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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달리와 베냐민을 향한 축복 박승남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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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49:21-27절 개역개정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49:21, 27; 39:12~13, 33:12,23 납달리와 베냐민을 향한 축복

 

그동안 야곱이 12아들에게 행한 축복을 보았습니다. 그 중 지난주에는 요셉을 향한 축복을 살펴보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두 지파 즉 납달리와 베냐민을 향한 축복을 보게 됩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비단 납달리와 베냐민에게만이 아니라 저들을 향한 긍정적인 축복이 오늘 이뤄지고 부정적인 것들은 우리의 삶 속에 반영하여 그렇게 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선 납달리입니다.

납달리(나프탈리)는 단과 함께 야곱이 여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단은 야곱의 5번째, 납달리는 6번째 아들이지요. 납달리란 이름은 비틀다, 투쟁하다, 씨름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 파탈에서 나왔습니다. 라헬은 자기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고는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습니다(30:8). 여기 크게라는 말이 씨름, 싸움이라는 뜻의 lWtp]n"(나프툴)이고 경쟁하여라는 단어는 파탈로 비틀다, 씨름하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낳으므로 언니 레아와 투쟁하여 이겼다(사실 그게 정말 이긴 것인지 모르겠지만)는 의미도 있고 또는 아이를 얻기 위한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라헬이 자식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자식을 낳는 것이 누구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더구나 아들을 낳는 일이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아들이건 딸이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소중한 생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납달리에 대한 야곱의 축복을 보십시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 (21) 표준새번역 그리고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납달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이어서, 그 재롱이 귀여울 것이다

(표준새번역).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 아양떠는 소리 요란하구나(공동번역).

우리 안에 갇힌 암사슴은 슬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암사슴은 우리에서 풀려나서 자유롭게 마음껏 산을 뛰어노는 짐승입니다. 우리 영혼이 자유로워서 주님 안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힘차게 달려가는 인생,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어져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뛰는 인생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다윗은 시편 18:3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발을 암사슴의 발처럼 튼튼하게 만드시고, 나를 높은 곳에 안전하게 세워 주신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하박국선지자는 319절에서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암사슴(hl;Y;a'(아이얄라)을 튼튼한 다리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험한 산을 달리는 우아하고 날렵한 동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암사슴은 기분이 좋아서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고 재롱, 아양을 떱니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엽습니까!

 

신명기 33:23절을 보면 모세는 이렇게 축복합니다.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그런데 공동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납달리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넘치도록 귀여움받는 납달리, 남쪽으로 호수를 끼고 살며, 야훼의 복이 흘러 넘치리라."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쪽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바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바다는 복음서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갈릴리 호수로서 납달리 지파는 이 호수의 서쪽 절반과 그 서쪽, 북쪽을 차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412~1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납달리 지파가 기업으로 얻은 지역은 레바논산 경계에서 다볼산까지 대부분 산악 지대이며 숲이 우거진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지도). 여기에는 갈릴리 호수 서쪽 절반과 호수 주변 지역인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 디베랴 등과 게데스, 하솔, 메롬, 고라신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납달리 지역은 예수님 활동의 주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언의 말씀처럼 이곳은 어둠 속에 있었고 죽음의 그늘진 땅이었습니다. 납달리는 이스라엘 북쪽이기에 외세 침략을 자주, 먼저 받았고 또한 이스라엘 변방이기에 무시와 천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빛 되신 주님께서 사역하심으로 은혜와 생명의 빛을 보고 또한 그 은총을 입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까! 모세의 축복 그대로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은혜의 빛이 비치면, 희망과 평화와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23편의 다윗의 고백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아무쪼록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복을 가득히 내려 주시고 필요한 것을 얻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빛을 환하게 비춰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하는 복된 사람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러한 납달리벽옥(재스퍼(jasper)에 그 이름이 새겨졌는데 12보석 중에 맨 아랫줄 맨 끝에 있습니다. 벽옥은 빨강, 노랑, 녹색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투명한 벽옥도 있고, 불투명한 벽옥도 있는데 흉패에 사용된 것은 어느 것인지 알려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러한 벽옥은 요한 계시록 4장에도 나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4: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천국을 이루고 있는 기초석 중의 하나가 벽옥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밝더라" (21:11)

