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외칠 수 있는 용기 | 박승남 | 2024-10-13 | |||
|
|||||
진리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서덕석 목사)
올해 처음으로 4.3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고를 계기로 4.3일 대대적으로 일어난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좌익 세력의 무장봉기로 규정하고, 이승만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수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한 한국사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픈 상처를 교회도 종교도 학계도 역사도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빨갱이로 몰리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4.3의 아픔을 [순이 삼촌]이란 소설로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바로 현기영 작가입니다. 그리고 한강이란 작가가 5.18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4.3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이고 축하할 일입니까?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일을 함께 기뻐하기는커녕 “바엘세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냈다”(눅11:15, 마12:24)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비록 바엘세불이라고 욕하고 탄압한다고 하더라도 진리는 유유히 흘러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를 진정한 치유와 평화로 이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침묵을 강요당할 때 진리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이 시대의 진정한 예언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마12:30)라고 하셨습니다. ‘남보다 더’가 아니라 ‘남과 함께’, ‘가짐이 아니라 나눔’이 ‘내가 가진 권력과 재능으로 남을 억누르고 섬김을 받으려는 교만함이 아니라 섬길 수 있는 겸손’이 모두를 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진리임을 믿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이 시대의 복음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