 하고 자기의 성품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맏아들 르우벤의 물이 끓는 것 같은 성품, 그것 가지고는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축복입니다. (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이는 특히 창세기 34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디나를 성폭행한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를 자기 아내로 얻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하몰은 야곱을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고 합니다. 그 때 시므온과 레위는 당신과 당신의 땅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으면 여동생을 주겠다라고 속여 말했습니다. 그러자 추장 세겜은 디나에게 반해서 그만 자기 온 성읍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전부 할례를 받고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빼 들고 그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전부 죽였습니다. 그리고 재산은 물론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사로잡아와 악취를 풍겨 야곱을 위태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적인 논리로 보면 자기 여동생이 성폭행당했는데 복수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 야곱은 그들의 성품을 두고 저주를 했습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라고 하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도, 거룩한 의식을 사람을 죽이고 복수하고 이기적으로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품이 불같았습니다. 혈기가 대단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단짝이라, 칼만 잡으면 사나워져 라고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품 그 악한 마음, 못된 마음을 가지고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는 축복을 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잔인함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못된 성격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복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혈기를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 야곱이 자기 아들 시므온과 레위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에게 내린 야곱의 축복 속에는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악한 일에 의기투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마음이 딱 맞았습니다. 의기투합했습니다. 함께 악을 도모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야곱은 자기에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여들 생각도 없고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섞일 마음도 없다. 악한 일에 의기투합하지 마십시오. 악한 일을 도모하지 마십시오. 악한 모의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모임에 참여하든지 악을 도모하는 모임인가 선을 위한 모임인가?"를 판단하십시오. 악한 일에 의기투합하지 마십시오. 부부 사이라로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성령을 속였습니다. 자기 땅을 판 다음 부부가 의논한 끝에 그 돈의 일부는 빼돌리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친 것입니다. 그 결과 부부는 모두 3시간 차이로 거꾸러져 숨지고 말았습니다. 헌금을 빼돌리는데도 의기투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것을 악하게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폭력과 분노와 혈기를 버리십시오. 에베소서 4:26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겨도 폭력과 분노와 혈기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하나님의 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멀어진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는 축복의 말씀이요, 경고의 말씀입니다. 나쁘게 놀지 말아라.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준 교훈입니다. 시므온은 아버지의 경고 축복을 무시하고, 자기 성품대로 살았습니다. 여호수아 191절에서 9절을 보면, 시므온 지파는 이미 여호수아 시대 때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독립적인 지파로서의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신명기 33장을 보면 모세가 죽기 전 열두 지파를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에 대한 축복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전혀 반대입니다. 레위도 시므온과 같이 아버지에게서 그렇게 살면 저주를 받는다. 그 성격 그 분노 그 혈기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레위와 그의 후손들은 아버지의 경고를 받고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레위의 후손으로 모세가 태어나고, 레위 지파에서 대제사장이 태어나고, 영적인 레위 지파가, 야곱의 영적인 장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시내 산에서 내려와 보았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끌어낸 하나님이라며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춤추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분노했습니까? 거룩한 분노가 모세에게서 터져 나왔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하지 아니하고 우물쭈물할 때, 레위 지파가 다 모여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레위 지파에게 축복합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민수기 3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그 레위 족속에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 백성에게 문제가 생기면 재판하는 일, 그리고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는 일을 전부 맡겨 주었습니다.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 바뀐 사건들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저주받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대상이 되고 운명이 바뀐 사람입니다. 운명이 바뀐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유다의 축복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8)

여러분아버지 야곱은 유다에게 딱 한 마디만 축복했습니다.

유다야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되어라 유다라는 이름 자체가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유다에게 아버지 야곱은 너는 형제의 찬송이 되라고 권면하듯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복된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복 받으려면 형제들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약점이 있었습니까? 한때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도 하고, 자기의 며느리를 아들에게 연결해 줘서 대를 이어 가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이고 창녀로 변장해서 시아버지로 인해 자식을 낳게 된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리고는 형제들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가야 했을 때 베냐민도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데려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때 유다가 아버지에게 나아가 아버지제가 베냐민의 담보가 되겠습니다하고 약속하고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이 요셉의 은잔을 훔친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고 형제들은 돌아가라라는 두려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나서서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감동적인 사랑의 헌신, 희생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으니 유다가 형제들의 찬송이, 형제들의 칭송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유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내리시고, 야곱도 유다에게 한없는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되라. 그러면서 몇 가지 축복을 했습니다. 첫째는 원수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을 너에게 줄 것이고, 둘째는 네가 형제들 가운데 높임을 받는 (리더십의) 복을 받게 될 것이고, 셋째는 계속해서 너의 후손에서 왕이 태어나는 복을 네가 받을 것이고, 넷째는 마침내 메시아가 너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10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기 실로(쉴로)는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안식을 주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의미로 메시야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추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리고 죽어 가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허물과 죄로 죽어 가는 우리 인간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어느 자손, 어느 아들의 후손에서 메시아를 태어나게 하실까 생각해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유다로 정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의 후손에게서 왕이 태어나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그 유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유다는 모든 왕의 조상이 되었고 메시아의 조상까지 되었습니다.

여러분 장자의 복은 요셉과 그 후손이 받았습니다. 영적인 장자의 복, 신령한 복은 레위인과 그 후손이 받았습니다. 왕권은 유다와 그 후손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 요셉과 그 후손을 통해서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레위와 그 후손을 통해서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유다와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들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서 어떤 은혜를 입고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기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러분, 이 세상의 복은 언젠가는 다 썩어질 복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거둡니다. 신령한 복을 받기 위하여 성령으로 모든 것을 심고, 성령으로 사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성령으로 심으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영원한 것을 거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루우벤이나 시므온처럼 되지 마시고 영적인 장자의 신령한 복을 받은 레위의 복 그리고 왕권, 지도자(리더십)의 복을 받은 유다의 복을 여러분 모두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복된 도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0517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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