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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박승남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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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서 1장 6절을 보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러한 모든 일을 행하도록 시작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어떠한 날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착한 일 즉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 완성될 각 개인의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을 확신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날이 또 언급됩니다.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리스도의 날이 먼저 언급된 6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은 그야 말로 완성의 날입니다. 구원의 완성, 선한 일, 훌륭한 일, 의의 일의 완성의 날이며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완성의 날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완전하게 이루어 지는 이루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화의 완성의 날이기도 합니다. 즉 주님을 믿고 따르던 성도들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날입니다. 거룩은 주님이 매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 없이 거룩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이 이르기를 원한 것입니다. 새번역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기를 원한 것입니다.

진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어인 에일리크리네스는, “햇빛에 비추어 보아서 깨끗하고, 흠이 없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도자기를 굽고 나면, 도자기의 표면에 잘 구워지지 않아 조금씩 갈라지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양심적인 도공들은 이를 깨뜨리지만, 비양심적인 도공들은 그곳에 살짝 밑칠을 하지요. 그렇게 하면 어지간한 금간 것은 감쪽같이 가릴 수 있답니다. 그러나 가릴 수 있다면,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그 도자기를 햇빛에 비추어 보면 금간 것과 덧칠한 것이 환히 보인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바로 밑칠하지 않은 그릇, , 원래 모습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물없이(아프로스코포스)는 범죄케 하지 않은, 거리낌이 없는, 걸려 넘어지지 않다, 걸림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0:32절에서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걸림돌이 되지 말고 디딤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가 유혹에 빠져 넘어지지도 말고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죄에 빠뜨리게 하지도 말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질이 됩니다. 열심, 열정 식어지고 거짓이 스며들고, 위선에 빠지며 마음이 굳어져 교만해지고 마음 관리가 안 되어 시험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과 위선과 교만은 결국 다 드러나고 맙니다. 그래서 책망을 받고 부끄러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천 어느 교회의 목사님 부부, 그들은 나이지리아에 선교여행을 다녀온 이들입니다. 그 멀리 아프리카 까지 가서 귀한 수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수고는 한순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라도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코로나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입되어 있는 전국 목회자 단톡에 보면 코로나 확진되어 격리 중이라는 내용이 왕왕 나옵니다. 조심 해도 어쩔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데 있습니다. 무슨 연유가 있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거짓말의 결과는 엄청난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신은 물론 한국교회 목회자에게 그리고 교회에 이루말 할 수 수치와 오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목회하던 교회는 오미크론 교회라고 불려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비록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할 지라도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진실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마음 속의 진실을 원하십니다(51:6). 그러기에 불의하고 거짓되었던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는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7, 10) 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이어서 1장 7절을 보면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의 마음속에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도장을 찍어놓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해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려워 할 때 믿어주고 가장 힘들어 할 때 그를 지지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Nάνα Μούσχουρη)위대한 가수를 만드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heart)”이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가수는 목소리로만 노래하지 않고 심장으로 노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장 전문 내과 의사였던 어느 목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인에 대하여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심장 파열이라고 주장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 며칠 동안 달려 있기도 하므로 함께 달린 두 강도는 다리를 꺾어서 빨리 죽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이 보았을 때 먼저 운명하셨고 그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쏟아졌는데 이것이 바로 심장 파열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너무 가슴 아파했기 때문에 그의 심장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이 피처럼 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온 심장을 다 쥐어 짜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8절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감옥 안에서 주님에 대하여 수없이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실 때나 혹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고통 중에 죽어갈 때 그의 심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중에서 가장 간절한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바로 예수님이 이 심장으로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랑은 자기 안에 있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바쳐서 다른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의 출발은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뜨거운 애정과 열정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라이트 풋이라는 학자는 바울의 맥박은 그리스도의 맥박과 함께 뛰고 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과 함께 고동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오셔서 권능으로 악인을 심판하고 언약을 완성 시키실 것입니다. 그 날은 주님을 믿지 않던 이들, 그리고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진실되지 못하고 교회를 해롭게 하고 분열시키고 다른 이들을 실족하게 했던 이들에게는 그 날이 가장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진실되게 묵묵히 섬기던 이들에게는, 복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합니다. 요한계시록 2220절과 같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과 같이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를 원어로 보면 마란 아타(Maranatha)입니다. 이는 본래는 아람어 기도문인데 헬라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 번 외쳐볼까요? 마란 아타! (마라나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변질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늘 깨어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마지막 날에 선한 일을 완성하실 주님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잘못되었을 때는 곧 회개하며 돌이며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인생의 종말 때까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며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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