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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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교회 박승남 20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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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27-31절 개역개정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27~28, 12:10~11, 13:27~29 녹색 교회

 

조폭 출신, 사기꾼, 사회에서 무너지고 망가진 이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수시로 아주 멋진 사진을 보내 주시고 그래서 제가 밴드에 가끔 올리기도 합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을 보면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 없었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게 되어 인간은 찔리고 상처를 입고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환경에도 가시가 돋아나 서로 간에 찌르고 상처를 주고 힘들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나요? 두말할 나위가 없이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201911, 전 세계 153개 국가 11,258명의 과학자는 지구가 기후비상사태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더는 회피할 일도 미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향후 10년 안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류는 거대한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입니다. 아니 그 위기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지구는 연간 동식물 4~6만 종이 멸종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멸종 속도의 1000배나 빠른 속도라고 합니다. 실제 지구의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지구상의 생명체 20~30%가 사라지고 2도 상승하면 30~40%, 3도 상승하면 40~70%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마크 라이너스가 지은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영상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1월 한반도는 평균 기온보다 3.8도나 높았고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이번 이상기온으로 생태계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지표종인 '북방산개구리'의 첫 산란 시기는 한 달 가까이 빨라졌고, 제주도롱뇽의 산란 시기가 한 달 앞당겨졌으며, 대부분의 봄꽃들이 20여 일이나 빨리 개화하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부산과 제주도에 겨울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불이 빈번하여 야생동식물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보다 더 큰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야생동물 125천만 마리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실제 기온상승은 전염병 발생률을 높이고 있습니다. 1도 상승할 때마다 4.7% 전염병이 증가하고 있는데, 사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 19도 지구의 온난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기후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영국, 유럽연합, 캐나다 등에서는 국회가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탄소 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이산화탄소 배출 9(2018년 기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심지어 1인당 배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은 경제 산업구조의 디지털 전환과 대형국책 사업 추진이 주된 내용인데, 이는 노동자의 대규모 해고와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것입니다. 로봇,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고 그 대책 중 하나로 기본소득제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산을 많이 하고 잘 만든다 해도 소비할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래서 기본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어 소비의 주체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제주 제2공항 건설, 새만금 사업, 핵발전소와 양수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생태계 파괴사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실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지역 경제가 붕괴하고 국가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반면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적인 이동이 줄어들고 비행기의 운항이 현격히 줄어들고 생산공장이 멈추자 생물들의 변화는 아주 빠르게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희귀동식물들이 출현했다는 소식이 벌써 들려옵니다. 지구상의 생물 존재들뿐 아니라 대기와 물, 그리고 그 외의 환경조건들이 이러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이 병들어 생산을 멈추고 이동을 줄이자 금방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또 이것은 생명에 의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거스르게 되는 순간까지 무한 확장됩니다. 인간의 이러한 욕망이 확장되어 나타난 결과는 너무 무자비한 파괴이지만 또 그 욕망을 멈추었을 때 다른 존재들이 금방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발견이며 또 앞으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코로나 19는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으로 와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문제 하면 단연 '미세 먼지'를 꼽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상의 문제로 불편하지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됩니다. 하지만 매우 심각한 것은 기후위기 문제입니다.

코로나 19가 들어와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위축됐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전염병 역사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바이러스는 사그라듭니다. 또 다른 감염병이 생길지 모르지만, 회복할 것입니다. 마치 태풍이 쓸고 지나가도 며칠 지나면 사회가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미세 먼지나 코로나 19 모두 '회복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급이 다릅니다.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그 안에 있는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간 공기 중에 남아 있습니다. 끊임없이 누적되고 강도가 세지고 이는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결국,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붕괴해 지구 온도가 높아지고 그러면 폭염이 발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 날씨 변화가 초래됩니다. 해양이 산성화하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물과 식량이 부족해지고, 생물 다양성이 파괴될 것이며 우리 삶과 관련한 모든 기반과 체계가 붕괴할 것입니다.

