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6장 | 박승남 | 2024-10-20 | |||
|
|||||
신명기 26장 5절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라는 말과 같이 이스라엘은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한 곳에 정주하여 자기 땅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푸르른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면서 소와 양을 키워,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소와 양을 키우는 일을 아예 멈추지 않겠지만 가나안 민족들이 그랬던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가도록 삶의 형태를 변화시켜 나가야 했습니다. 그 땅에 정착하자마자 먹고 살아가는 주된 방편이 변화될 것입니다. 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정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도 우리 힘으로 쟁취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터요, 가족이며, 심지어 나에게 주신 재능도 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은유로 달란트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이십니다. 2~3절 처음 토지 소산을 거둔 후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중앙성소로 가서 제사장에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중앙 성소는 처음에는 실로였고, 다윗 이후로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모세가 이토록 중앙 성소를 강조하는 까닭은 여러 곳에 흩어져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경우, 가나안 토착 종교의 영향으로 그 예배 자체가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을 보면, 백성들이 제사장에게 나아가 자신들이 수확한 첫 곡식을 제사장에게 바칩니다. 바치면서 선포합니다. 일종의 선언이고,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처음 농사 지어 얻은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이 모든 풍요로움을 제공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처음으로 햇곡식을 얻은 그 자체가 감사의 제목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신 것입니다. 단순한 추수의 기쁨을 올리는, 해마다 얻게 되고 열게 되는 초막절과 같은 추수감사의 제사를 넘어, 구원의 첫 걸음으로, 가나안 땅에 정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감격을 첫 곡식을 드림으로 표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을 6 차례에 걸쳐서 사용합니다.
가나안 민족들은 농사의 신 바알이 물과 땅을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알과 그의 부인 격인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땅을 주신 하나님, 신실하게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땅을 주시고, 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신명기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같은 땅을 디디고 살아가면서도, 누구를 바라보고 섬기느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 세계관의 첫 단추로, 모세가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첫 수확물을 가져와 예배 드리면서 감사할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첫 열매를 받으시려고 하실까요? 이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에 표시하고 이삭이 피면 묶어서 수확해 성전에 갖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첫 열매는 보잘것없는 것이고 작은 부분입니다. 최상품도 아니고 양도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 열매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먼저 구별해 놓아야 합니다. 나중에 하려 한다면 잊어버릴 수 있고 소홀해 지고 마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여기 먼저라는 단어 프로톤은 시간, 장소, 서열 혹은 중요성에 있어서 첫째입니다. 그러니까 네 삶의 첫 번째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디카오쉬네)를 열망하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서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대로 헌신하는 삶, 인생,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의'(意, plan, think)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의'(義 righteousness)입니다. 신자가 정말로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다면, 다른 말로 하면 성경 특히 산상수훈에서 일러주신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대로 재물을 목표로 살지 않고 재물로 인해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반드시 당신께서 입히시고 먹이신다는 하나님의 의로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고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은 척박한 땅으로 농사짓기 힘들고 목축이나 겨우하고 비도 잘 안 오고 그러니 하나님께 온전히 기다리 수 밖에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땅에서 생산되는 첫 열매를 내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첫 소산을 바치고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여러분 농사 짓기 어려운 땅에서 농사 짓느라 얼마나 수고, 고생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열매를 얻는 다면 필시 내가 열심히 수고 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노력으로 열심히 농사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뒷받침 해 주신, 은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도 마친가지입니다. 첫 것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27장 30절 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3:6~12을 보면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왜요? 어떤 이들은 교회를 운영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근본 의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소유가 아닙니다. 신명기 8장 17, 18절을 보면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재물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고 학개서 2장 8절을 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얻는 것이며 물질의 근본 주인인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모든 소유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은 자기가 얻은 것의 1/10을 바치므로 열을 하나님께 다 바친 것이 됩니다. 이상한 수학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100%다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장 선악과를 통해 주시는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히 시하는 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정신이 많이 흐려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
댓글 0