벽옥은 천국을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납달리가 사는 갈릴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되었는데 납달리가 벽옥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치입니다. 가장 복음이 잘 새겨진 지역이 납달리 지역인데 천국의 보석 벽옥에 납달리가 기록되었습니다. 이 보석 위에 납달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납달리는 벽옥과 같이 투명하게 그리고 청명하게, 아름답게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의 흉패는 납달리의 벽옥으로 그 대단원을 장식하게 됩니다.

 

이어서 27절 베냐민입니다.

야곱은 죽기 전 12 아들을 위한 기도에서 맨 마지막으로 베냐민에게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제에브)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27) 베냐민의 별명은 이리입니다. 이리는 개과에 속하는 육식성 포유동물 중에서는 가장 큰 동물입니다. 이리는 홀로 또는 떼를 지어 사냥하는데 이리들은 용감성, 난폭성, 탐욕 등으로 유명합니다. 이리는 구약성경에 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에스겔 222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고관들이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1:8절을 보면 갈대아 사람은 저녁 이리보다 사납다고 하고 스바냐 33절을 보면 재판장들은 이틑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리는 그야말로 부정적인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리힘 있고 강한 집념이 있어서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는 목표지향적인 동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냐민은 한편으론 물어뜯는 이리이고 또 한편으론 움킨 것을 나누어 주는 이리이며 용맹한 용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는 베냐민 지파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물어뜯는 즉 호전적인 지파가 될 것이라고 경고가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가 사사기 20장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그 같은 사나운 성격으로 인해 기브아에서 겁도 없이 다른 지파들과 싸웁니다. 베냐민 용사는 26,700명이었고 베냐민 외에 이스라엘 전사는 40만 명이었는데 말입니다. 첫째 날, 둘째 날은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셋째 날에 대패하여 겨우 600명만 살아남아 광야로 도망쳐 넉 달이나 지내다가 다른 지파들의 배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20). 자칫하면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뻔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5장을 보면 베냐민의 출생 배경이 나옵니다. 라헬이 아들을 출산하고는 죽게 되어 숨을 거두면서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란 뜻의 베노니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베냐민이라 불렀습니다(18). ‘오른손의 아들’, ‘힘 있고 능력 있는 아들’, ‘승리하는 아들로 부른 것입니다. 이게 어머니를 못 보고 살아야 할 베냐민을 향한 야곱의 소망입니다. 이사야 41:10절을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희망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은 우리의 참 소망이 됩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축복할 때는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는 이리로 축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을 할 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여러분 물어뜯고 빼앗을 때 그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동족, 가난한 이들의 것을 물어뜯고 빼앗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용감하게 대적들을, 죄와 원수 마귀를 물어뜯고 사람과 재산 그리고 영혼을 대적에게서 빼앗는다면 이것은 백번 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일입니다. 특히 싸워야 할 때 용감하게 나서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차일 파일 미루고 겁내어 공격해야 할 시점을 잃어버린다면 승리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리와 같이 용감하고 끈질긴 베냐민 지파의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그 몇 명을 말씀드리면

1) 이스라엘이 모압을 침략을 받아서 정복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 에훗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른손의 아들인 베냐민 지파였음에도 왼손잡이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또한, 변변한 무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 지혜롭고 용감했던지 홀로 모압 왕 에글론의 거처까지 들어가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 넣어 두었던 칼을 빼 비둔했던 왕의 몸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으로 가 소집 나팔을 불고는 "나를 따르라! 주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3:28) 하면서 앞장서서 모압을 쳐 내려가서 대승을 거두어 민족의 독립을 이룰 수 있게 했습니다.