지난 100년간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는데 여기서 0.5도 더 올라가면 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면서 그 위험이 본격적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그 시기는 2040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파리 기후 협약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고 했는데, 2도를 돌파하면 지구가 자기 증폭적으로 생명을 말살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역사 동안 대멸종 사건이 5번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코로나 19를 겪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데, 기후위기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을 보면 지금은 구리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해 볼 것처럼 명백하게 다가오리라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에 동시적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약한 부분부터 무너집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괜찮은데, 생뚱맞게도 온실가스 배출과 상관없는 나라들인 투발루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2014년에 발표한 제5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심화될 경우 21세기 전반에 걸쳐 많은 지역에서 질병 감염률이 높아질 것이며,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 내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금보다 0.5도가 올라가면 3600만 명이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고 지구 온도 상승 폭이 2도를 넘기면 36000만 명이 굶주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국경을 넘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러면 국제사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후 문제는 정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100만 원 버는 사람이 10만 원 피해를 보고, 1000만 원 버는 사람은 100만 원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1000만 원 버는 사람은 손해가 없고, 100만 원 버는 사람만 70~80만 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끼고 나누면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의롭지 않은 사회라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전 세계 음식물의 1/3이 그냥 버려지는데. 시리아 사태 당시 밀가루값이 60~70% 올라갔습니다. 국제사회 투기 자본이 곡물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밀값이 올라가면 가장 약한 사람들, 수입 대부분을 식량 구매에 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경기를 일으킵니다. 위기는 단순히 '물이 부족하다.', '날씨가 안 좋다.'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분 땅이 황폐하고 인간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예레미야 1210~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방 통치자들이 내 포도원을 망쳐 놓았고, 내 농장을 짓밟아 버렸다. 그들은 내가 아끼는 밭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내 땅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았다. 황무지가 된 이 땅이 나를 보고 통곡한다. 온 땅이 이렇게 황무지가 되었는데도,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하십니다. 황무지가 된 땅이 하나님을 보고 통곡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시겠습니까? 인간의 죄악, 탐욕으로 인하여 소출도 열매도 없는 황량한 들판으로 변한 땅! 오늘도 이 세계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죄악으로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두고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요즘 세대와 같지 않습니까!

요즘 새벽기도에 아모스를 거쳐 미가서를 보고 있는데 끊임없이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미가서 21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망할 것들! 권력이나 쥐었다고 자리에 들면 못된 일만 꾸몄다가 아침 밝기가 무섭게 해치우고 마는 이 악당들아 라고 규탄합니다. 그래서 3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아울러,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습니다.

기후 하면 온실가스는 말하는데 이는 다음 세대에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야 자동차 돌리고 공장도 돌리고 살지만, 후세대는 온실가스 배출도 못 하는 상황에 이를 것입니다. 즉 오늘 원인 제공자인 우리는 즐기고 그 뒤처리를 다음 세대가 해야 합니다. 이는 세대 간 불공평한,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한국은 석탄을 통한 에너지 생산 비중이 50% 수준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셈입니다. 보수 정당은 대부분 핵발전 산업을 원상회복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서구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50%에 육박합니다. 지난 10년간 이미 선진국은 산업 기술 혁신을 통해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가격을 85%까지, 풍력발전 설비 비용은 50%까지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석탄도 그렇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은 안전기준 강화 때문에 비용이 2배 정도 상승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핵에 매달립니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땅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남유럽과 위도가 같습니다. 그리고 태양광발전이 최대 에너지원인 독일은 위도가 신의주와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태양광발전을 하기에는 햇빛이 약하다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 태양광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인데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히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 위기(climate crisis)'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는 수준을 넘어 '위기'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인류가 직면한 위험성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작년 517"'기후변화'란 표현 대신 '기후 비상사태(emergency)' '기후위기' '기후 실패(breakdown)' 등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후변화란 표현은 수동적이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면서 "이는 환경 위기 상황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견해와도 차이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기후위기'와 더불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도 다른 표현으로 대체해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이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온난화인 ‘warming’은 지구가 천천히 데워지고 있다는 감을 줍니다. 그러나 ‘heating’은 아주 뜨거워지는 감을 줍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가열화입니다.

그런데 기후위기보다도 '위기를 위기로 못 느끼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몇 명 제외하고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다가 결국 유황 불벼락을 맞았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장은 시내 주차장을 6만 개 없애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유럽 좋은 도시들은 걷거나 자전거 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벌써 생활 리듬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전거는 전용 도로가 있으면 한 시간에 10km를 가고, 도로가 잘되어 있으면 20km도 갑니다. 그 정도면 문경은 물론 서울 안에서도 자전거 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도시 못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 망할 거 같으니까요. 바꾸려면 법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그런 문제의식이 있을까요? 아니 있다 해도 그런 의원들을 지역주민들이 선출해 줄까요?

 

여러분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지으신 신비입니다. 어떤 생명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생명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회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무수한 생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생명이면서도 고리처럼 연결되고 연합된 큰 생명체로 존재합니다. 누가 이 생명의 존재와 힘을 거스르며 막을 수 있을까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섭리와 손길 안에서 모든 것은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을 이루어갑니다.

올해 환경 주일의 주제가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입니다. 너무 작아 감지할 수조차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패턴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말 작은 생명에 눈을 돌리고,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스웨덴의 어린 소녀 툰베리는 희망보다 더 필요한 것이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행동을 시작하면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고 했습니다. 희망을 말만 하지 행동하지 않는 기성세대를 고발했습니다.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은 40년간 세계를 움직여 온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그리고 생태적 위기에 빨간 불이 켜졌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와 자연 모두에게 좋은 삶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 예견을 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야 합니다. 제 목숨은 그렇게 소중하면서 다른 생명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인간의 모순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은 생명의 무게를 천하와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말씀을 보면 가라지가 보기도 안 좋고, 곡식에 해도 되고 그러니 깔끔하게 가라지를 뽑고 싶겠지만, 주님은 자칫 곡식까지 뽑을까 걱정되니 그냥 두어라고 하십니다. 가라지를 뽑는다면서 자칫 알곡을 뽑을까 염려하시는 속 깊으신 주님을 생각하면 감동입니다. 목숨도 수단이 되고, 돈의 방편이 되는 이 안타깝고 허술한 세상에 주님은 목숨이 잘 못 될까 봐 조심해라, 차라리 그냥 두어라!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듯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게 인식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잃은 한 마리의 양 이야기(18:12)는 작고 약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입니다. 작고 약한 생명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으려 합니다. 당장 도움이 안 된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없애 버립니다. 비록 계모라도 어머니인데 어떻게 9살 어린애를 가방에 넣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5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영수증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의 체내 농도가 2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식을 먹고, 카페에 가고, 각종 물건을 사면서 사람들은 이 종이를 주고받는 것이 영수증인데 그것이 기형아 출산, 태아 사망, 불임, , 성조숙증 등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하니 왜 그러한 것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박노해 시인은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라고 이야기하면서 작은 것의 소중함을 말했습니다. 작은 생명은 뿌리와 같고, 모든 것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겨자씨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의 신비를 알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삶의 공유가 확장되는 녹색 교회, 녹색 신앙인이 희망입니다.

녹색은 그야 말로 생명, 환경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그런데 생명, 아름다운 환경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녹색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교회, 생명,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잘 지키고 살리고 보전하는데 힘쓰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늘과 땅을 만드셨을까요? 당연히 그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존재가 필요하니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25절에서 27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면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땅을 정복하고 어떻게 번창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품성을 이어받아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하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게 만드신 환경을 잘 지켜갈 수 있고 지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인간도 기쁘고 매우 행복한 것이지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어서 하신 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안식에 대한 것은 두 단어로 이야기가 다 됩니다. 그쳤다’ ‘복주셨다 일 월 화 수 해서 금요일까지 일하고 쉬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요. 그리고 다시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또 일합니다. 그다음에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게 안식일의 공식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은 무조건 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날에 특별히 복을 주셨기에 안식일은 무조건 세상일을 그만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날입니다. 재작년 별세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들은 주일날 너무 노동이 많은데 자기는 주일날이 안식일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날은 하나님을 위해서 노동을 하고 월요일 날이 자기 안식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월요일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놀기 월요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내하고 도시락 하나 싸가지고 공원에 나가 밥먹고 실컷 놀고 집에 오는 그게 자기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게 창세기에서 말하는 안식일 개념입니다. 안식일은 모든 것을 다 쉬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날이며 하나님만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요일보다는 주님이 부활한 날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토요일 안식일이 주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인적으로 이상이 생기고 또한 지구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살지 않고 악의 영, 악의 세력과 가까이 하여 그의 말을 듣고 탐욕을 부리며 살았기 때문이니다. 또한 안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물론 땅도 쉬고 지구도 동식물도 쉬어야 하는데 인간들이 개발 논리로 계속 여기저기 파헤치고 이기적으로 사용하였기에 결국, 환경의 큰 문제, 위기가 초래한 것입니다. (인류의 허파 아마존의 파괴)

 

그동안 선교가 인간 중심이었으나 녹색 교회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자연의 모든 생태계와 복음을 나눕니다. 녹색 교회는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과 삶의 공유가 확장되는 곳입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사람과 모든 생명은 그 존재가 확장되고 공유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수많은 생명을 내듯이 녹색 교회를 통해 생명이 우선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세상이라지만, 늘 답은 문제 안에 있듯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공동체로서의 대안적 삶을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과거의 전염병과는 또 다릅니다. 전 지구적인 위기와 대부분이 멈춰선 지금 각 나라는 복잡한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글로벌이 아닌 로컬 즉 지역을 진지하게 고심해야 하고, 경제를 넘어 자연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물론 후손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전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처음에 말씀드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늘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마음, 아픔, 뜻을 헤아리며 주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잘 돌보고 보전하는 녹색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쉴 때 잘 쉴 수 있는 특히 주일 안식일에 몸과 영혼이 잘 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뿐만 아니라 생명을 꽃처럼 아름답게 하고, 삶은 향기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2067일 환경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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