2)초기의 사울도 그렇습니다. 그는 왕이 된 직후 암몬의 압제에 시달리는 길르앗 야베스를 구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 소를 잡아 각을 떠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전령을 통해 보내며 이렇게 외치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삼상11:7) 그리고는 앞장서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모르드개는 하만이 유대 민족을 학살할 음모를 꾸밀 때 에스더와 함께 그 민족을 구한 베냐민의 이리입니다. 모르드개는 불의에 굴복할 줄 몰랐습니다. 이리처럼 끝까지 싸울 수 있는 끈질긴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움츠리던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4:13~14) 결국 에스더는 움직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 민족의 생명을 구하여 응답을 받았고 원수 하만과 그 일당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4)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다름 아닌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뒤에는 자신이 그동안 자랑하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로지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20:24)였습니다. 실로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3:14)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죽일 정도로 독기를 품은 이리였지만 후에는 주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복된 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손들 중에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가 되는 인물들이 많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야곱은 베냐민을 말하면서 그냥 물어뜯고 빼앗는 이리가 아니라 움킨 것을 나누는 이리라 했습니다. 노략한 것을 같이 나누는 좋은 이리입니다.

사도바울이 주님의 복음을 세상에 나누어 빼앗긴 영혼을 되찾는 이리가 된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날마다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살기 소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을 나누는 교회, 어떠한 어려움에도, 어떠한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 주신 목표, 비전을 행해 함께 용감하게 달려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자수정에 기록된 베냐민

대제사장의 흉패 세째줄 마지막에 있는 보석이 자수정입니다. 그 자수정에는 베냐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amethyst 술에 중독되지 않는)

(1) 자수정은 만드는 과정이 매우 어렵고 구하기도 힘든 희귀한 보석입니다.

베냐민 지파에는 이미 언급한 이들은 모두 희귀한 인물들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둘도 찾기 힘든 인물들입니다. 자수정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베냐민을 이 땅에 내놓기 위해서는 라헬이 죽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126:5).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본회퍼는 현대의 교회가 연약해진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기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파하였습니다.

(2) 일단 만들어진 자수정은 귀한 보석이 됩니다.

하나님안에 붙잡혀 일단 쓰임 받기 시작하면 잘 제련된 보석처럼 아름답게 일하는 매우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간 거친 베냐민은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자수정을 보는 사람마다 포도주를 연상합니다. 어쩌면 자수정의 색깔과 포도주의 색깔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포도주에 취한 사람들 같이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호전적이고 난폭하였습니다. 바울도 다메섹을 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살기등등하게 갈 때는 포도주에 상기된 모습과 같았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자수정 즉 포도주 색깔에 기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입니다.

신명기 3312절을 보면 모세는 베냐민 지파를 향해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하나님 곁에 안전히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생 다 가도록 보호해 주시고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십니다.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신다는 것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나 등에 업은 모습을 말합니다. (야훼의 귀염둥이 날마다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 옆에서 안심하고 살아라. 그 어깨에 업혀 살아라.") 또한, 두 어깨 사이에 머리가 위치 하는 점에 비추어 '명예롭게 하신다', '머리가 되게 하신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여러분 베냐민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의 중간 지점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성소와 인접한 지역입니다. 즉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내에는 여호수아 당시에 회막이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 선상에는 솔로몬 성전이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냐민 자손은 언제나 성소, 성전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어깨 사이에 처하리라고 한 모세의 예언(33:12)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어깨는 하나님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늘 가까이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전에 안연히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당시 남 왕국 유다 편에 합류했습니다. 덕분에 북 왕국의 죄악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심판에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내 사랑 안에 거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품아 안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점점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은 사람은 매일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하고 더욱 기도에 힘씁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물론 그러면 주님은 더욱더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여러분! 진정 여러분은 주님이 함께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코로나 시대에 믿음과 소망으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여 예수 안에서 자유롭고 은혜가 풍성한 아름다운 납달리처럼 또한, 여호와의 사랑을 입어 주님의 보호를 받는 믿음의 용사 베냐민처럼 아름다운 복을 받고 베냐민 지파의 용맹한 인물들처럼 귀한 주님의 일꾼으로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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